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이제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 승인 2017.11.15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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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내로남불’이라는 듣기에도 거북한 문자가 정치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니, 우스운 생각이 든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다른 사람에게는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이 자신에게는 관대하게 적용된다는 뜻이다.

사람 사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는지. 그들 사이의 경계는 굳이 정확하게 잣대를 그어놓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자신과 이웃을 속이거나 자신의 편리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손해나 불편을 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록 고의성은 없더라도 그런 일을 하는 순간 자신에게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인식을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혹은 생각을 했다가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럴싸하게 합리화를 시키게 되는 것이,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의 무게를 떠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위라면 더욱 곤란하다.

이참에 최근 생활 주변에서 느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저녁시간 오페라 공연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공연을 마련한 기업에서 우수고객을 대상으로 특별히 초대를 하는 것이라는 말에 기분이 우쭐했다. 더불어 좌석이 지정되지 않고 선착순으로 입장하는 것이니, 가급적 빨리 가서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말도 따라왔다.

취향이 비슷한 지인과 함께 낯선 공연장을 충분한 여유를 두고 찾아갔다. 마침 공연장 입구에는 낯이 익은 관계자가 안내를 맡고 있어 더욱 반갑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찍 왔으니 좋은 자리를 골라 앉으라’는 덕담을 들으며, 몇 계단 내려서서 적당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람은 한두 명 밖에 없는데, 한 줄 전체가 좌석마다 가방이나 손수건, 목도리 등 물건이 놓여있는 것이었다. 다른 일행을 위해 미리 앉을 사람이 있다는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 아닌가. 눈살이 찌푸려지면서,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 싶어 자꾸 눈길이 갔다.

그나마 잠시 후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 나타났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앉지 못하도록 주변의 눈치를 봐가며 자리를 맡아놓았는데, 끝내 나타나지 않거나 서로 다른 곳에서 자리를 맡아놓아 짧은 실랑이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그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결국 전화를 주고받으며, 얼굴을 들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으니….

승객이 많은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에 먼저 타려고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처럼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도 있다. 엘리베이터에서나 출입문이 하나뿐인 작은 마을버스에서조차 그런 일이 있으니, 서로에게 불편한 일이다. 그뿐 아니다. 동네 목욕탕에서도 손님이 많이 찾는 시간, 지인의 수도꼭지를 미리 차지하기 위해 수건이나 비누 조각 등을 흘려놓는 일이 있으니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그런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멀지 않은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 관광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니,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특정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동작이 빠르고 인정이 넘쳐흐르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따뜻한 정은 주변에 고루 뿌려져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양보의 미덕과 기다릴 줄 아는 여유야말로 참다운 인정이 아닌가 한다. 공연장에서 아는 사람끼리 잠시 떨어져 앉는다하여, 감상의 맛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도 이제 다양한 분야에 참여하고, 여가 선용과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부디 주변으로부터 감시의 눈길이 없다하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아는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또 다른 사람에게 불편이나 피해를 주는 볼썽사나운 행동은 하지 않는 성숙한 자세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혹자는 과태료나 범칙금이 부과되는 위법사항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고 불평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스로 지켜야하는 기초질서는 법 이전의 인격을 대신하는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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