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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

윤호정의 소설 '1950년 6월' <첫회>

기사전송 2009-06-08, 10: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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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소설가 윤호정(67)씨가 4일부터 단편 소설 ‘1950년 6월’을 연재합니다. 이 소설은 신선한 한 소년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정감과 유년생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의 자취를 따라 세대간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작가 琴川 윤호정 약력



△1942년 경북 영천 출생

△계명대 대학원

△대구경북섬유협회 전무

△주요 활동 : 계명대, 경동전문대 겸임교수.

△주요 저서 : ‘무역환경의 변화와 대구섬유의 진로(대구상공회의소)’




1. 호밀 밭에서 생긴 일(1)



오전수업이 끝날 때면 언제나 신이 났다.



일찍 집에 가봐야 특별히 맛있는 간식이나 재미있는 놀이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는 길이래야 고작 교문을 나서 국도 하나만 건너면 되는 엎어지면 무릎이 닿을 지척이지만 얼른 신주머니에서 검정고무신을 꺼내 신는데 발끝에 무언가 와 닿는 느낌이 왔다.



보나마나 영순이 이 가시나가 또 쪽지편지를 넣어놨구나 생각하면서 교실을 나와 변소 뒤쪽으로 가서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는 재빨리 꺼내 읽어보았다.



“호진아, 내일이 내 생일인데 아침 열 시까지 우리 집에 놀러 오너라, 우리엄마가 너 하고 같이 맛있는 케이크도 먹고 재미있게 놀아라 하더라, 그리고 너 줄 선물도 준비해 놨다, 꼭 와야 한다.” -영-



영순이는 작년 봄에 대구에서 강 건너 과수원으로 이사를 왔는데 세라복(해군식 여학생 복)에 란도셀(등에 메는 가죽가방)을 멘 예쁘장한 얼굴로 금호국민(초등)학교 이학년이반 우리반에 전학을 왔다.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급장(반장)인 나와 짝꿍이 되어 우리 반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 했고 영순이 어머니도 양머리(퍼머머리)에 빌로드 치마 와 양단 저고리 차림으로 학교에 자주 드나들었으며 금호장에서 나를 볼 때 마다 떡이나 엿을 사주었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것은 삼학년이 되어 모두 짝꿍이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계속 같이 앉게 되었고 늘 하던 대로 영순이는 내 책상 안에 과자를 놔 두거나 신발 안에 편지를 넣어두곤 했다. 나는 영순이 집에 한번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부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맛있는 케이크라는 것은 뭐고 또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모처럼 누나가 쓰는 비누로 머리를 감고 가루치약으로 이까지 닦은 후 아껴 두었던 국방색(육군군복의 카키색=흙먼지 색) 학생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와 강둑을 따라 과수원으로 가는 공구리(콘크리트)다리 쪽으로 걸어 나왔다.



강 건너에는 일제시대에 조성된 수십만 평의 과수원이 있었고 여기서 나오는 능금(사과)은 금호평야의 쌀과 함께 우리고장을 대표하는 특산물이자 부의 상징이었으며 영순이네 과수원은 이중에서도 제일 큰 축에 들어갔다.

영순이는 대문 밖에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나는 혹시 안 오는가 싶었다, 열 시가 훨씬 넘었는데 왜 이제야 오니?”하며 투정을 부렸다.



“우리 집에는 시계가 없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오랜만에 치장을 좀 하다가 보니 조금 늦었다, 느그 엄마 아부지는 다 집에 계시나?” “아버지는 능금조합에 급한 회의가 있어서 나갔고 엄마는 집에 있는데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다, 빨리 들어가자.”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과수원의 규모에 압도되어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접시꽃이 피기 시작하는 무성한 꽃밭을 지나 우리 집의 서너 배나 되어 보이는 일본식 가옥 안으로 들어갔다.



영순이 어머니가,

“호진이는 우째 이래 인물도 좋고 공부도 잘 하노, 우리 영순이 하고 사이 좋게 잘 지내거라.” 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먹을 거리를 듬뿍 내 놓고, “내 육속간(고기 파는 집)에 가서 고기 좀 사 올게, 잘 놀고 있거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느그 집은 참 부자구나, 집도 크고 라디오도 있고 축음기도 있고, 그런데 아까 그 젊은 처자(처녀)는 누구고?”



“우리 집 식모언니 아니가, 우리엄마의 먼 친척집 딸인데 나중에 우리 집에서 시집 보내준다 카더라, 대구에 있는 우리 집은 커다란 정원도 있고 이보다 더 좋은 이층집인데 우리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있다, 호진아 이거 한번 먹어봐라 정말 맛있다.” 하고 영순이가 삼지창(포크)으로 찍어 건네주는 것을 한입 베어 먹으니 이건 씹을 것도 없이 그대로 스르르 녹아 넘어가 버리고 부드럽고 달콤한 맛만 입안에 가득 남았다.



빵도 아니고 떡도 아닌 것이 정말 희한한 맛이었다.



“호진아 너 이거 처음 먹어 보지, 이게 생일 케이크인데 겉은 초콜렛이고 속은 카스텔라야, 우리아버지가 내 생일이라고 대구에서 사온 거다, 너의 집에서는 생일날 뭐해 주니?”



“아무것도 안 해준다, 그냥 뜨신 쌀밥에 생계란 하나만 넣어 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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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한마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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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초 2009.06.13, 20: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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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그 시절에 태어나진 않았지만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맑고 천진스러운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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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정길 2009.06.15, 10:5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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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수한 경상도사투리에다 60여년전의 초등학교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어서 요즈음 어릴적 고향에 와서 사는 즐거움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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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아 2009.06.16, 22:3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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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샌는 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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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포도 2009.06.19, 14: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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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고향 금호 이야기네, 맨 앞에 모자쓴놈은 꼭 50년전의 내 모습이고 옆에 심술궂게 생긴 여학생은 옆집누나 영순이와 판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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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포도 2009.06.19, 15: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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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앞에 모자 쓴 놈은 50년전의 나와 꼭 같고 옆에 심술궂게 생긴 여학생은 옆집 영순이 누나와 판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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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포도 2009.06.22, 16: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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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쪽에 선 누나야, 코라도 좀 닦고 사진을 찍을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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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춘태 2009.06.24, 21: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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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수한 사투리에 정겨운 필체가 인상 깊습니다.저의 소년 시절을 아련히 연상 시켜줍니다.계속해서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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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자기 2009.07.14, 11: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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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상 반갑습니다. 소설 1950년 6월 잘 보고 있습니다. 후쿠이에 놀러 오세요,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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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델라카 2009.07.18, 14: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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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합니다 금호초등 후배입니다 영순언니도 잘알지요 그시절 정말 어려운 시절이엇지요 지금생각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남지요 아무쪼록 건안하시고 다음작품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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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 2009.07.18, 18: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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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대초 아홉살 어릴적 이야기는 6.25 격전지 금호에서 체험한 70대 우리들의 이야기 입니다. 윤선생 건강하시고, 후속작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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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래꽃 2009.08.25, 16: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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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연재소설은언제나옴니까? 좋은글계속써주새요 재미있글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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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꽃 2009.08.25, 16: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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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미있는글 계속나옴니까? 좋은글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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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동기 2009.08.25, 16: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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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게 잘 읽고있습니다 옛 추억이 그립습더 다음에도 더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언제나그리운찔래꽃피는네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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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혁주 2013.05.20, 21: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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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옛날로 가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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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혁주 2013.05.20, 21: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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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옛날로 가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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