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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

<소설 '1950년 6월'> 1.호밀 밭에서 생긴 일(2)

기사전송 2009-06-10, 09: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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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이것저것 주워 먹는데 영순이가 정색을 하고 내게 물었다.



“호진아 너는 내가 싫으나, 오늘 똑바로 말 한번 해 봐라, 과자는 왜 도로 갖다 놓고, 또 책상 한복판에 줄을 그어놓고 못넘어 오게 하고 왜 그러는데?”“싫고 좋고가 어딧노, 여기는 시골 아이가, 대구 같은 도시하고는 다르다 말이다, 여기서는 표나게 행동하면 큰일난다, 소문나마 우얄라(어쩌려고) 카노, 남사시러버(창피해서) 학교도 못 댕긴다.”“내사 소문나도 괜찮다, 소문나면 우리 혼인하면 될 거 아니 가?” “가시나가 못하는 소리가 없네, 대가리에 소 똥도 안 벗거진 게 무슨 시집장가를 간다 말이고?” “왜 못 가는데, 며칠 전에 육학년 전교회장이 장가 가는데 교장선생님이 상 객으로 따라간 것 너도 알고 있지, 그런데 우리라고 시집장가 못 갈게 뭐가 있니, 지금 안되면 나중에라도 날 색시 삼을 거가 안 삼을 거가 분명하게 말 해 봐라.” 하고는 내 옷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영순이가 싫지는 않았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창 밖의 능금나무만 멍하니 내다 보고 있었다.



“너 내 말고 다른 여생도 누구 좋아하는 아이 있지?”“그런 거는 없다.”“그러면 뭣 때문에 너하고 수자하고 어쩌고 저쩌고 소문이 나 있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른대로 말해봐라.” 하고 다그쳤다.



“일은 무슨 일, 그거는 일학년 처음 들어 와서 우리 반에서 제일 이쁘고 옷도 잘 입은 술도가 집 딸 수자하고 나하고 짝꿍이 되니까 정길이가 샘이 나서 지어낸 말이고 그전에는 과자하고 떡을 몇 번 얻어 먹은 적이 있지만 니 하고 짝이 된 후부터는 말도 한번 안 해 봤다. 그렇지만 나는 우리 선생님은 좋아한다.” “피-, 우리끼리 서로 좋아하는 거 하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거 하고는 다르다 이 바보야, 너는 공부는 잘하면서 그런 거는 왜 모르니, 너 혼자서 선생님을 백날 짝사랑해봐야 아무 소용없는 일이고 또 다른 학교로 전근 가버리면 그만 아니 가, 그리고 지난주에 너가 노크도 없이 변소 문을 활짝 열고 내가 오줌 누는 거 다 봤잖아, 그러니까 나중에 우리 신랑각시 하기로 오늘 약속 안 하면 안 된다.”하면서 새끼 손가락을 내 밀었다.



“그때는 내가 설사가 나가 급해서 안에 누가 있는 줄도 모르고 대변소문을 열었는데 니가 안에 있으면서도 와 문을 안 잠가 놨노?”“어찌 됐던 간에 그런 경우에는 무조건 본 사람이 책임져야 되는 거다.”“그런 게 어딧노, 그라마 나는 책임져야 될 여자가 열명도 넘는다, 저녁 답에 강변에 한번 나가봐라, 여자들이 아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다 빨가벗고 목욕 하는데…”“내 말은 그런 게 아니고 아무도 없는 데서 단 둘이서만 봤을 때 이야기 아니 가, 길가는 사람 다 불러놓고 물어봐라,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나는 도시에서 살다 온 영순이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의 거침없는 말솜씨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걸긴 했으나 뭔가 찜찜한 게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나 영순이는 얼굴이 환히 밝아지면서 책상설합을 열더니, “이거 우리 신랑각시 하기로 약속한 선물이다, 지난 봄방학에 엄마하고 같이 서울 갔을 때 너 줄려고 특별히 사온 거다, 너는 서울 안 가봤지?” 하면서 일본제 야마하 하모니카를 내 놓았다.



(그런데 가시나 이거는 사람 불러다 놓고 기 죽일라고 작정을 했나, 말끝마다 처음 먹어 보지, 안 가봤지 하고 남의 속을 뒤집어 놓노, 오늘 괜히 왔다 싶으네)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 엄청난 선물에 눈이 번쩍 뜨여, “영순아 미안하다, 나는 니께 선물 해줄 끼 없다, 우야만 되겠노?”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괜찮다, 너는 선물 안 해도 된다, 이런 촌구석에 선물할게 뭐가 있겠니, 그대신 우리 신랑각시 하기로 약속한 거 잊어 버리면 절대로 안 된다, 손가락 다시 한번 더 걸자.”이번에는 나도 자신 있게 양 새끼손가락을 다 걸고 도장까지 찍으며 힘차게 흔들었다.



영순이는 입이 귀까지 찢어지며, “자 우리 신랑각시 놀이 해보자.”고 했다.



“신랑각시 놀이가 뭔데?”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상위에 떡하고 과자도 있고, 물도 한 그릇 있으니 내가 절 두 번 하면 너는 한번만 하면 된다.” 하고는 나를 맞은편에 세우더니 큰절을 두 번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절을 할까 말까 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영순이가, “너도 절 한번 해라.” 하고 재촉을 했다.



내가 엉거주춤하게 절을 하자 영순이는 헤헤 웃으며, “이제 우리는 신랑각시가 됐으니 그만 불 끄고 자자.”하면서 불 끄는 시늉을 하더니 나를 억지로 방바닥에 누이고`여보-옹’하고 콧소리를 내며 내 팔을 당겨 팔베개를 하더니 한쪽 다리를 내 배위에 턱 올려 놓고는 자는 척 하며 숨을 색색거렸다.



이때 영순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순아 아버지 오셨다, 이리 와서 인사하고 점심 먹자.”



우리는 기겁을 하고 잽싸게 일어나 옷 매무시를 고치며 안방으로 건너가 영순이 아버지께 설날에 세배 하듯이 넙죽 큰절을 했다.



“아이고 우리 호진이 인사 하는 것 좀 보소, 얼마나 으젓한교, 여보 장래 사윗감한테 절값 좀 주소.”하자 영순이 아버지는, “그 놈 참 총기는 넘치는데 몸이 좀 약해 보이는구나.”“촌에는 모두 먹는 게 부실해서 그렇심더, 중학교에 들어가면 대구 우리 집에서 잘 먹고 운동하면 괜찮을 거라예, 안그래도 오늘 고기를 좀 준비 해 놨심더.”“남자는 공부도 잘하고 몸도 튼튼해야 한다.” 하면서 영순이 아버지가 가죽지갑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그려진 새 천 원짜리를 석장이나 빼내 주었고 나는 좀처럼 만져 볼 수 없는 거금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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