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 대업 이룬 영웅들의 전설이 스민 ‘장군마을’
삼국통일 대업 이룬 영웅들의 전설이 스민 ‘장군마을’
  • 정민지
  • 승인 2016.09.1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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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고지바위권역마을

신라 김유신이 통일 국가 이루기 위해

당나라 소정방·이무 맞이한 곳서 유래

세 장군 업적 기리는 장군당 남아 있어

인접한 장기리·고곡리와 정비사업 추진

둘레길 등 역사·자연 활용 콘텐츠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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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군위군 고지바위권역사업의 일부인 효령면 장군마을은 삼국통일을 위해 신라 장군 김유신과 당의 장수 소정방, 이무가 이곳에서 모였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마을이다. 세명 장군의 위패가 있는 장군당에 오르면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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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당으로 가는 산책로는 300여개 계단으로 조성돼 오르내리기 좋다.
/news/photo/first/201609/img_208169_1.jpg"장군당/news/photo/first/201609/img_208169_1.jpg"
장군마을에는 김유신 소정방 이무 등 세 명의 장군 위패를 모신 장군당이 있다.
/news/photo/first/201609/img_208169_1.jpg"경북대
옛 장군초등학교가 폐교한 후 이 자리에 경북대 자연사박물관이 들어섰다.
서기 660년 어느 날, 세 장수가 한 자리에 모였다. 신라 장군 김유신, 당(唐)에서 온 소정방(蘇定方)과 이무(李茂)였다. 이들의 만남은 훗날 삼국통일 대업 달성의 신호탄이었다. 통일 국가를 꿈꾸던 신라는 백제 공략을 위해 당나라에 병력을 요청했다. 김유신은 5만 군사를 이끌고 당이 파견한 원군의 대장 소정방과 부장 이무를 맞기 위해 나섰다.

삼장군이 만난 장소가 바로 경북 군위군 효령면 장군리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넓은 평지가 있는 장군리는 수만 명의 군사들이 몸을 숨기면서도 머물기 좋았을 것이다.

삼장군은 장군봉에 지휘소를 마련하고 백제를 공략할 작전을 수립했다. 660년 7월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수도 사비성을 함락한 후, 삼장군은 다시 장군리에 들렀다.

“삼국통일이 됐으니 이제 안심하고 살아라.” 김유신의 말에 주민들은 기뻐했고 이 마을은 자연스레 장군마을(고지바위권역마을)로 불리게 됐다.

긴 가뭄 끝 가을비가 제법 내린 9월의 주말, 군위 장군마을에는 병사 대신 산안개가 주둔해 있었다. 안개에 둘러싸인 산들은 1300여년 전 삼장군이 모일 때도 똑같았을 거라 상상돼, 어딘지 비현실적이었다. 천년이 넘는 시간도 자연 앞에서는 무색했다.

김유신 소정방 이무, 세 명의 장군이 정말 장군마을에 들렀을까. 야사와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 장군당의 존재 등으로 추측할 뿐이다.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경주를 출발해 사비성으로 향하던 김유신과 군사들이 영천·신녕·소계(현재 효령면 화계리)를 거쳐 이곳에 진을 치고 유숙한 것을 두고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공길상 장군4리 이장은 “삼장군의 업적을 기리거나 삼국통일 의미를 후세에 되새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며 “무엇이든 우리 마을이 삼국통일 대업을 이루는 가운데 등장한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 지리적 요충지였던 장군마을은 현대에도 경북의 주요 교통망인 국도 5호선의 바로 옆에 위치해 사람들의 드나듦이 많다. 과거 국도 5호선이 왕복 2차로에 불과하고 길이 험했던 시절, 장군마을은 오일장으로 유명했다. 인근 장기리에 있던 효령면사무소가 1914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장기리에 있던 효령시장이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1990년대 초 없어지기 전까지 군위에서 가장 큰 시장이었던 장군리 시장은 우시장도 인기였다. 현재 구효령 정류소 뒤가 시장터였다고 한다. 시장을 따라 주막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마을은 흥했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시장이 있었던 장군4리 마을회관 앞 넓은 공터를 통해 대략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1960년대 8만명이었던 군위의 인구가 2만5천여 명으로 줄어든 만큼 장군리도 쇠락을 피할 수 없었다.

장군마을은 지난 2013년부터 인접한 장기리, 고곡리와 함께 ‘고지바위 권역단위 종합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인구감소에 따른 농촌 마을 침체를 개선하기 위해 생활환경과 지역 경관을 바꾸고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사업이다.

‘고지바위’는 이 일대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고지바우라는 큰 바위에서 이름을 땄다. 권역 내 ‘고암동’ 역시 고지바위를 달리 부르는 지명이다. 바위는 없어졌지만 이름은 남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주민들은 과거 큰 홍수로 동네 하나가 사라졌는데 그때 바위도 없어진 것이라는 추측도 내놨다.

이 사업을 통해 장군마을은 장군당과 마을 못인 자림지, 대나무 숲길 등을 엮은 둘레길을 만들 예정이다. 폐교한 장군초등학교에 들어선 경북대 자연사박물관과 연계해 역사와 자연을 입힌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농촌마을이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마을 주민들의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이준남(여·54) 고지바위 권역사업 부위원장은 “자연사박물관을 찾은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장군당 이야기를 녹인 둘레길을 걸으며 하루 쉬고 갈 수 있는 그런 마을을 만들고 싶다”며 “산과 들, 유적 등 마을에 있는 자원을 그대로 살리면 그 자체가 볼거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글=김병태·정민지기자

사진=전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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