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로 흩뿌려낸 음악과 삶의 희로애락
먹으로 흩뿌려낸 음악과 삶의 희로애락
  • 황인옥
  • 승인 2017.03.1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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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얼굴아트센터 권기철展
악기·음표 표현 드로잉
현대 추상·입체 작품 등
대표 연작 ‘어이쿠’ 전시
음악·문학 등 예술서 영감
의도된 표현보다 즉흥성 선호
강렬한 에너지·자유로움 특징
JEON3330
권기철전이 4월 16일까지 웃는얼굴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화선지 작업 이전에 신문지와 먼저 만난다. 화선지로 가기 전 꽤 오랜 시간 신문지 위에서 논다. 캘리그라프를 긁적이기도 하고, 야생마 같은 먹 길들이기에 고군분투도 한다. 이는 조형적 수렴을 위한 기초 단계적 차원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일어나는 다양한 감정을 응축하는 전조 단계의 의미도 크다. 신문지에서의 몸과 마음의 흔들림이 잦아들 때쯤에야 비로소 한지 위 일필휘지의 즉발성에 제대로 신명이 실리게 된다. 음악은 이 모든 과정에 촉매체가 된다. 권기철의 ‘어이쿠’ 연작 이야기다.

“다섯 살 때 손이 절단됐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사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게는 그 기억이 사라지고 없다. 아마 너무 큰 고통이어서 무의식중에 지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 손으로 그린 작품이 즐거움과 고통을 화면으로 치환 해 주니까…그 감정 회오리의 무덤이 ‘어이쿠’다.”

권기철전이 대구 달서구 웃는얼굴아트센트에서 열린다. 달서문화재단 출범 3주기 초대전이다. 전시에는 악기나 음표가 등장하는 드로잉 작품부터 기호나 비형상이 지배하는 서양화. 한국화 기법이 혼용된 추상, 그리고 한일자(一)자와 먹으로 대변되는 현대추상과 입체 등의 ‘어이쿠’ 연작이 대거 소개된다.

장르 간 융·복합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다. 권기철은 일찍부터 융·복합적 예술을 지향했다. 그의 예술에는 음악과 미술과 문학이 견고하게 얽혀있다. 음악이 붓끝에서 시각적 리듬으로 치환하고, 가슴에서 필터링 된 문학은 그림의 골격이 된다.

“다섯 살 때부터 모필을 가지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청소년기에는 돈벌이와 학업을 병행했다. 이 시기 음악과 문학과 만났다. 당시 만났던 예술이 결핍을 위무해 주는 안식처 같았다.”

성장기에 그를 버티게 한 것이 음악이고 문학이고 그리고 그림이었다. 이후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화가 권기철의 지지대가 된 것도 음악과 문학이었다. 그의 몸과 마음의 여과장치 속에서 음악과 문학과 미술이 대동단결해 예술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예술가의 경험과 지식의 총체가 예술이라고 한다면 내게는 음악과 미술과 문학이 총체였다. 그것들이 작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림과 음악과 문학은 가난한 고학생의 결핍을 채워주는 풍요의 원천이었다. 외로울수록, 가혹할수록 오히려 더 집중해갔다.

최근 찾은 경북 청도군 이서면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그 연장이었다. 음악이 흐르고, 수많은 책으로 진열된 책장에는 그와 동료들의 작품들이 진열돼 화가의 작업실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작업실 또한 체계적으로 분리해 놓았는데 평면과 입체, 그리고 캘리그라피 작업장이 용도에 맞게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스스로 오타쿠적 기질이 있다고 고백하는 그에게는 요새처럼 완벽한 작업실이었다.

“이 공간에서라면 몇 달을 외출하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다. 모든 것이 충족된다. 작업과 음악과 문학이 있는데 더 뭐가 필요 하겠나?”

시인 김선굉이 ‘어이쿠’ 연작을 보고 그의 몸에 현(弦)을 걸고 싶다고 할 만큼 권기철의 작품은 음악적이다. 초기 작품에는 대놓고 음악적으로 표현한 흔적이 역력하다. 바이올린이나 첼로, 피아노 등의 악기를 구상의 형태로 시각화했다. 마치 ‘나는 음악을 그렸소’라고 말하듯…

“음악이 일상이기도 했지만 12년을 대구시립교향악단 연주회 포스터 그림을 그렸고,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공연작 포스터를 그렸다. 이러한 이력들이 음악을 매개로 한 작업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권기철은 점과 선과 면이라는 조형요소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화살표나 교정부호 등의 기호를 활용해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음악의 외적 표현에서 가락이나 운율 등 소리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 이 시기부터 한일자(一)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는 “마음과 음악은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며 “추상성으로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했다.

