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50년 6월'> 4.검둥이 아저씨와 미국 유학(5)
<소설 '1950년 6월'> 4.검둥이 아저씨와 미국 유학(5)
  • 대구신문
  • 승인 2009.08.0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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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진아 너는 미국에서 공부를 다 마치면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지는 아저씨와아부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우리나라의대통령이나 유엔사무총장이 되겠습니더.” 그는 나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우리 호진이가이제 어른이 다 됐구나, 호진아, 야망을 가져라 그리고 신사가 되어라, 비 엠비셔스 앤드비 어 젠틀맨.” 하고 미국의 클라크 교수가 일본에서 했다는 그 유명한 말을 높이 외쳤다.

그리고 우리는 먼저 사진관으로 가서 나의상반신과 전신, 그리고 검둥이 아저씨와 나란히 앉은 사진을 찍은 후 금호관 이라는 청국집(중국집) 안방 문을 열자 놀랍게도 거기에는 우리선생님과 면장님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선생님은 검둥이아저씨와 악수를 하며 영어로 인사를 나누었고 내 손을 이끌어 옆자리에 앉혔다.

“여기 오는 도중에 다시 한번확인했습니다만본인의 결심은확고합니다, 문제는 호진이 어머니인데 선생님과 면장님이좀더 적극적으로 설득해 주십시오.” “호진이가 막내라 부모님들의 연세가높은 것이 문제군요, 그리고 방학 때 마다 집에보내줄 수 있는 방법만 있어도 좀 쉽게 풀리겠는데…”하며 선생님이 걱정을 하니 면장님이,“그까짓 거 내일 삼수갑산엘 가더라도 호진이엄마한테방학 때 마다 집에 보내준다 카고 일단 미국에 보내놓고 봅시다.” 라고 했다.

그러자 검둥이 아저씨는,“거짓말을 할 수는없지요, 한미간에 민간여객기만 있으면 어려울 것이 없는데 현재로서는 군용기를 이용할수 밖에 없으니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오늘 점심 후에 나와 같이 호진이 집에 한번 더 가보기로 합시다, 우리 금호면에 이처럼 큰 경사가 두 번 있겠습니까, 오늘 점심은 내가 살 테니 요리도 시키고 빼갈(중국 술)도 한잔 합시다, 그리고 미국으로떠날 때는 면사무소에서 환송회도 성대하게하고 유지들에게 부탁해서 여비도 좀 보탤 테니 모두 그렇게들 알고 계십시오.” “면장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두 분을 초대했고 지난번 선생님께 진 신세도 갚을 겸 해서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부탁한 약은 곧도착 할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미스터 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지…” “호진이 어머니만잘 설득해 주시면 됩니다”나는 우리엄마가 비록 상황판단을 잘못하고 있을지라도 이처럼도마 위에 올려져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싫어서 그 좋아하는 자장면도 엄마생각에 목에 넘어가질 않아 절반도 먹지 못했으며 검둥이 아저씨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언제부터 사귀었는지 우리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선생님과 면장님까지 이렇게친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보니…)우리선생님과 교장선생님, 면장님이 우리집을 다녀가고 난 후 엄마의 고집이 약간 누그러졌을 때 검둥이 아저씨가 심각한 얼굴로아버지를 찾아와, “일이 급하게 되었습니다,호진이의 미국유학 문제를 빨리 매듭 지어야겠습니다.” 라고 했다.

“전쟁이 끝나야 미국으로 가신다 더니 무슨문제가 생겼습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되어 저는 내일 서울로 떠납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긴 합니다만 중공군이 전면적으로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허- 일이그렇게 되었습니까, 정말 예상밖이군요, 그러면 호진이도 내일 같이 떠나야합니까?” “그런건 아니고 전쟁이 끝나기 전에내가 미국으로돌아가게 될 것같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때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네 가지 조건부로 나의 미국유학을 승낙하겠다고 했다.

첫째, 유학과 관련한 모든 비용은 오선생이부담할 것. 둘째,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는꼭 집에 보내줄 것. 셋째, 혼인을 하게 되면 꼭조선여자와 하도록 할 것. 넷째, 늦어도 서른살 이전에 영구귀국 시키고 그때는 파양할 것(양자의 인연을 끝냄).

이를 듣고 있던 검둥이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며,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다 받아 들이겠습니다, 담임 선생님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참 잘 생각 했습니다, 모든 것을저를 믿고 맡겨 주시기 바라며, 이것은 미국돈 이백 달러인데 나중에 내가 호진이를 데리러 올 때까지 필요한데 쓰시기 바랍니다” 하면서 이십 달러짜리 지폐 열 장을 내놓았다.

과연 우리엄마는 별명처럼 변호사다웠고검둥이 아저씨도태평양 같이 넓은 아량을 가졌다고 생각 되었다.

그날 저녁에는 옆집 세탁소와 문방구점 주인도 합석하여 닭도 몇 마리 잡고 밤늦도록술판이 벌어졌으며 나는 미국노래도 하고 하모니카도 불며 이별을 아쉬워했고 검둥이 아저씨와 아버지도 만취하여 젓가락 장단을 두드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검둥이 아저씨가 떠난 지 일주일도 안돼 미군부대도 어디론가 떠나고 다시 국군부대가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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