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그림 수행…“깨달음의 여정 돕고 싶다”
40년 그림 수행…“깨달음의 여정 돕고 싶다”
  • 대구신문
  • 승인 2017.02.1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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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청묵예원’ 원학스님

의재 허백련 선생 작품에 감동

동양화 한 분파인 남종화 입문

고향 경산에 ‘청묵예원’ 꾸려

작품활동하며 ‘自然合一’ 몰두

내달 4일부터 일반인 대상

남종화·서예·차 무료 강좌

“茶·畵 모두 깨달음의 도구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 도움”
원학스님1
‘청묵예원’을 개설한 원학스님은 “먹으로써 인간의 심성을 바르게 밝히고, 차를 통해 마음을 깨끗하게 밝히는데 가치를 두고 강좌를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전영호기자
원학스님서화전
원학스님 작.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자락에 둥지를 튼 ‘청묵예원’이 고즈넉했다. 주인장인 원학스님이 차부터 우려내자 고요하던 공간이 차향으로 물들었다. “차 맛이 좋을 것입니다.” 차에 일가견이 있는 스님의 차 우리는 솜씨가 가히 일품이었다.

원학 스님의 이력은 화려하다. 16세 때 도성 스님을 은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해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문화부장, 중앙종회 사무처장, 중앙종회 의원, 서울 조계사·봉국사 그리고 대구 용연사 주지 등으로 활동하며 조계종단의 핵심요직을 두루 거쳤다. 현재 그는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고향인 경산의 ‘청묵예원’에 거처하며 차 연구와 문인화를 벗 삼아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오는 3월 4일이면 남종화와 서예, 차를 주제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강좌를 시작한다.

‘청묵예원’은 90년대 말에 제주도에서 스님에 의해 처음 설립됐다. 스님이 1994년 종단개혁회의 재정분과위원장으로 조계종 개혁에 앞장섰다가 1998년 한계에 부딪히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려간 제주가 시원이 됐다.

이후 그의 고향인 지금의 ‘청묵예원’에 터전을 잡고 6년 동안 지역 사람들과 강좌를 이어오다 서울 봉은사 주지로 잠시 자리를 비웠다 지난 7월에 돌아왔다.

- ‘청묵예원’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가장 더러운 때의 상징인 먹의 검정과 가장 깨끗한 하얀 한지가 만나 아름다운 조화가 탄생되지 않습니까?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착한 마음과 악한 마음이 공존하는데 이 두 마음이 먹과 한지의 만남처럼 조화로워야 아름답게 빛나게 됩니다. 그런 정신이 청묵예원에 담겨 있어요.”

- 강좌의 구성이 궁금합니다.

“서예와 문인화, 그리고 차(茶) 교육이 중심이 됩니다. 문인화는 중국 청초(淸初)에 간행된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의 가장 기초를 발췌해서 제가 직접 만든 교본과 서예는 구양순과 왕희지체가 교본이 됩니다. 그리고 동다송 강좌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해석해 제가 편찬한 ‘향기로운 동다여, 깨달음의 환희라네’를 교본으로 하게 됩니다.”

- 강좌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은지요.

“먹(墨)으로써 인간의 심성을 바르게 하고, 차(茶)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밝히는데 있습니다.”

원학 스님은 7번의 개인전을 열며 동양화의 한 분파인 남종화(南宗畵)의 맥을 잇고 있다. 남종화는 추사 김정희에서 가르침을 받은 소치 허련(1808~1893)을 비롯해 미산 허형(1862~1938), 남농 허건(1908~1987), 의재 허백련(1891~1977) 등에 의해 전라도에서 꽃을 피웠다.

첫 시작은 서예로부터 출발했다. 어린 시절부터 서예와 인연을 맺어오다 출가 후 청남 오제봉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서예의 기본과 정신을 배웠다. 남종화 입문은 청남 선생의 의형제인 의재 허백련 선생의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의재 선생의 수제자인 우계 오우선 선생을 스승으로 남종화를 섭렵했다. 그 인연이 벌써 40년이다.