“전통 산수화의 세계를 보면 폭포가 있고 산이 있다. 하지만 사람과 집과 새가 없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쌍의 새가 노닐고, 두 사람이 오솔길을 걸어가고,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이 한 채 놓여 있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 있다. 내 추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그가 천착하는 작품은 먹(墨) 작업이다. 7년 전부터 시작한 이 연작은 한일자의 다양한 변주로 압축된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애잔하게 한일자의 독무가 화선지를 누빈다. 5살 무렵부터 서예를 접하고 지금까지 서예를 손에서 놓지 않았던 그에게 한일자는 미술의 근원으로 치환된다. 그 근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먹 작업이다. 먹의 귀환은 그런 측면에서 운명적이다. 이때도 음악은 여전히 그림의 매개체가 된다. 먹을 머금은 한일자가 마치 소리의 운율처럼 종횡무진 화폭을 내달린다.

권기철의 먹 작업은 유난히 기운생동, 활력이 넘친다. 압축된 먹으로 날카롭게 일자를 긋고, 헛뿌리며 뜯는 낙관기법으로 심연의 기운을 길어 올린다. 이때 기운생동의 에너지를 최대화 하는 것은 먹을 담은 용기인 먹통이다. 그는 먹통에 원하는 조형성에 부합하는 구멍을 뚫고 붓 대신 사용한다. 더 원시적이고, 더 즉발적이어서 극적인 운을 토해내는데 그만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는 않는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 때문이다. 그렇지만 권기철을 만나면 무한한 자유로의 여행이 가능한다. 작품명 ‘어이쿠’는 이러한 ‘먹의 즉발 즉심’의 동이어다.

“먹 작업을 오래전부터 했는데, 먹통은 5년 전부터 사용했다. 필요하면 직접 용기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색보다 먹이 훨씬 더 힘들고, 붓보다 먹통 작업이 더 어렵다. 그렇지만 붓이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신문지’ 신작도 소개된다. 이 작품은 화선지에 그리기 전 준비단계에서 했던 작업의 진화다. 새하얀 화선지와 달리 빼곡하게 인쇄된 신문지가 재료가 된다. 1차적인 조형성은 신문에 인쇄된 기사나 정도, 광고 등이 된다. 여기에 작가의 감정 편린이 살짝 얹힌다.

“예술가들에게 진화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소유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의미 재번역의 측면이 더 강하다.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더 다양해지는 것이고, 그 다양한 해석방식을 일반인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권기철은 입체 작업도 간간이 발표한다. 신문이나 화선지를 기본으로 하지만 조형성을 제한하지 않는 자유로움에 취해 입체 작업을 시도한다. 평면에 대한 결핍의 반작용이라고 할까?

“미술은 어차피 공간이다. 평면이 일필휘지로 집중해서 한 곳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면, 입체는 시간을 두고 좀 더 생각하는 시간을 두고 작업하는 것이다. 평면에서 오는 허기를 메우는데 그만이다.”

음악을 매개로 하는 그의 작업은 이성보다 감성에 더 가깝다. 격정과 애수, 열정과 냉정, 그리움과 외로움 등의 감정이 리듬과 운율 속에서 춤을 춘다. 미술의 매개가 음악이지만 그 본질은 분출하는 감정들의 집인 셈이다.

화선지와 감정 분출이 작업의 출발점이어서 그럴까? 작업은 일필휘지의 우연적 즉발성과 즉흥성이 지배하고 감정이 의도하는 작위성은 그 뒤를 따를 뿐이다. 그가 “우연으로 대변되는 무작위가 80%라면 내가 개입하는 작위성은 20%에 지나지 않는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우연은 단지 우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필연으로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인생도 그렇다고 본다. 우연 중 많은 부분이 필연으로 관계 맺게 된다”고 말했다.

끈질기게 그를 따라다니는 감정선이 무엇인지 궁금해 묻자 오랜 기억 하나를 떠올려 주었다. 아버지의 막걸리를 사기 위해 종기처럼 부식된 주전자를 꿰차고 개망초 핀 비포장도로를 검정고무신을 끌며 갔던 유년기의 고단한 경험과 눈만 뜨면 마주했던 시골의 순수한 자연, 그리고 힘에 겹거나 외로울 때 흐느끼며 들었던 음악 등. 그러면서 그림을 바라보는 가치관을 언급했다.

“인간은 누구나 삶을 푸는 방식은 다를지언정 들숨과 날숨에 울고 웃는 가슴이 있다. 예술가는 특히 불화(不和)를 예술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내게 예술은 심약한 우리의 정서를 보듬고 삶의 불화(不和)를 청소하는 카타르시스다.”

그가 자신의 작품을 “쓰레기”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작업에 동기도 목표도 없다고 했다. 느닷없는 이야기에 놀라 물으니 “추함과 아름다움은 둘이 아닌 하나”라며 “아름다운 쓰레기”라는 취지의 작품론을 펼쳤다.

“나는 세계적인 작가라는 명성을 추구하지 않는다. 유명작가가 되려면 좋은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럴 경우 제약이 많다. 나는 그런 것들이 피곤하다. 그저 내가 좋아서 그리면 그만이다.”

전시는 4월 16일까지. 053-584-971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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