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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계 늦깎이 실력파들 “받은 사랑, 더 크게 나누고파”

기사전송 2017-04-18, 21: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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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재능나눔봉사단 멤버 강민주 인터뷰
87년 KBS 신인가요제 대상 수상 불구
2집까지 홍보 실패…밤무대 가수 생활
2000년 ‘로맨스 사랑’·‘회룡포’ 등으로
중장년층 사로잡아…케이블서 MC도
“봉사하니 행복…사회환원 계속할 것”

KBS재능나눔봉사단 멤버 제임스 킹 인터뷰
혼혈 1세대 ‘미운오리새끼’ 대우 받아
곡 ‘당신이 딱이야’ 통해 대중과 접촉
흑인 리듬과 목소리·에너지로 인기
“내게 손 내민 이웃 보며 스스로 반성
남은 생도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할 것”
 트로트가수 강민주와 제임스킹은 트로트의 여왕, 트로트의 황제라는 수식어와는 거리가 멀다. 가수로 큰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풋풋한 샛별도 아니다. 이들은 오랜 무명생활을 겪고 빛을 보기 시작한 묵은둥이들. 이 둘이 지난 14일 (사)전국자원봉사연맹이 주최한 천사희망콘서트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오랜 무명으로 다져진 실력파라는 것과 재능기부로 소외된 이웃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희망의 전령사들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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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과 봉사로 진정한 행복 찾아가는 강민주

트로트가수 강민주는 대기만성형이다. 긴 무명기를 보낸 이후 각종 무대에 초대가수로 불려 다니며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 비록 무명기는 길었지만 그녀는 공인된 실력파다. 87년 KBS 신인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것. 밤무대 가수의 설움을 벗고 인기가수로 거듭나고 싶어 가수 등용문이 신인가요제에 도전해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꽃길은 허락되지 않았다. 가요제 수상 이듬해인 88년 발표한 첫 앨범 ‘여백’이 성적을 내지 못했고, 90년대에 2집 ‘한 번 더’로 재도전했지만 이름을 알리는 데 실패했다. 그해에 2등을 수상한 수와진이 수상 이후 승승장구하며 인기가수로 급부상 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초라한 성적이었다.

그녀는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소속사도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며 “나는 돈도 빽도 없어 혼자서 개척해야 했다. 그게 쉽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비록 뒤늦게 빛을 보고 있지만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천상 가수의 기질을 타고났다. 태어나 100일 동안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치열하게 울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100일 동안의 울부짓음을 득음(?)의 시기였다고 떠올렸다.

“목소리에 관한한 일찍부터 자신이 있었던 것 같다. 어린시절부터 늘 노래를 하고 다녔다. 초등학교 때 웅변을 시작한 것도 그런 자신감 때문이었다.”

가수에 대한 꿈은 일찍부터 확고했고,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가수가 되겠다고 서울 상경을 감행했다. 하지만 빽도, 돈도, 학벌도 없는 그녀에게 현실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빛맹아학교 등을 전전하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밤무대에서 활동하던 그룹의 보컬이었던 중학교 동창의 남자친구 소개로 밤무대에서 노래하는 기회를 얻으면서 본격적으로 노래의 길에 들어섰다.

“뜻이 있으니 길이 열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오랜 시간 밤무대 가수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이다. 당시 발표한 3집 앨범 ‘톡톡 쏘는 남자’가 관심을 끌면서 각종 무대에 러브콜을 받았다. 이후 ‘사랑하나 이별 둘’, ‘로맨스 사랑’ 등으로 활동을 이어오다 5년 만에 발표한 앨범 ‘욕심 없는 여자’, ‘회룡포’ 등이 단숨에 중장년층의 귀를 사로잡았다. 올해 발표한 신곡 ‘내사랑 연가’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수로서의 인기에 힘입어 성인가요 프로그램인 ‘팡팡 가요쇼’, ‘가요청백전’, ‘가요발전소’와 백혈병 환우돕기 프로그램인 ‘희망콘서트’ 등 케이블채널 MC로도 활동하기도 했다.

