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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

<소설 '1950년 6월'> 1. 호밀 밭에서 생긴 일(3)

기사전송 2009-06-11, 09: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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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순이와 나란히 의자에 앉아 잔칫상 보다 더 잘 차린 식탁에서 맛있는 점심을 배불리 먹었으나 사돈네 안방처럼모든 것이 생소하고 불편하여 빨리 이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더욱이 얼떨결에 영순이와 신랑각시가되기로 손가락을 걸긴 했지만 영순이 어머니까지 장래 사윗감이니 어쩌니 하는바람에 부끄럽기도 하고 영 기분이 찝찔했다.



“영순아 인자 마 나는 우리 집에 갈란다.” “왜 벌써 갈라 하는데, 더 놀다가 저녁 먹고 가거라.” “아이다, 우리엄마가걱정 많이 하지 싶으다.” “너의 엄마가그렇게도 무섭니?”“그런 거는 아이지만이야기도 안하고 집을 나온 지가 오래돼서…”“그래도 못 간다, 내 하고 신랑각시 하기로 해놓고 왜 내말을 안 듣니, 너 정말로내 말 안 들을래?”하고 나를 노려 보았다.



나는 영순이의 말이나행동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기가 차고 어이가 없었다.



수자는 얌전한데다 내말을 고분고분히 잘 들었으나 영순이는 생긴 것과는 달리 선 머슴애처럼 덤벙대는데다 무엇이든 제멋대로였고 신랑각시 하기로 했으면 각시인 자기가 신랑인 내 말을 잘 들어야지 신랑인내가 왜 각시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지전혀 납득이 가지 않았으나 여기는 학교도 아니고 이래저래 주눅이 들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라마 내 한 시간만 더 놀다 갈게, 됐제?” “그래 됐다, 나는 풍금을 탈 테니 너는 하모니카 한번 불어 봐라.”영순이는오빠생각, 고향의 봄 등을 노래 하면서멋지게 풍금을 탔으나 나는 처음 불어보는 하모니카라 아무 노래도 제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어 짜증만 났다.



“재미없다, 그만하자, 나는 집에 갈란다.”내 기분을 알아차린 영순이가,“그러면 우리 아무도 없는 강가에 가서 놀다 오자, 집에는 엄마 하고 아버지가 있어서너가 안 편한 것 같다.” 하면서 내 손을잡아 끌었다.



과수원을 몰래 빠져 나오니 겨우 숨을좀 쉴 것만 같았다.



나는 영순이와 손을 잡고 우리 키 보다더 자란 호밀 밭 사잇길을 걸으며 호밀대로 만든 보리피리와 토끼풀 꽃 반지를 만들어 주었고 가위 바위 보로 아카시아 잎따먹기도 하고 함께 노래도 부르며 쉴 사이 없이 조잘거리기도 했다.



영순이는 주로 대구에서 생일날 동무들을 불러 맛있는 청요리(중국요리)를시켜 먹으며 재미있게 놀았던 것과 활동사진(영화)이나 곡마단(서커스)구경을간 것들을 예기했으며, 나는 여름이면 금호강에서 사발로 고기를 잡거나 고디(다슬기)를 주우면 재미가 있고 가을에는 메뚜기와 참새를 잡아 구어 먹으면 참 맛있다는 이야기들을 늘어 놓았다.



