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는 대사가 모두 영어라 내용을 잘알 수 는 없었으나`아리랑’이나`검사와 여선생’과 같은 우리의 무성영화와는 달리 변사도없이 말이나 총소리 등이 동시에 나오고 미국사람들의 화려한 옷차림과 고층 건물, 자동차, 비행기 등은 나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아버지는 검둥이 아저씨의정체에 대해무언가 짐작을하고 있는 것같았으나 나는조금은 의심이가면서도 우리아버지 보다도 더 유식하고 인격이 높은 사람으로 생각 되었으며 그가옛날 예기처럼 들려주는 그리스 로마 신화,성경 이야기, 과학문명,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등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았던 나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를 내다 볼 수 있는눈을 뜨게 해 주었다. 특히 그는 각 분야에서세계제일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해주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우리나라가보잘것없는 약소국가라는 것과 미국이 세계최고의 문명국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고 육이오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도 알게 되었으며막연하나마 미지의 새로운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목욕탕 사건으로 퇴학소동을 치른 후우리 선생님에게 푹 빠져 있으면서도 영어 공부만은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검둥이 아저씨가들려준 링컨대통령과 발명가 에디슨을 비롯한 미국의 위인들과 톰소여의 모험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 반 아이들을 모아놓고신명 나게 해 주었다.
어느덧 나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일본식 영어를 바탕으로 하여 검둥이 아저씨에게 배운정통영어로 일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옆집 세탁소나 문방구에 미군이 오면 아예 통역으로 나서기도 했다.
특히 양색시들에게 온 영어편지를 읽어주거나 답장을 써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미군들이 가족이나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필해주기도 했으며 이럴 때는 꽤 수입이 짭짤하기도 했다.
엄마는 이웃에서 짠 발이 고은 명주나 삼베를 사 모으기도 하고 직접 짜기도 했으며 그날도 대청마루에서 옛날 베틀로 삼베를 짜고있는데 검둥이 아저씨가 군용 찝차를 타고 우리선생님 보다 더 예쁜 미국여자를 데리고 와서, “이분은 미국의 유명한 신문인 `뉴욕 헤럴드 트리분’지의 `마거릿히긴스’ 기자인데 아주머니가 베를 짜는 모습을 보고 사진을 찍고 싶어 합니다, 찍어도 괜찮겠지요?”하고 물었다.
엄마가 이를 허락하자 나는 미국영화에서 본대로 여기자에게 손을 내 밀어 악수를 청하며 영어로우리 가족들을 소개한 후 엄마와 여기자 사이의 대화를 더듬거리며 통역을 했고 이를 지켜보고 있던 검둥이 아저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보충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여기자도 놀란 듯이 베리굿 과 원더풀을 연발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고 나에관한 이야기와 사진도 신문에 크게 실어 주겠다면서, “감사합니다.” 하고 우리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씨레이션(휴대용 군용식량)한 상자를 내 놓았고 이 광경은 금새 온 동네에 알려져 구경꾼들이 몰려들었으며 내가 영어로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는 모두들 혀를내 둘렀다.
가을걷이가 한창일 즈음 검둥이 아저씨가또 양주 병을 들고 찾아와 조금은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맥아더 장군이 수도 서울을 탈환하고 승승장구 하며 북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의 인민군은 거의전멸한 상태나 마찬가지며 멀지 않아 북한이항복을 하게 되면 남북통일이 될 것입니다,저도 전쟁이 끝나면 이십여 년간의 해외생활을 청산하고 일본에서 약혼한 일본 여자와 같이 고향으로 돌아가 늦었지만 정식으로 결혼식도 올리고 어머니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오늘 따라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무척 보고 싶군요.” 하며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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