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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관계
글쓴이 안일평 (jinhyung@rda.go.kr)
2017-09-12, 15:41:56조회수 : 20
관계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관계가 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가 그 사람이라고까지 말한다. 대한민국의 국민, 어떤 가문의 누구, 가족 관계, 직장의 직위, 연인 관계, 회사의 고객 등 모든 다양한 관계가 그 사람을 규정한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어떤 객체보다도 사람을 가장 잘 안다. 요새 반려동물 사육이 유행이고 어떤 사람은 자신을 애완동물의 집사라 말하지만 나는 그 사람조차도 애완동물의 의사표현을 사람이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알아듣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 간 의사를 전달하며 오래 지속될수록 관계는 농밀해지며 정확도도 증가한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익숙해지는 것이다. 길어야 10년, 15년에 불과한 시간 동안 그들은 서로에게 익숙하면서도 신기한 대상에서 반려 관계를 맺은 두 주체로 바뀌어간다. 그 동안 관계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항상 변화한다. 만약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독립적일 때, 서로가 익숙하지 않을 경우 관계는 없고 따라서 관계는 변화하지 않는다. 관계 자체가 없기 때문에 관계는 변화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생명체는 직·간접적으로, 또 진화계통수에서 볼 수 있는 진화적 유연관계를 맺고 있기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오랫동안 개를 길러왔으며 새로 이사 온 옆집에서도 개를 기른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이 당신의 개 이외의 개와도 관계 맺기를 좋아한다면 당신이 개를 기른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은 처음 개를 기르는 사람, 혹은 개를 길러보지 않은 사람이 옆집 개와 친해지는 것보다 짧은 시간 내에 옆집 개와 친밀한 관계를 맺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친해지는 속도는 전적으로 당신이 개를 기른 경험 유무나 정도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옆집 개가 사람과 친해지는 스타일이 일부종사형이라면, 다시 말해 처음 관계를 맺은 주인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놓고 그 이후의 관계는 부수적으로 보는 유형이라면 당신은 옆집 개와 안면을 트고 지낼 수는 있어도 깊은 관계를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치 이야기(Hachiko: A dog’s story)」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시부야 역에서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10년간 기다린 아키타 견 하치코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명작 「빨간 머리 앤」의 속편 「아들들, 딸들」에서도 나온다. 소설 배경인 캐나다가 영연방의 일원이었기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앤이 길버트와 결혼해서 낳은 첫째, 둘째 아들이 유럽 전선에 참전하고 첫째 아들 젬의 개는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몇 년간 기차역에서 동부 캐나다의 추위를 견디며 주인을 기다린다. 기다림의 끝에서 부상으로 다리를 저는 주인이 돌아오자 기다리는 동안 늙은 개는 아픈 몸을 번개처럼 날려 주인의 품에 안긴다.
그러나 변치 않는 관계는 극히 이례적이다. 대부분의 관계는 변화하고 전술한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직·간접적으로, 혈통적으로 관계가 있다. 모든 생명체는 초기 원시 단세포생물로부터 기원했다. 이는 모든 동식물과 심지어 미생물들까지 차이만 있을 뿐 혈통적으로 유연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의 유전체가 33억개의 염기로 구성된 22개 쌍의 염색체와 성염색체 한 쌍으로 이루어진 반면, 개의 유전체는 28억개의 염기로 구성된 38개의 염색체 쌍과 한 쌍의 성염색체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에게 더 있는 5억개 염기의 차이는 매우 커 보이지만 그 안에 의미 있는 유전정보가 많이 담겨있지 않기에 실질적인 차이는 별로 없다. 같은 젖먹이 동물이기 때문에 대단히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며 유전자를 이루고 있는 염기서열의 차이도 크지 않다. 