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에 수놓은 모든 존재의 애틋함
한지에 수놓은 모든 존재의 애틋함
  • 대구신문
  • 승인 2017.04.2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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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가 주목한 지역 작가 3人의 작품세계

<1> 심 향

한글 자음 이미지 차용

한지 위 바늘과 실로 연결

구상과 비구상 넘나들며

동양적 철학 담아내
030
심향이 작품 ‘Starfield’를 설명하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완, 심향, 손파 등 3명이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미술제인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를 받았다. 이번 초대는 비엔날레 주최측이 전시 주제에 부합하는 작가를 찾는 과정에서 까다로운 평가 절차를 거쳐 선택됐다.

이들 3명의 작가는 13일부터 11월 26일까지 이탈리아 베니스 팔라조 벰보와 팔라조 모라 두 곳에서 열리는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의 특별전에 참여한다. 국가관 전시와는 별도로 열리는 특별전은 세계 각국의 주목을 받는 작가들을 선정,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연령대를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시간, 공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다. 특별전 주최자는 네덜란드 비영리재단인 글로벌아트페어재단과 유러피안컬처센터 등이다.

본지는 대구 미술계에 반가운 소식을 전한 이들 3인의 작품세계를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살펴보기로 한다.

◆ 실과 바늘로 동양의 정신 표현하는 심향

분명 현대미술인데 한국화를 보는 듯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점과 선과 면의 조우, 대놓고 드러내기보다 속에서 한 템보 걸러주는 정제미, 시간과 관계들이 중첩된 감정선의 조용한 분기(奮起)가 한국화와 빼닮았다.

하지만 화폭 어디에도 붓과 먹이 지나간 흔적은 없다. 먹과 붓과의 이별, 이는 한국화를 닮았지만 한국화와는 또 다른 강인함을 끌어들이는 배경이다. 이처럼 뻔함을 뛰어넘는 반전 매력이 심향을 2017 베니스비엔날레로 불러들인 이유이자 위대성이다.

“붓과 먹에 갇혀 있는 자신을 보게 되면서 한계가 밀려왔다. 자유롭고 싶었다. 몇 년 작업을 접고 혼란의 시간을 겪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붓과 먹을 내려놓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먹을 병행하기도 한다.”

붓과 먹의 자리를 꿰 찬 것은 실과 바늘이다. 주변에서 가장 흔한 실과 바늘의 포용성에 의식이 닿자 한 치의 고민 없이 한지에 실을 꿰기 시작했다.

“새로운 재료에 대한 갈구는 작가의 숙명이다. 내게는 실과 바늘이 출구였다. 실로 표현되어지는 독특한 조형감, 바느질이 가지는 효용성, 점과 점을 이어주는 실의 연결성이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와 묘하게 들어맞았다.”

이때부터 심향에게는 서예가 대신 서양화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심향 미술의 출발은 서예다. 20대 후반에 청전 이상범 화가의 화집을 보고 반해 동양 미술을 먼저 시작했지만, 취미로 배우던 서예의 깊이에 빠져 때마침 개설한 계명대 서예과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서예를 더 깊이 접하면서 한지와 먹이 주는 깊이감과 심오함에 매료돼 갔다. 미친 듯이 글씨를 쓰며 서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변화는 청도에 작업실을 마련하면서부터 찾아왔다. 전원생활을 하며 아낌없이 생명을 품어 안는 자연의 본성을 접하면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예술의 합목적성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 의문이 붓과 먹에 대한 완고한 믿음을 내려놓게 했고, 전혀 다른 새로운 예술의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정확히 7년 전의 일이다.

“예술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연의 본성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과 바늘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실과 바늘의 본성이야말로 이타성이 아닌가?”

작업 방식은 중첩적이다. 한지의 바탕을 바늘과 실로 연결하며 입체감을 만들고 그 위에 또 한 장의 한지를 배접하고 또 다시 실과 바늘로 면을 잇는다. 이 과정이 최대 5겹까지 겹칠 때도 있다. 형상은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든다. 이때 기본이 되는 이미지는 한글 자음과 한자의 빛광(光)자다. 서예의 한계에도 글자의 조형성과 의미가 주는 매력은 차감되지 않아 글자의 기초는 그대로 가져왔다.

작품은 각각의 자음 무더기를 미시적인 조형성으로 집적하고, 겹치는 과정을 거치면서 거시적인 형태로 완성된다. 이때 작업방식은 일필휘지의 서예와 정반대로 진행된다. 철저하게 계획되고 계산해서 구상한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동양의 정신성으로부터 출발한 탓일까? 심향의 작품에는 한국화와 동일한 깊이감이 넘실댄다. “서예는 글자가 가지는 의미 외에는 어떤 메시지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 반면에 지금의 작업에는 내 철학을 무궁무진하게 담을 수 있다.”

작품의 모티브는 밤하늘의 별. 제목 또한 ‘스타필드(Starfield)’다. 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반짝임. 다른 말로 빛남이다.

하지만 심향의 마음을 건드리는 존재는 빛나지 않는 존재감이 미미한 별이다. 그는 실로 빛과 어둠을 차별 없이 연결한다. 그리고 소통 길을 연다. 이를 통해 더 큰 에너지원을 만들어낸다. 이는 박애의 다른 이름이다.

“바느질을 뒷면에서 거꾸로 한다. 앞면은 그 결과다. 빛과 어둠의 공존인 것이다. 존재의 본질에서 보면 빛과 어둠은 모두 귀하다. 나는 특히 어두운 존재들에 애정을 둔다. 우리 마음 안에도 어둠과 빛이 있다. 빛과 어둠을 인정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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