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50년 6월'> 2.그 해 길고 무덥던 여름방학(4)
<소설 '1950년 6월'> 2.그 해 길고 무덥던 여름방학(4)
  • 대구신문
  • 승인 2009.06.2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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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떨어지든 변소가 넘치든 그런 것은 아예 모른 척 하는 아버지였으나 엄마는 끼닛거리가 없어도담배와 소주, 신문만은 떨어지지 않게 항상 갖다 바쳤다.

취기가 돌면 겨우 석 잔의 소주가주량이면서도 스스로 주정뱅이라고 표현했으며 언제나 엄마와 자식들을 남이라고 했다.

“남의 지아비와 남의 애비가 되어느그들을 고생만 시키고 허구한날술타령만 하고 있으니 정말 면목이없구나.” 하면서 한탄을 한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아버지에게 있어서 소주는 술이 아니고 눈물이라는 것과 담배는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이라는 것을 나는 일찍부터 잘 알고 있었다언젠가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니, “은해사의 주지가 동경유학을 같이한 친구니까잣나무를 입찰 봐서 대구 큰장(서문시장)에 잣을 내다 팔아보겠다.”고하여 엄마가 돈을 변통해주어 낙찰은 받았으나 입찰에서 탈락한 기존업자와 큰장의 장사꾼들이 짝짜꿍이 되어 가격담합을 하는 바람에 본전도 제대로 못 건지고 얼마 남지 않은 고향의 전답만 날려 버렸다.

우리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너무 속 빼 닮았다.

얼굴, 체격, 성격, 글재주는 물론심지어 걸음걸이까지 안 닮은 게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타인이 된 자신이거나 분신으로 생각했으며 표현은하지 않았으나 나와의 관계를 부자지간을 초월한 둘이면서 하나이고하나이면서 둘이라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내가 천자문을 배울 때 아버지는,“선비는 대추 한 알로 사흘요기를할 줄 알아야 하고 절대로돈이나 재물 같은 것에 곁눈질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으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월사금이나 사친회비와 같은공납금이 밀릴 정도로 가세가 기울어 지자 아버지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칠 남매의 막내인 내가 조실부모할 경우에 대비하여 스스로생각하고익혀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하도록유도했으며 나를 실패한 당신, 즉 공부만 잘하는 무능력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또한 나에게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대구의고모님과 형님에게 차비도 없이 심부름을 시키거나 은해사에서 잣나무 입찰을 보고 인부들을 들여 잣을수확할 때와 향교에서 진행되는 각종행사 및 집안의 대소사에도 나를데리고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했다.

그리고 앞으로 큰 인물이 되려면비판적인 사고와 논리적인 표현능력을 길러야 한다면서 매일 신문사설을 베껴 쓰고 큰소리 로 읽도록했으며 어려운 단어와 문장은 쉬운말로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유엔에서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유엔군의 참전이 결정되자 아버지는 앞으로 미국세상이 온다며재빨리 중학교 영어책과 `만국약사’라는 역사책을 구해와 무덥고긴 여름방학을 나와 함께 영어, 세계사와 씨름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는 태산처럼 높은 산이 되어 나를 받치고 있었으며나는 김상도 그 자식이 우리의 대장이고 영웅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의대장이고 영웅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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