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도, 계림숲도 그리운 것은 ‘고향’이었다”
“어린 시절 나도, 계림숲도 그리운 것은 ‘고향’이었다”
  • 대구신문
  • 승인 2017.04.0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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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우 기획전…16일까지 대구문예회관

어머니의 빈자리 채워준 고향

애틋한 마음 그림에 옮겨담아

먹 이용한 전통적 기법에

현대적 미감 더해져 친숙

“먹향의 세계, 경험할 뿐”
이천우-작가

천우 이천우 선생(74)의 고향은 경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 중의 하나로 알려진 계림 숲에서 그림 그리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인간이라면 고향에 대한 향수 하나쯤은 품고 살지만 타향살이가 길어지면서 기억 속 잔상은 흐릿해진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천우 선생은 세월이 흐를수록 잔상이 또렷해졌다. 설사 귀향을 결행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고향만은 붙잡고 싶었다. 그에게 고향은 그리움이자 순수의 다른 이름이다. 그 애틋한 고향을 그림에 담아왔다. '나', '고향', '그리움' 등의 서로 다른 제목과 표현법을 구사하지만 공통으로 향하는 정서는 '고향'이다.  

“사람을 그려놓고도 ‘고향’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리운 것은 다 고향이다. 어린 시절의 나도, 내 누이도, 보고 싶은 얼굴도, 계림숲도 내게는 그리움이자 고향이었다.”

고향은 이상향이다? 대개 그렇다. 고향에 관한한 좋은 기억 일색이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처럼 따뜻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분명히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간들도 지나왔다. 그럼에도 마냥 좋은 시절이었던 것 같은 착각은 무의식적인 조작과 관계된다. 시간의 터널을 지나면서 고통은 빛이 바래지고 종국에는 아름다움으로까지 치환해 버린 것. 이천우 선생도 이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마음의 빗장을 열고 빠져들 도리가 없을 만큼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상향이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화폭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어머니가 9살에 돌아가시고 누님 집에서 컸다. 어머니 못지않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내 핏속에는 결핍이 내재되어 있다. 그 내재된 결핍을 채워주고 품어주는 것이 고향이었다. 마지막까지 기댈 수 있는 어머니의 품, 그것이 내게는 고향이다.”

2004년에 정년퇴직하고 비로소 전업 작가로 살고 있지만, 그는 대학 졸업 후부터 일과 그림을 병행해 왔다. 62년도에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딘 후 43년 교직생활 중 29년을 교육전문직을 두루 거치며 교육자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림은 짬을 내거나 잠을 줄여 그렸다. 이 때문에 화가로 이름을 드러내는데 소극적이었다. ‘나 여기 있소’ 하고 외치기보다 ‘내가 만족한 그림을 그리면 된다’는 철학으로 조용하게 작업에만 매진해 왔다. 화업 기간과 조형언어의 깊이에 비해 그의 예술세계가 크게 알려지지 않는 이유 역시 이러한 행보와 관련이 깊다.

“전업 작가로 살지 못했지만 전문직의 꿈을 펼치며 그림도 그렸으니 내게는 행운이었다.”

미술은 일찍부터 곁을 맴돌았다. 유년기부터 코끼리나 꽃 그림을 그리면 ‘잘 그린다’는 소리를 곧잘 들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기에는 시험을 쳐서 미술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렸다. 그의 고향인 경주는 그 시절에 미술부 지원자가 많았다. 미술부가 되면 특권부터 달랐다. 오전 수업만 들으면 오후 시간은 계림숲에서 그림만 그려도 되는 행운이 주어졌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계림 숲에 가서 점심 먹고 그림 한 장 그리면 바로 집으로 갔다. 그때는 철이 없어 그게 참 좋았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공대 진학을 꿈꿨다. 산업화의 물결이 한창이던 시절에 공대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문제는 중,고등학교에서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공부가 부족했던 것. 일찍 현실을 간파하고 농사꾼으로 진로를 수정했다. 하지만 봄 보리타작 일을 몇일 거들면서 노동의 고된 현실을 알게 되면서 이 또한 접었다. 마지막 보루는 미술이었고, 결국 부산사범대학에 진학했다.

2년제였던 부산사범대학은 이승만 신정부가 미국의 피바디 대학과 MOU를 맺어 미술, 음악, 체육, 가정, 과학, 수학 6개 과목을 개설해 파견된 피바디 대학 교수가 지도 감독했다. 이 대학 졸업자는 중등교사 자격이 주어졌다.

“내가 그래도 경주에서 그림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소리를 들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것이 순리지 싶었다. 그래서 알아봤더니 부산사범대학 미술과가 있어 그곳으로 진학했다.”

