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의 조화로 사랑하는 삶 이루길…
음양의 조화로 사랑하는 삶 이루길…
  • 김지홍
  • 승인 2017.01.0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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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방 이승찬의 작품 읽기
철학·종교 담은 묵직한 예술세계
공 튕기듯 자유분방한 필치 ‘경쾌’
10년간 초야에 묻힌 자발적 칩거
이순을 넘긴 세월만큼 깊은 묵향
신년호그림
승(僧), 속(俗), 합(合), 함(含), 視(See), 카(숨), 영속(靈速), 최후의 만찬, 베드로 닭은 바로 허방 이승찬이 지난 2015년과 2016년 개인전에서 풀어놓은 작품의 제목들이다.

제목들만큼이나 그의 예술은 묵직하다. 사물의 외형이 아닌 내적 사유로부터 비롯되는 동양화법은 정신이 핵심임을 감안하면 철학과 종교에 기댄 그의 예술은 깊고 숭고하다.

반면에 낙화한 공이 다시 튕겨 올라오듯 자유분방한 필치는 경쾌하기까지 하다. 일면은 남송화풍인 절파((浙派-자유분방한 화면 구도, 농담의 극명한 대비)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를 상기시킨다. 복잡다단한 삶의 층차를 일필휘지로 우려낸 수묵은 그의 화격을 대변하기 족하다.

삶이라는 우물에서 길어 올릴 예술적 영감은 두레박의 크기 만큼이겠지만, 예술가가 반복해온 풀무질은 삶의 본원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탈속한 수행자처럼 속계와 선계를 넘나들며 예술의 본질을 자문해온 작가에게 첩경은 없었다. 매체와 주제, 형식에서 감지되는 동·서양의 접점도 자기만의 길을 찾기 위한 도구이지 않았을까. 허방 이승찬이 삶을 관조하듯 10년간 초야에 묻혀 지낸 자발적 칩거는 그런 이유였다. 하여 그의 묵법은 이순을 넘긴 세월만큼이나 깊고 탄탄하다. 철학과 종교를 파고들어 토해낸 묵향도 깊다.

앞서 열거한 묵직한 제목들이 이승찬에게는 관조의 대상 다름 아니다. 관조의 대상은 몰아일체(沒我一體)와도 상통한다. 경쾌한 듯 가볍지 않은 붓질에 담긴 몰아일체의 단초들 중 ‘최후의 만찬’ 과 ‘베드로의 닭’ 에서 그의 신심을 엿본다.

“…이는 여러분을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시오.”…“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 여러분을 위하여 쏟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께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 감옥으로 가고 죽으로도 갈 수 있는 채비가 되어있습니다.…그러나 그분은 “베드로 당신에게 말하거니 당신이 나를 안다는 것을 세 번이나 부인할 때 까지 오늘 닭이 울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성격 속 ‘최후의 만찬’과 ‘베드로의 닭’ 핵심 구절이다. 조물주는 피조물에게 모든 것을 주지만 피조물은 배신하는 나약한 존재이다. 격정의 몸부림으로 어둠을 밝힐 것 같은 닭 울음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가 그린 베드로의 닭은 곧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음양이 합을 이루어 조화롭고 서로 사랑하며, 때론 그 모든 것에서 한 발 물러나 관조자가 되어보는 삶. 곧 이승찬이 찾아가는 예술의 본원이자 우리의 염원이지 않을까. 승(僧), 속(俗), 합(合), 함(含)이 품은 의미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염원이 아름답기를 이승찬은 깊은 묵향으로 자답한다. 예술가는 예술로 답하며 그 예술에 물들어간다.

서영옥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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