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꿈꾸는 완전무결한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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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인옥
  • 승인 2017.04.1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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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은 ‘아침태양’展
30일까지 키다리갤러리
순수함과 강함 간직한 존재로
‘다육식물소녀’ 소재로 선택
초현실적 화풍으로 그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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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은의 개인전이 30일까지 키다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긴 생머리에 원피스 차림의 서승은(35)이 대뜸 “5년 동안 잠적했었다”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저 생기발랄한 또래의 젊은 작가일 것이라는 첫인상과 달리 ‘쌔다’는 감이 확 올라왔다. 그녀도 주저 없이 말을 이어갔다.

“누가 와서 문을 두드려도 못들은 척하고 작업만 했어요.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그렇게 작업실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5년 동안 오직 그림만 그렸죠. 아버지께서 ‘소설가 이외수처럼만 되지 말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이때가 스물 여덟 살이었다. 서울로 진출해 명성을 얻고 싶은 열망과 학연, 지연이 지배하는 미술환경에 질식할 것 같은 감정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해답을 구하기 위한 그녀의 선택지는 ‘잠적’. 이 시기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대한 고민에 푹 빠져 살았다.

“잠적, 단절 등에는 고뇌, 고통이 하나의 묶음처럼 엮어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하지만 저는 오직 그림만 그렸으면 좋겠다는 화가의 ‘로망’을 실현하는 느낌이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5년 동안 행복감으로 가득 찼었죠.”

최근 시작한 키다리갤러리 초대전에서 만난 ‘다육소녀’도 ‘5년 잠적’처럼 획기적이었다. 다육식물과 소녀의 결합이라는 특이한 조합이 그랬고, 인간세계의 온기와는 사뭇 다른 신비스러운 다육소녀의 출현도 그랬다. ‘다육소녀’ 연작에는 초월적인 모습의 소녀를 다육식물이 장식하고 산양, 꿀벌, 곤충 등이 그 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어린시절의 순수함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다고 봐요. 단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로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대인관계 등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 뿐이죠. 다육소녀는 순수한 상태에서도 상처받지 않는 초월적 인간을 의미하죠.”

강렬한 색채와 낮은 채도, 수채화 같은 화면 등을 보면 서양화라고 오인하기 딱 좋다. 하지만 서승은은 한국화를 그린다. 동양화 물감과 안료를 혼합하고 한지를 사용해 고즈넉하면서도 몽환적인 동양의 정서를 살려내며 자신만의 현대 한국화를 구축하고 있다.

“붓을 타고 흐르는 감정선을 오롯이 빨아들이는 한지의 매력은 저와 잘 맞아요. 특히 혼자서 사색하는 것을 즐기고 그 과정들을 한지에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어 한지 작업은 정말이지 흥미로워요.”

인물을 주제로 한 것은 9년 정도 됐다. 우연히 초현실세계를 접목한 팝 슈어리얼리즘 장르를 접하면서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때부터 조금씩 시작된 인물화가 사실주의와 추상주의의 혼합, 그리고 신비주의적인 다육소녀 등으로 진화해 왔다.

초현실주의적이고 상상력이 가미된 슈어리얼리즘이 그렇듯 그녀의 작품 역시 상상력이 넘실댄다. 소녀와 다육식물 그리고 다양한 곤충과 동물들을 통해 동화 같은 이야기를 엮어간다. 그녀는 “의도와 비의도가 만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고 했다.

“화면과 마주했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화면에 옮기죠. 그때부터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화면 속에서 올라옵니다. 본 그림을 잠시 쉬며 연습장에 다양한 동물들을 드로잉 하다보면 그것이 또 본 그림의 이야기로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완성되어 가죠.”

외부 일정은 제한하고 작업실 붙박이로 살아가던 그녀의 본격적인 세상나들이는 2013년부터 시작됐다. 키다리갤러리 김민석 대표를 만나 전속 작가가 되면서 전시와 아트페어에 참여하고 있다.

활동 기간에 비해 해외 경력은 화려하다. 칩거 초기에 미국 그림 판매 인터넷 사이트에 작품을 올리고 계속해서 작품이 판매됐다. 여세를 몰아 갤러리를 운영하는 어느 미국 교수의 요청으로 미국에서 개인전을 두 번이나 열기도 했다. 중국 진출은 더욱 극적이었다. 어느 중국 파워 블로거가 그녀의 그림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일시에 유명인사가 됐다. 그 현상을 보고 북경연합출판공사에서 에세이집 출간과 전시를 요청해 왔다. 현재 사드 문제로 중국 일정은 중단됐다.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여기다가도 ‘화가의 본질인 작품에 몰입한 결과’라는 생각도 합니다. 앞으로도 그림만 보고 가는,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도전하는 화가로 살고 싶어요.”

아침 햇살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신작 6점과 대표작을 선보이는 서승은의 ‘아침 태양’전은 키다리갤러리에서 30일까지. 070-7566-5995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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