2년제인 부산사범대를 졸업하고 영천중, 고령중, 경북중, 경북고에서 교직생활을 이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 미술 공부에 대한 갈증이 올라왔다. 목표는 홍익대 미술대학으로 잡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계명대 미술대학에 편입했다. 이후 대학원도 마쳤다.

“계대 졸업하고 대구여고 교사를 거쳐 29년 동안 장학사, 장학관, 연구사, 연구관 등 교육전문직을 두루 거치고 경북여고 교장으로 퇴임했다.”


이천우작-고향
이천우 작 ‘고향’


첫 개인전은 64년에 경주의 티파니 다방에서 가졌다. 이후 72년, 87년, 91년, 2004년 등 10여년의 간극을 두고 개인전을 열었다. 50~100호짜리 대작은 정년퇴직하고 2008년도에 팔공산에 작업실을 마련하면서부터 시작했다. 본격적인 대작이 시작된 것이니 큰 변화에 속한다.

40여년 화업 기간 동안 변화는 거듭됐다. 작업실을 옮길 때마다 환경이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림도 따라 변했다. 60년대가 수채화 위주로 그렸다면 70년대로 접어들면서 동양적인 화풍으로 돌아섰다. 동양적인 화풍도 먹의 농도를 조절하는 발묵과 조형성 등의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림이 바뀌는 것이 좋나, 나쁘나는 남들이 평할 일이다. 그리는 것은 내 소관이니 마음대로 그렸다. 크게 그리고 싶으면 크게 그리고 세밀하게 그리고 싶으면 세밀하게 그렸다.”

딱 봐도 한국화다. 아련한 고향 풍경이 고졸하고 유려한 필묵과 형상으로 표현되고 있다. 먹의 농도를 한 겹 걷어내고 형상을 절제하며 현대적 미감을 담아내고 있어 고루하지 않을 뿐더러 세련미마저 넘실댄다. 전통적 기법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인 운용의 미를 보여주는 이천우 선생 특유의 화풍이다.

“경주 불교포교단에서 박지홍 선생이 한국화를 하시는 것을 많이 봤다. 경주라는 지역적 특수성도 한국화적인 정서와 맞았다.”

산과 나무와 초가집이 그림의 주된 소재다. 완만하게 둥근 지붕의 초가를 원으로 이으면 작은 우주가 된다. 초가는 소우주인 작가 자신을 의미한다. 초가집 지척에 우뚝 솟은 나무는 사람에 대한 의인이다. 그리고 초가지붕 뒤에 자리한 산은 우주를 의미한다. 고향 풍경 속에 우주와 사람과 작가 자신을 배치했다. 소박하고 순수한 고향을 그렸지만 내재된 세계관은 광활하다.

“경주는 단순하지가 않다. 내 고향이기도 하지만 천년의 시간이 중첩된 고도다. 그 안에는 나와 인간과 우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현존한다.”

선생은 이야기꾼이다. 그는 단순한 풍경 속에 의미를 심고는 한다. 가족이야기와 고향이야기 그리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끌어오는 것. 내재된 감성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데에는 이야기가 전하는 힘이 한몫한다. 물론 이야기를 찾아 재미는 관람객의 몫이다. “우리집 다섯 아이들은 다섯 그루의 나무로 의인화하고, 보고 싶은 얼굴들은 향기로운 꽃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이천우 선생은 계획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붓을 잡았을 때 떠오르는 풍경을 단숨에 낚아챈다. 굵은 선묘와 가는 선묘의 조화, 가장자리의 번짐 효과로 얻은 면과 선의 조화, 담묵과 농묵의 대조, 대범함과 안정적인 구조의 대비 등의 변화무쌍한 기법들이 교차하지만 딱히 정해진 법은 없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손과 붓이 따르면 그만이다.

“먹의 무상함이 있지 않나 싶지만 아직도 오체는 다 느끼지 못한다. 다양한 느낌을 느끼며 먹의 오체를 경험해 갈 뿐이다. 분명한 것은 먹의 향이 시간이 갈수록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 좋아지는 먹 향을 내가 원하는 대로 운용하면 그만이다.”

서예의 남석 이성조와 한국화의 천우 이천우 선생 등 두 원로작가를 초대해 먹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 원로작가초대전은 1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천우 이천우 선생(74)의 고향은 경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 중의 하나로 알려진 계림 숲에서 그림 그리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인간이라면 고향에 대한 향수 하나쯤은 품고 살지만 타향살이가 길어지면서 기억 속 잔상은 흐릿해진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천우 선생은 세월이 흐를수록 잔상이 또렷해졌다. 설사 귀향을 결행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고향만은 붙잡고 싶었다. 그에게 고향은 그리움이자 순수의 다른 이름이다. 그 애틋한 고향을 그림에 담아왔다. ‘나’, ‘고향’, ‘그리움’ 등의 서로 다른 제목과 표현법을 구사하지만 공통으로 향하는 정서는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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