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이타적 삶, 그 고귀함에 대하여
여성들의 이타적 삶, 그 고귀함에 대하여
  • 황인옥
  • 승인 2017.04.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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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윤석남 ‘사람과 사람없이’전
100마리 개 형상 설치작품·한복 입은 여성 전신상과 조각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되는 여성의 희생적 삶 예술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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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윤석남 초대전이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에서 6월25일까지 열린다.
설치작품인 100마리의 개들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서지않고 앉겠다”고 했다. 그녀가 나무개들 사이에 앉자 거짓말처럼 작품에 온기가 돌았다. 그녀는 소외되고 여린 존재들을 감싸 안는 것이 몸에 배인 천상 따뜻한 여성이었다.

봉산문화회관에서 전시를 시작한 윤석남 예술의 출발점은 패미니즘이다. 그녀의 어머니, 그녀 자신, 그리고 자기희생을 통한 이타적인 삶을 사는 여성들을 통해 가부장제 또는 여성차별 사회로부터 억압당하는 여성의 삶을 드러내고 위무(慰撫)를 보낸다.

사실 그녀가 그림을 시작한 70년대 후반만 해도 패미니즘이라는 말은 일반화되지 않았다. 그녀의 출발선에도 여성주의 담론이라는 거창한 패미니즘은 없었다. 아파트를 마련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40세에 그림에 대한 욕망이 올라오면서, 강요받았든 자발적이었든 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여성으로서 자신을 반추하게 되면서 ‘여성의 삶’이 예술의 주제로 자리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 어머니는 왜 그렇게 살아야 했을까’라는 질문을 시작하면서 어머니, 어머니의 삶은 빼닮은 시장의 억척스러운 어머니들을 평면에 그려냈다.

“내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뒤 6명의 자식을 혼자 키운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였다. 세대가 바뀐 내 삶도 어머니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땅에 여성으로 내어났고 여성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다보니 그것이 패미니즘이었다.”

79년에 그림을 시작하고 10년을 평면에 천착하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설치로 전환했다. 작품 ‘핑크품’과 ‘999’ 등이 대표적이다. 변화는 공간을 구축하는 연극적 요소, 즉 이야기를 심을 수 있는 설치의 매력에 끌려 진행됐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더 드라마틱한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타적 삶을 사는 여성의 희생적 삶의 참뜻을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전달하고 싶었다. 설치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효과적인 장치다.”

작품 ‘999’는 버려진 나무를 주워다 1,000명의 여성을 조각한 것이다. 나무 기둥에 빨강과 파랑, 녹색과 핑크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다 한복 차림의 여성 전신상을 선명한 색채로 그렸다. 이는 현대여성과 어머니 시대 여성 사이의 시간을 초월한 ‘여성상’에 대한 연결성의 표현이었다.

본격적인 자신의 이야기는 작품 ‘핑크룸’ 부터 시작했다. 어머니 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여전히 불안정한 현대 여성의 상황을 에둘러 표현했다. 작품은 주방에서 사용하다 버려진 의자에 화사한 핑크빛 한복 천을 덮고 사람이 앉는 쿠션 부분에 날카롭고 뾰족한 송곳 형태의 요철로 마감했다.

봉산문화회관 전시에는 버리진 나무로 조각된 100마리의 개와 신비스러운 여성 조각상을 설치했다. 2003년에 서울 근교의 시골에서 버려진 개 1,025마리를 보호하며 살아가는 여성의 기사를 보고 모티브를 얻었다. 이후 5년간 1,500마리의 개를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는 전시장의 규모에 맞게 100마리를 설치하고 개를 돌보는 60대 여인을 푸른빛이 감도는 신비스러운 여인으로 표현해 개들의 무리 속에 설치했다. 전시장 한켠에는 길게 늘어진 팔이 인상적인 여인도 설치했다.

이 작품들은 여전히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보편여성으로 외연 확장성을 꾀하고 있다.

“1,025마리 개를 통해서는 개들을 쓰레기처럼 버리는 현대인의 이기심과 냉혹함에 대한 분노와 그 개들을 돌보는 여성의 사심 없는 힘을 이야기하고, 팔이 늘어진 여인을 통해서는 누군가에게 닿고 소통하고, 뭔가를 이루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표현했다.”

여성 차별에 대한 고발, 여성 자애의 힘에 대한 강한 신뢰, 황금만능으로 전락한 현대사회를 구제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의 힘 등을 이야기하는 패미니스트 아티스트 윤석남의 ‘사람과 사람 없이’전은 봉산문화회관 4전시실에서 6월 25일까지.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작가와의 대화는 5월 13일 오후 3시에. 053-661-352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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