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한 얼굴서 생명의 순환성을 엿보다
무표정한 얼굴서 생명의 순환성을 엿보다
  • 대구신문
  • 승인 2017.02.1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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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7번째 개인전

B커뮤니케이션 등 2곳서

키우던 식물 죽음에서 영감

표현주의 기법·혼합색 활용

식물·얼굴 소재 회화 등 선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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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의 개인전이 26일까지 열리고 있다.
“예술은 지진계와 같아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됐어요. 저 역시 예민한 예술가라는 생각에 이르면서 어떤 것을 그릴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그리는 것보다 내용이 중요하게 됐어요. 일단 주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부터 작품에 옮기기 시작했어요.”

정연주 예술은 지진계다. 그는 정치, 사회, 예술 분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남들보다 먼저 감지해 작품 속에 담아내고 세상과 소통한다.

사회현상을 포착한 첫 작품이 ‘묵비권’ 연작이었다. 말보다 더 강렬한 자기주장을 ‘묵비권’ 속 인물을 통해 시각화했다. “개인이나 거대한 세력이 말로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묵비권으로 대항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때로는 말보다 묵비권이 더 강렬한 메시지가 될 수 있으니까요.”

표현주의 기법으로 인물화를 그려온 정연주의 7번째 개인전이 방천시장 B커뮤니케이션과 동성아트홀 4층 갤러리 루미에르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초기작품에서부터 신작까지 정연주 예술의 변화과정을 담고 있다.

풍경화에서 인물화로 선회하며 예술에 사회현상을 담기 시작한 정연주의 초기 작은 구상에 가까웠고, 의도성도 다분했다. 슬프고 화난 감정 상태를 이목구비가 확연한 얼굴 형상에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비구상과 구상이 혼재하고, 기법은 표현주의로 흘렀다. 작가 스스로의 감정은 최대화하면서 얼굴 형상에는 직접적인 감정 상태를 드러내기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에 집중한 것.

정 작가는 “저 자신은 감정 가는 데로 표현하지만 예전처럼 인물에 희노애락을 확연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며 “인물의 표정을 느끼는 것은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고 밝혔다.

표현주의가 그렇듯 정연주에게도 색은 언어다. 색을 통해 메시지를 가시화한다. 그는 한 화면에 5~6가지의 색을 혼합하며 감정 풍향계로 활용한다. 이때 정연주만의 독보성은 기술적인 색 배합보다 본능적으로 색을 쓰는 것에 있다. 이는 그의 색이 곧 감정이 되는 이유다.

“원색보다 혼합색을 선호해요. 공식에 따른 배합보다 본능적으로 만든 색에 더 애착을 느끼죠. 색에 대한 감각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어요.”

이번 전시 제목은 ‘The End of the Life-다시 살다‘다. 키우던 식물이 죽은 모습을 보며 모티브를 얻었다. 죽은 식물을 통해 ‘죽었지만 죽지 않은 것’, ‘죽음 이후의 세계’를 감지하고 생명의 순환성을 본 것. 이번 신작에는 식물과 얼굴을 동시에 형상화했다. 이들 둘은 모두 생명을 상징한다.

최근의 또 다른 변화는 검은색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검은색을 배제해왔다. “죽은 식물을 보며 어쩌면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느꼈어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또 다른 생명으로 환생했을거라는 믿음이 강하게 왔어요. 순환이었어죠. 검은색 선은 순환에 대한 강렬한 환기라고 할까요?”

사실 순환, 환생에 대한 환기는 최근 익산 레지던시 작업이 모태가 됐다. 익산 특유의 붉은색 흙과 대면하면서 과거 백제의 환영을 본 것. 그러면서 백제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흙을 체취하고 체취한 흙을 레지던시 공간에 전시했다.

세라믹 인형들은 그 당시에 잉태한 생명들이다. 붉은 흙 속에 잠자던 새 생명들을 손으로 빚어낸 것. 개념미술의 시작이었다. 이번 전시에도 익산에서 만들었던 도깨비 같기도 하고 인형 같기도 한 세라믹 인형들이 설치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표현주의로 함축되는 제 작업은 땅 위 도로를 달리는 차가 아니라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라고 할 수 있어요. 땅 위의 도로는 오직 한길로만 달려야 하지만 바다 위는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요.” 전시는 26일까지. 010-2611-513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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