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내 운명…청중들과 교감하는 연주자 되고 싶어”
“피아노는 내 운명…청중들과 교감하는 연주자 되고 싶어”
  • 황인옥
  • 승인 2017.02.1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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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양 성 원
진로 고민하던 대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참가한 국제 콩쿠르 1위
직업 연주자의 길 선택 계기
고유 브랜드 ‘냉정과 열정 사이’
2013년부터 전석 매진 ‘인기’
“진정성 알아봐 준 관객에 감사”
인터뷰1-칼라
피아니스트 양성원.
피아니스트 양성원 사진3
“무대에 서면 잠재 되어 있던 에너지가 음악을 통해 심연에서 올라와 폭발적인 감성들로 표출되는 것 같다.”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양성원(34)은 ‘반전’이었다. 극과 극을 오갔다. 최근 수성아트피아 무대에서 열정과 냉정을 넘나들며 관객을 사로잡았던 무대 위의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달리 무대 밖의 그녀는 순했다. “무대 밖의 모습이 차분해 보인다”고 하자 그녀 역시 “그렇다”고 인정했다.

양성원은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타이틀을 건 고유 브랜드 공연을 정착시키며 독자노선을 걷고 있다. 독일에서 최고연주자과정 중이었던 2011년에 시작해 귀국 후 2013년부터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인기 공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올해 첫 투어 무대로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한 양성원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관객들은 강렬한 에너지로 휘몰아치는 연주, 청중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교감지수, 영롱한 음색과 파워풀한 테크닉에 자유로운 음악 해석 등의 찬사를 보내며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 고유 브랜드 공연은 낯설다.

“국내에서 고유 브랜드로 공연을 하는 연주자는 내가 최초이자 유일하다. 해외에도 거의 드물다.”

-왜 ‘냉정과 열정사이’ 인가?

“바로크, 고전, 낭만을 거쳐 현대에 이르는 다채로운 시대별 프로그램을 담고 싶었다. 그 특징들을 대표하는 온도와 서정을 ‘냉정과 열정사이’로 표현했다.”

- 이분법적 구분인가?

“그렇지 않다. 어느 시대 작품에도 사연과 역사가 있고 그 안에 냉정과 열정은 언제나 공존한다. 또 그 간극과 에너지의 낙차를 조절하고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매력적이고 끊임없이 연구해야하는 점이다. 이 점을 타이틀에 담았다.”

- 고유 브랜드 공연을 매진 행렬로 이끄는 양성원만의 색깔은 무엇인가?

“같은 작곡자라도 연주자의 체험과 개인성 그리고 감정선에 따라 곡 해석이 달라지는데 나는 최대한 양성원의 색을 반영하려 한다. 그리고 프로그램 구성에도 친숙한 곡과 깊이있는 곡을 섞어서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며 관객과의 소통력을 높이려 노력한다.”

차세대 연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양성원의 태생적 환경은 음악가로 성장하기에 더 없이 좋았다. 음악 애호가인 아버지와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음악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5살에 피아노에 입문한 것도 이러한 영향이 작용했다.

- 일찍부터 피아노에 자질을 보였나?

“지도하신 선생님들께서 이구동성으로 성장속도가 빠르고 음악을 대하는 집중력이 남다르다고 해주셨다. 그에 부응하듯 각종 콩쿠르에서 수상도 많이 했다.”

- 어린 시절 재능을 발견했다면 진로도 일찍 결정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언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영어 스피치대회에서 1등을 도맡아 했다. 당시 예고와 외고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 결국 서울예고로 결정했다.

“주위에서 서울예고를 권유했고 나 역시 피아노가 더 끌렸다. 하지만 예고를 가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 때문에 짧은 기간에 집중 레슨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합격을 하고 그제야 체계적인 전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무턱대고 배경만 보면 양성원은 운이 좋은 케이스다. 어머니가 성악 전공자였던 것. 결과론으로 보면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장기 프로젝트 아래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양성됐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전은 숨어있다. 그녀는 “자식들이 스스로 길을 개척하도록 지켜보는 것이 어머니의 교육철학이었다”고 서두를 꺼냈다.

