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입은 시골마을…발걸음 붙잡는 강한 끌림
예술 입은 시골마을…발걸음 붙잡는 강한 끌림
  • 남승렬
  • 승인 2016.09.0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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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경북 마을이야기-영천 가래실문화마을
정자·서원 등 풍부한 전통 문화자원
2011년 공공미술 프로젝트 후 유명세
정자·담벼락·버스 정류장 등 새단장
담장 허문 시안미술관, 새 랜드마크로
올해부터 예술인 레지던스 사업 진행
보현산 천문과학관서 별 관측
최대 구경 1.8m 광학망원경 자랑
일일이 손질한 육회, 입맛 자극
“주민과 함께 예쁜 정원 만든다는 생각으로 마을 가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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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가래실문화마을
산 속에 들이 있고 실개천이 흐르는 영천 가래실문화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로서 최근에는 마을의 자연 풍광과 주민의 일상이 예술작품과 연계된 문화마을로 각광받고 있다.
“저 쪽 동네 포장마차에서 얘기하시더. 찌짐도 먹고 포도도 잡수면서….”

경북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일명 ‘가래실 문화마을’의 첫인상은 정겨움이었다. 9월의 초입, 마을 취재차 찾은 가래실문화마을 권효락 사무국장은 구수한 사투리로 반겼다. 마을기업 형식으로 운영되는 ‘가래실 포장마차’에서 동네에 대한 이런 저런 설명을 듣던 중 중년의 여인이 포장마차 의자에 앉는다.

“기자들이 왔으면 나를 찾지 않고, 왜 권 국장하고 이야기해 하하.” 웃음소리가 호탕하다. 이 마을에 자리한 시안미술관 변숙희 관장이다. 명함을 주고 받으며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권 국장과 변 관장은 마을 소개는 잠시 잊은 채 동네 대소사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다.

“아, 죄송합니다. 손님을 앞에 두고 우리끼리 동네 이야기만 했네요. 허허. 원래 우리 동네가 이래요. 변 관장님도 외지 사람이지만 이제 우리 동네 식구 다 됐어요. 지금도 봐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대가도 없는데도 주민들이 미술관 주변에 자라난 나무 정리 중이잖아요. 허허.”

권 국장의 말이 끝나자 변 관장이 화답한다.

“(가래실문화마을이) 이젠 그냥 고향이지요. 뭐. 전국에 많은 문화마을이 있지만 우리 마을처럼 농촌 이미지 훼손시키지 않고 주민들끼리 화합 잘 되는 동네는 아마 없을 걸요?”

오누이 같은 두 사람의 모습이 정겹다.

영천 화산면 가상리 가래실은 시골 동네의 풍경을 품고 있다. 앞뒤 산 속에 들과 실개천이 흐르는 농촌마을로 안동 권씨, 영천 이씨, 창녕 조씨, 평산 신씨, 청주 양씨 등 5개 성씨의 집성촌으로 이뤄져 있다. 재실과 정자, 서원 등의 전통적 문화자원이 풍부한 마을이다. 옛날 정미소, 우물, 정류장, 토성, 폐가 등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고 시안미술관이 있어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산물로는 복숭아, 포도, 마늘 등이 있다.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던 이곳이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상리를 비롯한 이 일대 5개 마을은 정부가 추진한 ‘2011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선정돼 이른바 ‘신(新)몽유도원도 - 다섯 갈래 행복길’가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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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예술대학 학생들이 그린 마을벽화.
신몽유도원도는 영천 화산면 가상리, 화산1리, 화산2리, 화남면 귀호1리, 귀호2리 등 5개 마을의 자원을 활용해 예술작품 45점을 설치해 종합 예술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방치 되거나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던 정자와 제실, 동네의 길과 담벼락, 버스 정류장, 낡은 정미소, 폐·공가 등은 예술이라는 옷을 입고 새단장됐다. 산업화에 밀려 사람들이 떠난 평범한 시골마을이 전국적인 ‘미술마을’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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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설치해 새롭게 단장한 폐가.
사람들은 이 5개 마을을 ‘별별미술마을’이라 불렀다. 특히 2004년 4월 폐교를 활용해 조성한 시안미술관은 ‘숲으로 간 미술관’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동네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시안미술관은 삼각지붕의 유럽풍 미술관으로 아담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경북도 최초의 제1종 등록미술관으로 향토작가는 물론 국내외 수준 높은 작가들의 예술작품을 연중 전시하고 있다.