강민주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KBS재능나눔봉사단에 가입하면서다. 이 봉사단에서 교도소와 요양원, 장애인단체, 복지관 등의 무대에서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게 되면서 봉사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다.

“소외된 이웃에게 노래로 나눔을 실천하면서 내가 행복해졌고, 그때부터 좋은 일들이 생겼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는 강민주는 허스키 보이스 김수희와 간드러지는 심수봉의 바이브레이션이 혼합된 독특한 목소리로 국내 어느 가수보다 음량이 풍부하고 매력적인 음색을 자랑한다. 맑은 허스키보이스로 트로트는 물론이고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전천후 실력파다.

“1등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 공연 끝나고 소주 한잔 기울일 정도면 그것으로 족하다. 대신 꾸준하게 노래하며 내가 받은 사랑과 행복을 사회에 환원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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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입은 마음 봉사로 치유하는 제임스킹

제임스킹의 삶은 전쟁이었다. 온갖 차별과 멸시 등의 사회적 편견과 맞서 투쟁가처럼 살았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피부색이 다른 미운오리새끼였다.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학창시절 내내 혼혈1세대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 인종차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가수가 된 것도 스타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다 피부색이 다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다문화 가정이 사회의 한 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금도 편견은 가시지 않고 있다. 내가 어릴때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니 투사로 살 수밖에 없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업도 포기한 채 막 나가던 제임스킹. 그런 그가 남다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특유의 음악적 재능과 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처음 섰던 무대는 유흥업소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거짓된 삶을 강요받았다. 혼혈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외국에서 활동하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가수 행세를 해야 했다.

“외국인이라고 해야 더 인정받는 문화가 당시에 있었다. 그래서 외국인 행세를 했다. 거짓된 삶이었고 여전히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전환의 계기는 2006년에 마련됐다. 한국계 미식축구 스타인 하인즈 워드가 ‘슈퍼볼’ MVP로 선정되며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하인즈 워드와 함께 KBS ‘아침마당’에 출연하면서 전국 방송을 탔다. 이 프로그램에서 제임스킹이 혼혈아로 힘들게 살고 있는 사정이 알려진 것. 그의 사연을 들은 프로그램의 작가가 작곡가를 소개해주어 같은 해 첫 앨범 ‘말을 해’를 발표했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제임스킹은 루이 암스트롱의 매력적인 창법을 쏙 닮은 가창력으로 밝고 구성진 세미 트로트를 부른다. 타고난 흑인 특유의 리듬과 목소리와 오랜 밤무대 생활로 다져진 가창력, 그리고 무대를 휘어잡는 특유의 에너지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그런 그가 대중과 한층 가까워진 시기는 2013년이다. 당시 발표한 2집 앨범 ‘당신이 딱이야’가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아침마당’ ‘6시 내고향’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초대되면서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들과 만났다.

“팬클럽도 생기며 이제야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매니저도 팬클럽 멤버였다.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해 준 고마운 분들이다.”

2013년은 그의 삶을 바꾼 해다. 현재 ‘KBS재능나눔봉사단’ 부단장인 가수 강민주를 통해 봉사단에 입단하고 봉사와 나눔의 삶이 주는 기쁨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그는 “노래로 재능봉사를 하며 비로소 내가 치유되고 있다”고 했다.

“무대에서 땀을 흘리며 노래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땀을 닦아주고 감가의 마음을 전하는 소외된 이웃들을 만나면서 나를 반성하게 됐다. 나도 이들처럼 먼저 따뜻하게 다가간 적이 있나 싶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정신의 장애’를 겪고 산 자신이 보였다.”

그는 대부분의 스케줄을 봉사에 맞추고 있을 정도로 봉사를 삶의 큰 의미로 여기고 있다. 편견과 맞서느라 잃어버렸던 쾌활한 본성을 봉사를 통해 회복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되찾고 있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행복한 무대도 경험하고 있다.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며 살다보니 내 마음이 밝아져 세상도 밝게 보인다. 노래하는 재능 봉사로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남은 인생도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겠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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