“메뚜기는 나도 잡아 봤는데 참새는 어떻게 잡지?” “참새를 잡을라 카마 쌀 한홉을 소주에 푹 담가 놨다가 땅콩껍데기하고 같이 감나무 밑에 뿌려놓으면 참새들이 몰려와서 잔뜩 주워먹고는 술이 취해 날지를 못하거든, 그러면 우두머리가`야들아 우리 한숨 자고 술 깨거든 집으로 돌아가자’하면 모두들 땅콩껍질을 베고 떨어진 감나무 잎을 당겨 덮고는 천지를 모르고 낮잠을 자는 거야, 이때 살금살금 기어가 모두 대소쿠리에 주워 담아검은 보자기를 덮어 놓으면 밤인 줄 알고계속 누워 자는 거야.” 영순이는 우스워죽겠다는 듯이 깔깔대며,“그런 게 어디있니, 너 날 놀리려고 일부러 후라이 쳤지(거짓말 했지)?”“후라이가 아니고 진짜다, 나는 호랑이 잡는 법도 다 알고 있다.”“그러면 호랑이는 어떻게 잡는데?”“호랑이는 개고기를 제일 좋아하거든, 그래서 강아지에 참기름을 듬뿍 발라 튼튼한 밧줄로 나무에 메어두는 거야, 그러면밤에 호랑이들이 내려와서 잡아먹어도매끄러워서 씹히지도 않고 똥구멍으로쏙 빠지거든, 그러면 다음 놈이 또 삼키고 빠지고 하여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다.”“……!?”이러는 사이에 어느덧 강가에 이르러 갯버들 숲 속으로 숨어들어 가려는데 아래쪽 여울목(물살이 빠르고 턱이 진 곳)에서 떠들썩한 아이들의말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밭고랑에 엎드려 호밀대를 벌리고 내다보니 이거 정말 야단났네, 우리반에서 나하고 가장 친한 정길이가 동네 아이들과 함께 반두를 들고 고기잡이를 하면서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게 아닌가,들키면 큰일이다 싶어 영순이 귀에다 대고, “쉿 조용히, 정길이다, 내 뒤에 바짝붙어가 머리 수그리고 숨도 쉬지 마라.”영순이는 내 등뒤에서 나를 껴안고숨소리를 죽여가며 한참을쥐 죽은 듯이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들의 목소리가 무너미(물이 넘쳐 흐르는 곳) 쪽으로 점차 멀어지자 팔을 더욱 조여 오며 뜨거운 입김을 마구 내 귓불에 뿜어대는 바람에 내 몸은 공중으로 붕 뜨는 듯 하다가무언가에 떠밀려 맥없이 자빠졌고 잇따라 영순이도 내 위에 엎어졌다.



이어 오뉴월 풋보리 보다 더 풋풋하고알싸한 영순이의 살 내음과 밤꽃냄새가진동을 했고 귓가에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멀리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어렴풋이들려왔다.



“칠성아, 이 보따리 자전거뒤에 실고, 학교 앞에 호진이집에까지 좀 데려다 주고 오너라, 그라고 다리 건널 때 자동차 오거든 내려가 끌고 가거래이”“예 알겠심더, 뭐 사올 꺼는 없습니껴?” “고기는 아까사왔고 음식도 많이 남아 있으니 모레 장날까지 한번 버티어보자.”일꾼이 짐을 싣는 동안내가 영순이 어머니께 깍듯이인사를 하고 자전거 앞자리에오르자,“그래 잘 가거라, 그런데 호진이가 고무신을 신었구나, 운동화를 한 켤래사줘야겠네, 엄마한테 안부 전하고 모시로 바지저고리와 옥색치마저고리도 해야되고 양단 옷감도 구경 한번 했으면 싶으니 다음장날 좀 보자고 해라.” 했고 영순이는 빨개진 얼굴로, “호진아 잘 가, 다음일요일에 또 와.” 하고 손을 흔들었으며나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화난 얼굴로.



“니 온종일 어데 가 있다가 이제사 오노, 점심은 얻어 묵었나?” “과수원 들 머리 거랑(개울)에서 고기 잡는 거 구경하고 있는데 양머리 아지매가 오늘이 내 짝인 자기 딸 생일이라고 자꾸 가자케서 할수 없이 따라가 점심 먹고 왔다.” 하고 대충 둘러댔다.



“그래 잘 차렸더나, 그집이사 부자니까… 우리 호진이도 생일상 한번 차려줘야하는데, 하기사 느그 아부지 생일도 그냥지나쳐 버렸는데…” 엄마는 딸 넷을 내리낳은 뒤 마흔이 넘어 나를 늦둥이로 낳은데다 전교 일등은 물론이고 영천군 전체초등학교 삼학년 일제고사에서도 일등을하여 도지사상을 받는 등 워낙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나에 대한 집착이 유별났으나 집안형편이 넉넉지 못함

을 늘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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