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길들여지지 않는 …
관계, 길들여지지 않는 …
  • 승인 2017.05.2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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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사랑을 한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을 하고, 그 사랑과 이별을 한다. 사랑은 삶의 중요한 목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단이 되어 주기도 하며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중요하고 흔한 대중 예술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사랑은 관계 중 하나이고 그 관계가 자연스러운 시간의 경과나 이유로 인해서 사라지게 되면, 상처가 아물기도 하고 시간이 약이라는 속담이 통할 수 있으나, 억지나 사고로 인한 끊어짐은 그야말로 한으로 남게 마련이다. 그 한(恨)은 좀체 풀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이유는 이해할 수도 수긍할 수도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린왕자는 1943년에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가 발표한 작품이다. 이 짧고도 아름다운 동화 같은 소설이, 아니 소설 같은 동화에서 보여주는 대화들이 거의 선문답에 가깝다. 어린 시절에 읽어본 어린왕자는 대단한 작품으로 여겨지지 않은 것이, 그냥 단번에 어떤 내용인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어본 동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도 이견(異見)이 거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들은 모두 어린왕자였기 때문이었다. 사물에 대한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왜곡된 시선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고, 보아 뱀이 코끼리를 얼마든지 삼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작가의 억지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막여우는 어린왕자와 수줍게 첫인사를 나눈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선뜻 다가서지 않고 먼저 ‘길들여주기’를 요구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고 별이 아름다운 것은 꽃을 품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한편으로 쓸쓸함도 느껴진다. 결국 어린왕자에게 첫사랑일지도 모를 한 송이의 장미를 품은 별로 돌아가는, 어쩌면 여우와의 이별을 예고하는 대목일 수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반동인물로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는 작은 행성을 쪼개 버릴 만큼의 무서운 생명력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로부터 까다롭기까지 한 장미를 지켜주기 위해 결국 어린왕자는 그 별로 돌아간다.

관계는 서로가 길들여지길 원할 때 오랫동안 지속되는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처리되어가는 과정을 보면, 이미 정부는 국민에게 길들여질 생각도 없었고, 국민과의 신뢰를 개선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이에 따른 책임은 어린 학생들 수백 명을 사지로 몰아넣고, 저 혼자 살겠다고 속옷차림으로 도주한 선장 외 선원 15명의 경미한 처벌에 그쳤다. 정작 수색작업이나 인양작업을 지연하도록 만든 주요 정치인들이나 책임자의 처벌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도 없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에 대한 수색 작업은 2014년 11월 11일 종료되면서 사망자는 295명, 미수습자는 9명으로 남았다가 최근 들어 유해발굴이 속도를 붙기 시작했다. 초기 발견된 유골들이 돼지 뼈 혹은 동물의 뼈라고 밝혀질 때마다 유족들의 심정은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유족들은 수색 중단 직후부터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을 요구했으나 공식 인양 결정은 세월호 침몰 1년 만인 2015년 4월 22일이 되어서야 확정됐다. 도무지 이해를 하려해도 할 수가 없다.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생중계를 하면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공포가 아직도 생생한데, 해양수산부는 2015년 4월 22일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 발표하고, 같은 해 7월 인양업체로 중국의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당초 정부는 2016년 7월까지 인양을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인양 작업은 기술, 비용 문제 등으로 계속 지연되다 2017년 3월 22일에야 이뤄졌고 4월 11일 육상 거치 작업이 완료됨에 따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도 함께 진행된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구석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 발생 1천129일 만인 19일 오후 지난 16일 선체 내부에서 발견된 유골이 단원고 학생 허다윤 양으로 확인되었다. 유치원 시절 엄마에게서 사탕냄새가 나고 아빠에게는 술 냄새가 난다고 익살스러운 그림으로 묘사할 정도로 밝고 맑은 아이였던 허다윤 양은 긴박한 상황에서도 친구에게 헬기구조를 양보하고, 마침내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고 어린왕자처럼 그녀의 별로 돌아갔다. 아버지에게 면도를 깔끔하게 하고 다니라고 늘 이야기하던 딸의 말이 유언이 되어 버린 채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길들여진 채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면도를 하고 바다와 마주 서 있는데, 도대체 정부는 언제쯤 우리에게 길들여질 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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