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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

<소설 '1950년 6월'> 3.술래잡기와 퇴학소동(2)

기사전송 2009-07-06, 09: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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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방학을 한 관계로 더위가 가시기도 전에 여름방학을 일찍 마치고 개학을 하자 조선생님을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던 노총각인 체육담당 김기원 선생님이 발설한자를 수소문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나 당사자인 우리선생님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태연하기만 했고 나는 불안한 하루 하루를 보내며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을로 접어들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우리의 대장 김상도가 김기원 선생님에게멱살을 잡혀 교무실로 끌려가 복날에 개 맞듯이 얻어맞고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이제는 내 차례구나 하고 나는 사색이 되었으나 수업을 마칠 때까지 아무 일이 없어 나는 대장의 귀에다 대고 살 짜기 물어 보았다.



“많이 아프제, 내 이름도불었나?” “안불었다, 괜찮을 끼다” 하고 대장은 입가에 씁쓸한웃음을 흘렸다.



막 교실을나서는데 복도 끝에서 우리 선 생 님 과김기원 선생님이 무언가 심각하게 이야기를나누고 있었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다가가 술래잡기 하던 날 목욕탕에서 있었던일을 모두 털어 놓았다.



이를 듣고 난 김기원 선생님이,“이놈의 새끼.” 하고 솥뚜껑 만한 손을 올려 드는 순간우리선생님이 얼른 막아서며, “괜찮아, 빨리집에 가거라.” 하면서 내 등을 떠밀었다.



결국 이 사건은 교무회의에 보고 되었고 교장선생님은 크게 노하여 대장과 나를 당장 퇴학시키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았다.



과연 퇴학을 시킬 만큼 잘못을 저질렀느냐는 것과 나는 공부로 영천군에서 일등이고 대장은 달리기로 일등을 하다 보니 퇴학은 고사하고 정학이라도 시켰다간 혹시 다른 학교로전학을 가버리면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어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영천군의 신동으로 불리고 있는 막내아들의 일이 이쯤 되자 쌀이 떨어져도 변소가 넘쳐도 신문만 보고 있던 아버지가 의관을 갖추고 학교를 찾아가 정중히 사과를 하고, 엄마는 능숙한 말솜씨로 입에 거품을 물고 교장선생님께 따지고 들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방으로 불러 앉혀놓고,“이놈아 남자는 일곱 살에 철이 나고 아홉 살이면 지각이드는데 열 살이나 먹은 놈이 어쩌자고 다른 사람도 아닌 담임 여선생님을 두고그런 천박한 말을 할 수 있느냐?” 하며 크게꾸짖었다.



“아부지요, 지가 했는말 하고 소문하고는완전히 틀립니더, 지는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기 아인데 소문 내는 사람들이 살을 부쳐가 이상한 이야기가 된깁니더.” “나도 담임선생님한테 들어서 다 안다, 그러나 이번 일이모두 니 때문에 벌어진 일 아이가, 내 평생에남에게 고개 숙이고 빌어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하면서, “내가 돈이 많거나 면장자리에만 그대로 있었더라도 그까짓 게 무슨 큰죄가 된다고 퇴학 운운 했겠느냐, 다 이 애비가 못나서 니 어린 가슴에 상처만 안겨 주는구나.” 하면서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처음 보았다.



나는 퇴학에 대한 두려움에 앞서 교장선생님 앞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부끄럽고 참담했을까 하는생각에 치를떨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거리 전도사의 말대로 교회에 나가 전지전능한 창조주 이신하느님을 만나게 되면 평생을 남의 성냥 한 개비도 훔친 적이 없는 우리아버지와 나를 이처럼 가난과 절망의 늪에 빠트린 이유를 한번 따져보고 만약에 정당한 이유 없이실수로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면 그 손모가지를 당장 잘라버리고 싶었다. 내가 검은 책보따리를 대청마루에 팽개치며, “나는 인자 학교도안가고 공부도 안 할란다.” 하고 퍼지고 앉아악머구리(잘 우는 개구리)울음을 터뜨리자 엄마가 아버지를 보고, “보소 내가 뭐라 카든교,일제시대에 벼슬한 사람들 다 재임용한다고 서울 한번 올라 가보라 안 카든교, 동경제대 나와가 전문학교 교수 했다 카마 암만 못해도 군수한자리야 안 했겠는교, 그랬으마 오늘 같은 우세(창피)는 안 당했지.”아버지는 한두 번 들어본 소리가 아니므로 아무 말이 없었다.



“보소 우리 대구로 이사 갑시더, 조선천지에 학교가 어디 금호학교 하나뿐이가, 더러버서 여기서는 더 이상 살기 싫구마, 우리 호진이가 전학 가겠다 카마 어느 학교든지 쌍수들어 환영 할낀데, 삯바느질을 해도 이런 촌구석보다야 대구가 훨씬 나을끼고, 또 즈그성(형)들이 공부도 시킬끼고…”아버지는 누나를 부르더니,“금호지서에 가서 대구 느그큰 오빠한테 전화 한번 걸어봐라, 무슨 방도가 있을끼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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