변숙희 시안미술관장은 미술관 개관 이듬해인 2005년 담장과 정문을 허물고 미술관을 전면적으로 개방했다. 변화는 놀라웠다.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자 나들이 명소로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공연도 자주 열었다. 미술관 조각공원에 돗자리 펴고 공연을 보는 이들의 30% 정도만 유료 미술관에 입장할 뿐이었지만 관람객 수는 계속 늘어났다. 하나의 미술관이 활력을 잃어가던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주민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곳은 올해부터 3년간 총 6억원이 투입돼 정이 넘치는 문화마을로서의 기능을 더욱 공고히 한다. 특히 청년작가 현장 예술교실과 지역사회 연계프로그램 등 예술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진행해 예술인들이 머무르고 관광객들이 계속 해 찾고 싶은 마을로 조성할 계획이다.

권효락 가래실문화마을 사무국장은 “가래실은 5개 성씨 문중이 어우러져 살면서 예로부터 충, 효, 인, 의, 예, 지의 덕목을 지켜오고 있는 곳”이라며 “이제는 마을에 문화라는 옷을 입혀 지역의 자산 가치를 더욱 높여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서영진·남승렬기자

사진=전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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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숙희 시안미술관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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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가상리 가래실문화마을을 찾은 날, 늦더위가 약간 기승을 부리긴 했지만 들판에는 거짓말처럼 가을이 내려 앉았다. 들녘 포도밭에는 포도가 탐스럽게 매달렸다.

“이곳에 미술관을 처음 조성할 때 고민이 ‘어떻게 하면 시골마을의 틀을 깨지 않고 자연, 주민과 화합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미술관을 지을 수 있을까’였어요. 영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비록 시골마을에 자리한 미술관일지라도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전시를 하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 결과 여론의 관심이 쏠리게 되고 동네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지요. 찾는 사람들이 많게 되자 침체된 마을에 자연스럽게 활기가 돌더라고요. 처음에 외지인을 꺼리던 주민들과도 이제는 한 식구로 지내고 있어요. 호호.”

가래실에 미술관을 열고 13년째 이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는 변숙희 시안미술관장의 말이다.

변 관장은 KBS 대구방송총국에서 일하다 퇴직할 즈음해 남편과 사재 수십억원을 들여 폐교를 사들인 뒤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미술관은 가래실만이 간직한 자연유산 등과 시너지효과를 발생시켜 이 공간을 문화마을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변 관장은 “처음에 미술관을 지을 땐 학교를 빼앗겼다고 여겼는지 주민들의 경계가 매우 심했다. 그런데 미술관이 들어서면서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이제는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동네 일을 의논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조성한 미술관 정문과 담장을 허문 이유도 주민들과 소통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민들과 함께 하나의 예쁜 정원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가래실을 한국 최고의 문화마을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시안미술관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7시까지. 054-338-93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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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인다는 보현산 천문 과학관이 있다. 동양 최대의 구경을 자랑하는 1.8m 광학망원경과 여러 첨단 천체관측시설을 보유한 연구시설이다. 시안미술관에서 보현산 천문 과학관까지는 차로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해발 1천124m의 보현산은 대한민국에서 연중 가장 별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산 아래 마을 입구에 세워진 과학관은 일반인이 언제라도 방문해 고성능 카메라로 별이나 태양 등을 볼 수 있도록 한다.

포은 정몽주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임고서원도 놓칠 수 없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면 더욱 멋지다. 포도가 유명한 영천은 7월 중순부터 영천와인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직접 포도를 따 와인을 만들어 보고 유명 와인농장도 방문한다. 까브스토리를 비롯한 17개의 와이너리가 있다. 프랑스나 호주의 와이너리와 비슷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영천시외버스터미널의 편대장영화식당은 전국 최고의 육회 맛집 중 하나로 꼽힌다. 우둔살을 일일이 손으로 손질해 살코기만으로 육회를 만든다. 파와 깨, 참기름만 넣어 만든 육회에 상추무침을 넣어 비비는 비빔밥과 소고기된장찌개가 미식가들의 발길을 잡는다.

대구 약령시장, 안동장과 함께 경상도 3대 시장으로 손꼽히는 영천장도 인근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전통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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