- 남종화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북종화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적 성격이 강하다면 남종화는 그리는 이의 느낌, 즉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사의적 풍경을 중시합니다. 관념산수화에 가깝지요.”

- 수행자인 스님의 남종화와 일반인의 남종화와는 다를 것 같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소식(蘇軾)이 왕유(王維)의 시와 그림을 비평하며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했죠. 나 역시 그런 정신을 봅니다. 여기에 자연합일에 대한 성찰이 더 깊게 개입됩니다.”

- 물질만능 시대에 왜 다시 남종화인가요?

“추사 김정희 선생은 선비이자 시인이자 화가, 그리고 서예가이며 차인이었어요. 일상생활과 자연 속에서 진정한 풍류를 누리고자 했어요. 이것이 남종화의 정신인데 지금은 그 가치가 사라졌어요. 자연을 사랑하고 마음을 맑게 닦는 정신을 밝히는데 남종화가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원학 스님은 차(茶)에도 조예가 깊어 차 전문가로 통한다. 초의선사가 다도, 특히 우리나라 차에 대해 초의선사가 시로써 다도를 설명한 글인 ‘동다송’을 풀어서 엮은 ‘향기로운 동다여, 깨달음의 환희라네’ 책을 펴내기도 했다.

- 차(茶)는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발전했습니다. 서로 다른가요?

“중국은 다예(茶藝)라고 해서 차를 예술의 경지로 격상했어요. 일본은 ‘다도(茶道)’로 차를 생활화하며 차 정신을 실천하려 했고…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행다’라고 해서 산사나 사대부 등 일부계층을 중심으로 차를 우려내는 예에 집중했어요.”

- 차(茶)의 핵심 정신은 무엇인지요?

“마음을 맑게 하는 것입니다.”

- 불교와 그림, 차 모두 자연합일 정신이 스며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림과 차와 불교가 통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한 부분이고 인간도 그러합니다. 자연이 곧 우리라고 본다면 자연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아요.”

- 자연합일 정신이 현대에 더욱 절실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명이 발전할수록 자연은 훼손되어 왔고, 정신은 피폐해졌습니다. 불교에서 ‘인과응보’라고 하지요. 지금이라도 공생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피폐한 정신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원학 스님은 조계종단의 요직을 두루 거쳐왔다. 긴 시간 동안 산이 아닌 종단 일에 깊숙히 관계했다. 그가 종단의 핵심에서 일관되게 지향한 가치는 ‘개혁’이었다. 특히 1994년 종단개혁회의 재정분과위원장으로 큰 개혁에 앞장섰다. 그러는 동안 의미 있는 행보를 남기기도 했지만 깊은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 여러 절의 주지를 맡고 종단의 요직을 거친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불문에 귀의해 부처님의 덕성을 받은 자는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출가자라고 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지를 맡는 것도 수행의 과정이지요.”

- ‘개혁적’ 행보를 걸어오셨습니다.

“신앙적인 측면만 접근하면 좌절하게 됩니다. 생활 속에서 그 정신을 구현해야 합니다. 불교가 현대인들의 종교적 대안이 되려면 시대와 괴리되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그 괴리를 좁히고자 했습니다.”

- 시급한 개혁 과제는 무엇입니까?

“종단에도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총무원장이나 본사주지를 선거로 뽑고 있어요. 성직자에게 이런 제도는 맞지 않다고 봐요. 불교의 선거도 세속의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는 곧 불교의 세속화와 침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청묵예원’에서 구현하려는 정신도 그런 것인지요?

“지금까지 출가자로 생활하면서 제가 공부한 불교를 그림과 차와 접목해 일반인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그것이 곧 진정한 행복의 길로 인도하는 길이자 간접포교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청묵예원 강좌 문의는 053-853-558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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