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950년 6월'> 5.연적에게 포로가 되다(2)
<소설 '1950년 6월'> 5.연적에게 포로가 되다(2)
  • 대구신문
  • 승인 2009.08.1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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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위는 돌아선 내 마음을 달래 보려고 오만 짓을 다했다.

밥은 부대에서 먹고 잠만 우리 집에서 자던 그가걸핏하면 우리식구 수대로 자장면을 주문하는가 하면 미군용 통조림을 상자 채 갖다 주기도 하고 아버지께도 양담배를 한 보루(열 갑 한 상자)씩이나 선물을 했으며 나보고는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하자고몇 번이나 예기했으나 나는 전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나와 최중위 사이에 냉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황이 아군에게 점점 불리해 지더니마침내 중공군에게 다시 서울을 내주고 일사후퇴를하게 되었다.

세상은 어수선하게 돌아가고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는데 날씨마저 왜 그렇게 땡추(매운 고추)처럼 매서운지, 몇 십 년만의 깡 추위로 가난한 이웃들의 겨울나기 걱정이 태산같았고 우리집도 엄마의 비단장사가 원래 여름과 겨울에는시원찮아 걱정이 많았으나 다행히 검둥이 아저씨가 준 돈으로 모처럼 등 뜨시고배부른 겨울을 날수가 있었다.

나는 난생처음 메리야스 내복이라는것을 입어보게 되었고 아버지는 유엔잠바(검정색염색을 한 미군용 겨울점퍼)를, 엄마와 누나는 털실로 짠 자겟또(재킷)를 사 입었으며 겨우내 먹을 양식과 땔 장작을 장만하고 김장도 넉넉히 준비했다.

엄마는 중학교에 다니는 면장 집 아들이 입고 있는 미제담요로 만든 오바(오버코트)를 내게 꼭 입히고 싶었으나 이것은 금호장에는 없고 대구에나 나가야 살수 있으니 난감 하기만 했다.
전쟁이 나자 대구를 오가는 기차가 끊어지고 화물트럭이 짐이나 사람들을 실어 날랐으나 얻어 타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를 보고, “대구 양키(교동)시장에가마 없는 기 없는데 타고 갈 차편이 있어야 가제,당신이 호진이 키하고 발하고 잘 재가 다음 영천장날 한번 가보소, 호진이한테 맞는 미제담요 오바 하고 목이 긴 가죽구두가 있는지, 없으마 염색한 담요를 한 장 사가 우체국 옆에 있는 김씨네 양복 집에 가서 맞추도록 합시더,그라고 구두는 슈산보이(구두닦는 아이) 시켜서 파래이(파리)가 낙상하도록 뺀질뺀질 하게 잘 닦아가 오소, 오선생이 각중에(갑자기) 와가 가자카마 돈을 그만큼이나 많이 받았는데입성(옷차림)이 저래 가지고야 되겠능교.”“키고 발이고 잴 거 없다, 나도 방학이고 아부지도 혼자 가실라 카마 심심할끼고 같이 영천장에 갔다 올란다, 오바야 조금 크다 싶은 거 사면 되지만 구두는 커도 안되고 작아도 안되고 발이 펀해야 되니까 내가 직접신어봐야 된다, 양말이나 두꺼운 거 준비해놔라, 그라고 엄마한테 맡겨놓은 돈 이천 원 아직 남아 있제,인자 그거 다 돌리도.”“그 돈은 와 돌라카노, 어데쓸라꼬?”“영천장에 가마 아부지한테 고기에 정종(청주)을 사 드릴라 칸다, 나도 미국 가기 전에 효자노릇 한번 하고 가야 안 되겠나.”“저 말하는 것 좀보소 어른보다 낫구마, 부자간에 같이 가서 뜨신 국밥도 한 그릇 사 자시고 동네 사람이나 와촌 고향사람들 만나거든 호진이 미국유학 간다 카고 술이라도한잔씩 돌리고 오소.”“그런거는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걱정일랑 붙들어 매소, 동네 사람들은 나중에날 잡아가 음식을 좀 장만해서 술 한잔 대접해야 되고, 영천 간 김에 향교에 들러 호진이 관례 치르는일을 좀 의논해 보고 거기서 어른들 하고 점심을 같이 했으마 싶으다, 남아가 청운의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는데 장가는 못 보내더라도 관례라도 올리고자(字: 관례를 올리거나 장가를 들면 어릴 때 이름대신 높여서 부르는 이름)를 받아 조상님께 고하고가야 안되겠나.”최중위가 퇴근을해서 들어 오더니 엄마와 나를 꼭 좀 보자고 했다.

나는 최중위의 꼴도 보기 싫었으나 엄마 손에 이끌려 사랑채로 건너갔다.

최중위는 며칠 전에 아버지와 엄마가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 대구 간 김에 담요 오바를 사 왔다면서 맞는지 입어보라고 했고 엄마는, “아이고 이렇게 고마분일이 또 어딧겠노, 한번 입어봐라.”고 했다. 나는 진짜로 입어보기 싫었으나 엄마가 겁이 나서 일단 입어보니 약간 할랑하면서도 꼭 맞았다.

“아이고 우야마 요렇게 자로 잰 듯이 꼭 맞노, 최중위 눈이 보배네, 예야, 고맙다고 인사 좀 해라”나는 할 수 없이, “고맙심더.” 한마디 하고는 천정만처다 보고 있었다.

최중위가 또 편지 한 통을 내 놓으며 “호진아 미안하지만 이 편지 내일 본가에 가있는 선생님께 좀 갖다 줄래?” “우리선생님이 싫다 카는데 와 자꾸 편지를 보내는교, 그럴라 카마 우리집에서 당장 나가소.” “호진아, 그게 아니야.” “아이기는 뭐가 아이라요, 우리선생님이 내보고 편지 심부름 하지 마라고 했어요.” “호진아 이것은 연애편지가 아니야, 너희 선생님하고 나하고는 서울에서부터 대학도 같이다니고 잘아는 사이야, 그리고 나 일선부대로 전속됐어, 그래서 선생님께 알려 주고 떠나려는 거야, 나는 내일 떠난단다, 호진이도 미국유학 잘 갔다 오고먼 훗날 우리 다시 만나자.” “뭐라꼬요?” 하고 나는깜짝 놀랐다.

지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일선으로 간다는 것은 곧 죽으러 간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할말을 잊어버렸다.

최중위가 일선으로 가고 나니 전쟁터에서 다 잡아놓은 적장을 놓친 것처럼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일선으로 가기 전에 결판을 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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