“어머니는 결혼하고 우리를 낳고 유학을 떠난 케이스였다.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당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셨다. 자녀들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셨고, 거의 방목형으로 키우셨다.”

- 이유가 무엇이었나?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고 너가 만들어 가야한다’고 하셨다. 공부도 상위권에 들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선택에 대한 자율성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 일찍부터 피아니스트로 길러지지는 않았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의외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두셨고, 또 제가 스스로 길을 찾아가기를 원하셨다. 당연히 일찍부터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단계를 밟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점이 오히려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양성원은 학교 공부와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끼를 발산했다. 초중학교 때 방송반과 방송국에서 학생기자로 뛰었고, 대학 재학 시절에는 교내방송국 아나운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사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그녀는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하는 등 진로 선택의 여지를 다양하게 열어두었다. 하지만 늘 선택지는 피아노였다.

피아니스트로 굳어진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인 2002년 겨울이었다. 음악 코스로 오스트리아에 머물면서다. 이 시기에 담당 교수의 권유로 오스트리아 국제 청소년 콩쿠르에 출전했는데 덜컥 1등을 수상한 것이다. 코스 수료를 위해 잠깐 나간 해외 연수에서 준비없이 거둔 쾌거여서 성취감은 더욱 컸다.

- 1등을 한 비결은 무엇이었나?

“짧은 기간 집중력을 발휘한 것 같다. 주어진 것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기질이 이때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쉬지 않고 계속 피아노를 친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 제대로 알만큼 종일 피아노만 쳤다.”

- 독일 유학도 이때 결심했나?

“1등 수상자에게는 그 다음해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 있는 기회가 부상으로 주어졌다. 그때 체코에서 협연을 한 후 한동안 유럽에 머물며 유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어디론가 다른 길을 둘러볼 틈을 주지 않고 이미 정해진 듯 음악의 길로 이끄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이것이 나의 길이구나’ 하는 운명같은 것을 느꼈다.”

양성원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녀는 서울예고와 이화여대를 거쳐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전문연주자 과정과 뒤셀도르프 국립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최우수로 졸업했다. 상복도 있어 프랑스 리옹국제콩쿠르 입상, 이태리 볼자노 콘체르토 콩쿠르(C’Monteverdi di Bolzano Concerto Competition) 1위, 오스트리아 국제청소년콩쿠르 1위, 한국피아노학회 콩쿠르 2위등 국내외 유수의 콩쿠르를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현재 명지대 객원조교수, 건국대 겸임교수, 대구가톨릭대 겸임교수로 있다.

- 7년간의 유학 생활은 어땠나?

“늘 배움에 대해 절실했다. 그래서 끝없는 갈증을 채우려고 했다. 많은 가르침을 주신 담당 교수님 외에도 유명 피아니스트가 인근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바로 프로필을 보내고 연주를 들어달라고 청했다. 음악에 대한 의견을 끊임없이 나누며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 다양한 음악적 방향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었다.”

- 색깔이 다양한 스승에게서 사사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의 문화와 역사, 정서를 다양한 시각에서 익힐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곧 음악의 색깔이 고정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 유학생에게 콩쿠르는 중요하다.

“최고연주자과정을 시작하면서부터 콩쿠르에 눈을 돌렸다. 십대부터 국제콩쿠르를 다녔던 케이스에 비하면 많이 늦었고 나이제한이 있어 그만큼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끝없는 도전 속에서 운이 좋게 수상도 많이 했다.”

올해도 그녀의 연주일정은 숨이 차다. ‘냉정과 열정 사이 Ⅳ’ 브랜드 공연이 이어지고 있고, 이미 4개 도시 투어로 청중과 만나고 있다. 이밖에도 오는 9월 울산시립교향악단과 협연, 10월에는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인 베이징 심포니오케스트라와 서울, 구미 등에서의 협연 무대도 계획돼 있다.

- 어떤 연주자를 꿈꾸나?

“무대에서 음악으로 자유롭게 얘기하며 예술적 성장의 순간들을 청중들과 오랫동안 공유해 나가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성찰하고 학문을 연구할 것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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