더군다나 개는 인간이 능률적인 사냥꾼으로 변모한 이래(실제로 많은 토착 동물들은 인류의 조상이 그 지역에 진출한 이후 짧은 시간 내에 사라졌다) 세대를 반복하며 계속 인간과 사회적인 관계를 가져 왔으며 인간의 목적에 따라 의도했든 안 했든 육종이 이루어져 소화기관이 변화했고 대단히 다양한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아마 동물 종 중에서 개만큼 종 내의 변이가 큰 종도 흔치 않으리라. 작은 전구만한 두개골을 가진 치와와부터 송아지만한 도사견, 혹은 인명 구조견인 세인트 버나드가 같은 종이라는 것은 쉽게 믿기지 않는다. 이 변이는 사람의 목적을 동반한 관계가 진화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동물의 생물학적 진화에 극단적인 영향을 준 가장 전형적인 예일 것이다. 비슷한 유행의 영향이 중국 송나라의 금붕어 육종과 다윈이 살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비둘기 육종에 남아있다. 사자머리 같은 머리를 한 금붕어, 울퉁불퉁한 머리의 금붕어, 배가 뚱뚱한 금붕어, 알록달록한 금붕어 모두 야생의 버들붕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영국의 비둘기 육종가들 간에는 제한된 교잡 횟수 내에 얼마나 다양한 변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놓고 경쟁이 극심했으며 특이한 목도리를 한 비둘기, 공작 꼬리를 가진 비둘기, 눈가에 마스카라 같은 눈 화장 무늬가 있는 비둘기 등이 이 비뚤어진 의도를 가진 관계의 산물들이다. 이런 변이체들은 변이가 생존에 적합한 것이 아니기에 자연계에서는 독립적으로 살 수 없다. 그렇다면 곤충은? 많은 생물 유전학 실험에서 사용하는 초파리의 경우 이들과 사람이 동물이라는 것 이외의 다른 공통점은 찾기 어렵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초파리 유전자의 65% 이상이 사람에게도 있다. 이는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유전자의 발현에 있어 사람과 초파리에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암시한다. 아마도 초파리에게 있으며 사람에게 없는 유전자는 날개를 만드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 정도일 것이다. 심지어 곤충도 사람과 관계가 있다면 미생물은 어떨까? 미생물은 유전체 크기 자체가 작기 때문에 개나 초파리와 같은 방식의 비교가 어렵다. 하지만 인류는 지구상의 그 어느 생물보다 미생물과 가장 가까우며 많은 경우에 있어 이들에게 생존을 크게 의지한다. 인간은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간의 장 등 체내와 표피에 있는 미생물은 그 10배를 상회한다. 만약 사람 한 명을 다 갈아 넣어서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DNA를 추출한다면 그 중 사람의 DNA는 2%정도이며 나머지 98%는 사람 체 내외에 공생하는 불운한 미생물의 DNA일 것이다. 그 간 메타지놈 측면에서의 집단 유전체 연구 결과 장내 미생물, 혹은 장내 미생물상이 사람의 생존에 절대적 영향을 끼침이 알려졌으며 심지어 사람끼리 접촉하는 동안 서로의 미생물도 교환됨이 밝혀졌다. 먹을 가까이하는 자는 검어진다는 옛 말이 그르지 않았다. 미생물상 또한 사람의 식습관과 생활 패턴에 따라 변화함도 밝혀졌다. 이는 사람과 미생물 간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으며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음을 의미한다.
외부 생태계에서 유입된 미생물 혹은 병원체는 때로 토착 생물계를 붕괴시킨다.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6~1541)의 잉카 침략 때 전쟁으로 인해서 죽은 잉카 인디오의 수는 유럽 침략자들이 무단으로 가지고 온 천연두 등의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유럽인들은 오랜 기간 천연두에 시달려왔기에 이들의 면역 체계는 천연두 바이러스의 침공에 대비되어 있어 내성이 높았지만(아마도 내성이 높은 자들만이 세대를 거듭하며 살아남았을 것이다) 잉카에는 이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천연두가 없었다. 내성이 있는 유럽인들을 상대하던 천연두 바이러스에게 이들과 대적해 본 적이 없는 인디오들의 면역 체계는 무력했다. 침략 후 수 십년간 남미 인디오 20명 혹은 25명 중 1명만 살아남았으며 사망자는 천만명 이상이었다. 이는 한 쪽에만 이로운, 사람과 병원체 간 관계가 어떻게 끝나는지 보여주는 비극적 사건이다.
세계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된 지금, 어떤 생명체가 인간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까? 아마도 ET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립농업과학원 유전자공학과 농업연구사 안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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