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정 가는 정
오는 정 가는 정
  • 승인 2017.06.2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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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만난 여성이 굵고 낮은 톤의 목소리로 “안녕하세용~~~”이라며 콧소리로 길게 인사를 하기에, 같이 콧소리를 내며 마주보고 크게 웃었다. 오는 정과 가는 정이 만나니, 초면에도 그렇게 큰 웃음이 나올 수 있는 것을. 한쪽이 인사를 하는데, 다른 한쪽이 반응이 없으면 인사를 한 사람이 얼마나 민망하고 어색할까.

승객이 타고 내릴 때 일일이 인사를 하는 친절한 버스 기사가 있다. 버스를 탈 때 인사를 하는 경우는 종종 보아왔지만, 내릴 때까지도 크게 인사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뒷거울을 보며 조심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 등 내리는 승객의 상태에 따른 맞춤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인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런데 비해 응대를 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 간혹 고마움을 전하는데, 그럴 때는 더욱 큰 목소리로 “예, 감사합니다” 라는 메아리가 돌아온다. 얼마나 대답을 기다렸다는 뜻일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부분 승객들의 반응이 시큰둥한 것은, 마음속으로는 분명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겉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제주올레 5코스(남원포구~쇠소깍, 15㎞)를 혼자 걸었을 때의 일이다. 햇볕도 없고, 바람도 크게 불지 않아 걷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해변의 경치가 으뜸이라는 남원포구를 따라 느릿느릿 걸으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웃거나 인사를 건네 보았다. 역시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멈칫거리는 발걸음에서 ‘나도 인사를 해줄 걸’이라는 짧은 후회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자전거 여행을 하던 청년과 커피숍에서 사진을 찍어주며 좋은 시간 보내라던 여대생이 나의 허전한 발길에 힘을 실어주었다. 부산에서 오셨다는 70대 남녀도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혼자서도 걸을 수 있다는 용기가 대단하다며 부추겨주기도 했으니, 그 정도면 보상으로 충분했다.

잘 모르는 상대방이 인사를 건네올 때 자연스럽게 받아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체면 문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사를 하기 전에 목이 뻣뻣해지고 당황하여 응답을 못하고 마는 것 말이다. 가까운 사람들과는 뛰고 구르며 배가 아프도록 웃고 장난을 하다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왜 그렇게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버리는 것인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릴 때부터 모르는 사람을 조심하라던 어른들의 말씀이 무뚝뚝한 사람을 만든 씨앗이 된 것은 아닐까. 경계를 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먼저 인사를 해오는 경우라면 조개껍질처럼 단단한 체면으로부터 벗어나, 오는 정에 대한 응답은 할 수 있는 융통성이야말로 세계화로 나가는 현명한 대응이 아닐까 해서다.

페이스북(face book)이나 트위터(twitter) 등 SNS를 통한 온라인상의 소통에서도 자신의 글을 자랑삼아 올리기만 하고, 다른 친구의 소식에는 무관심하거나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도 무심하다거나 이기적이라는 혹평이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등산 예절 중에는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에게 격려와 반가움의 인사를 나누는 아름다운 문화가 있다. 무사히 코스를 완주하고 제주공항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우연히 마주친 외국인과는 “안녕(Hello)”이라는 한마디로 환하게 웃으며 서로 손을 흔들었다. 지치고 힘든 어깨와 다리가 절로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색해서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몸에 배지 못한 낯섦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약간의 연습이나 관심으로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턱대고 인사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장소와 분위기에 맞는 흔쾌하고 긍정적인 교류와 소통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정을 나누어보자는 것이다.

오는 정과 가는 정. 한 사람 한 사람의 정감이 깃든 인사와 관심이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 편안함을 선사할 수 있다면, 사회가 한층 밝고 따뜻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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