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사회학
십자가의 사회학
  • 승인 2018.01.1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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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프랑스의 유명한 사상가인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인간 사회는 예외없이 모두 자신의 유지와 생존, 나아가 안정과 변영을 위해 사회 구성원들 중 일부를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한다. 이 희생자는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과 다른 동시에 약한 이, 곧 ‘실은 죄가 없으나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 자’이다.

만일 가해자들이 이 희생양에게 아무런 죄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면 그를 더 이상 희생양으로 몰아 갈 수가 없기 때문에 가해자들은 무의식적으로 희생자의 유무죄에 대해 무지하거나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회에 불안정한 사건이 생기면 그 잘못을 희생양에게 덧씌움으로써 그 위기가 극복된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사회가 택하는 이 정의롭지 못한 방식을 ‘르네 지라르’는 ‘희생양 메커니즘’이라고 명명했다. 그가 보기에 희생양 메커니즘은 공동체의 위기 상황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끊임없는 희생양에 대한 왜곡의 작업을 통해,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실상을 은폐하고 정당화하려는 사회에 의해 희생양 메커니즘이 계속되어 작동한다고 보았다.

이 희생양 메커니즘은 작게는 가족 안에서부터 크게는 한 국가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가족 안에서는 누군가가 희생양의 역할을 하여 가족의 고통과 분노를 돌리게 해 결속을 유지한다. 작은 집단에서는 집단 따돌림으로 나타난다. 사회적으로는 실업, 경제 불황, 범죄 등의 사회문제에 따른 대중의 불만이나 반감을 다른 대상으로 향하게 한다. 더 나아가서 이 희생양 메커니즘은 인종차별이나 소수집단 차별로 나타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마녀사냥, 유대인 학살,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있다.

마녀사냥은 마녀를 악마와 놀아나 신앙을 해치고 공동체에 해악을 끼친다며 처형하는 것으로, 14세기부터 17세기에 유럽에서 약 20만 명에서 50만 명의 사람이 처형됐다. 나치 독일은 모든 정치적 파탄과 사회불안 그리고 경제적 혼란의 원인을 유대인에게로 돌려 유대인 학살을 감행했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간토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의 내무성이 ‘재난을 틈타 조선인들이 테러, 강도 등으로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린 뒤,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로 인한 희생자 수는 약 6천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사회 역시 지난 몇 십 년간 온갖 부류의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권력을 유지해온 기득권의 농간을 체험해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이런 ‘희생양 메커니즘’에 때로는 가담하여 동조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희생양 메커니즘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아마 인간은 앞으로도 이 메커니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 ‘희생양 메커니즘’을 끊고 그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희생양’이라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예수도 유대 민족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당시 유대 지도자들에게 희생양으로 지목되어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 지도자의 이 음모는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요11:45~46)

그들의 음모는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그리고 대중과 더불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성공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음모는 예수의 부활로 실패한다. 희생양인 예수는 인류의 오랜 ‘희생양 메커니즘’의 음모에 쐐기를 박는다. 하나님은 억울한 죽음에 내몰린 희생양들의 죽음을 그대로 묻어두지 않으신다. 그것을 드러내고 그의 손을 들어 주시고 그의 눈물을 닦아 주신다. 그것은 신학이 아닌 사회학적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사회학이다. 십자가의 사회학, 그 사회학적 십자가만이 인간의 오랜 악습인 ‘희생양 메커니즘’을 끊을 수 있다.

새해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부는 사정바람은 거세다. 적폐세력의 청산이라는 명분이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 악습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십자가의 사회학은 희생양을 찾는 권력자들의 음모가 이제 더 이상 성공하지 못함을 경고하는 하늘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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