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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가 담아낸 찰나…그 시절 “오라이~” 소리 귓가 쟁쟁

기사전송 2017-05-16, 21: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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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호 ‘60~70년대 대구경북교통사진전’ 한정식 갤러리
권정호 보도사진가의 길
21살부터 40년간 기자 활동
필름 특성상 최대 4컷서 승부
곳곳 취재하며 상복 잇따라
60~70년대 교통사진전
생활과 밀접한 대중교통 주제
창문으로 탑승하려는 사람 등
과거 떠올리게 하는 20점 선봬
보도사진가 마침표,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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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사진가 권정호의 60~70년대 교통관련 보도사진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팔자주름과 백발이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그렇더라도 짧은 스포츠 머리와 선굵은 주름사이에서 묻어나는 결기는 젊은이 못지 않았다. 그는 40여년을 보도사진가로 살았던 권정호(78). 그가 60~70년대의 전시된 사진 앞에서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매일신문 사진기자 36년, 퇴직 후 대구신문 사진부 3년. 총 40년 동안 보도현장을 누볐던 그의 입에서 지난날의 대구경북의 교통역사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구술됐다.

“세상 참 많이 변했어요. 지금이야 서울에서 부산가는 일이 별일 아니잖아요? 2시간30분 동안 쾌적한 열차에 앉아 영화 한편 보고나면 부산에 도착하니까요. 60~70년 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죠. 오죽하면 명절에 고향 가는 것을 귀성전쟁이라고 했을까…”

보도사진가 권정호의 ‘60~70년대 대구경북교통사진’전이 대구 중구 약령시 입구에 위치한 산 한정식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60~70년대 대구의 교통 문화와 삶의 단면을 담은 사진 20여점이 걸려 약령시를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사진들 중에서 전시 주제를 교통사진으로 정한 배경은 생활과 밀접하다는 교통의 특성 때문이다. 교통 문화에는 당시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60년대와 70년대를 돌아보며 추억에도 젖어보고 알지 못했던 우리의 과거를 경험하기를 바라며 전시를 열었어요. 지난 7일까지 열렸던 약령시한방문화축제 기간에 맞춰 기획해 가족단위로 축제를 찾는 시민들이 과거 우리의 모습을 보며 이야기꽃을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았어요.”

전시는 열차 사진과 자동차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벽면 입구에 걸린 사진은 60~70년 전 어느 명절의 대구역과 동대구역 풍경들. 동대구역 대합실에 추석 귀승객이 발 디딤 틈 없이 운집해 있고, 공안이 질서유지를 외치고 있는가 하면, 증기 기관 열차 창문으로 도둑고양이처럼 몸을 싣고 있거나 열차 난간에 빼곡하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도 있다.

또 다른 사진은 팔달교에서 봉덕동 전 효성여대 앞까지 운행됐다는 10인 정도 탑승할 수 있는 60년대의 합승차는 이국적인 정취마저 자아낸다. 차장이 만원 버스에 사람을 밀쳐넣는 사진에서는 ‘오라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고향 갈 사람은 많고, 운행열차는 제한되어 있고. 추석인데 고향은 가야겠고. 어쩌겠어요? 무조건 열차에 몸을 싣고 보는 거죠. 열차 내부에도 발 디딜 틈이 없으면 외부 난간이라도 잡기 바빴어요. 위험해 보일수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고향에 갈 수 있는 것에 감지덕지하던 시절이죠.”

권정호는 보도사진 1.5세대다. 21살에 매일신문 사진기사로 시작했다. 사진은 우연히 시작했다. 당시에는 사치품이던 카메라가 집에 있기도 했지만, 중학교 재학 시기 매일신문 사진부장이었던 배상하 선생 집에 기거하면서 사진을 배운 인연이 있었다. 이후 배 선생 밑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매일신문이 조간으로 바뀌었지만 그가 근무하던 시절만 해도 석간이어서 사진기자의 삶은 그야말로 전쟁의 연속이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오후12시까지는 마감을 해야 했다. 늘 벼랑 끝 삶처럼 살았다. 마감 전까지는 어떻게든 그날 마감할 사진 한 장을 들고 와야 했다. 오전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특히 명절 귀성풍경은 오전에 꼭 찍어야 했다. 그가 귀성 사진 찍기 최적의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라고 귀띰했다. “시간대가 잘 맞아야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어요. 처음에는 잘 모르는데 하다보면 저절로 터득하게 되죠. 명절 사진은 10시부터 11시에 귀성 인파가 가장 많이 몰려서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죠.”

지금이야 디지털 카메라라 원하는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수없이 셔터를 눌러대지만 필름 카메라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많아도 3~4컷으로 결판을 봐야 했다. 권정호는 대단한 승부사였다.

“필름 값이 비싸서 많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모든 여건이 성숙하기를 기다려서 단 한 컷의 사진으로 원하는 사진을 찍어왔어요. 습관이 돼서 디지털카메라를 쓰는 지금도 그 방식을 고수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박하기 때문에 더 완성도 높은 사진이 나온다고 할까요?”


나도한잔
71년 한국신문회관 주최 수상작 ‘나도 한잔’.


신문기자 생활 40년 동안 대구의 문화, 사회, 경제, 정치 등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분야가 없었다. 84년에 교황 바오로2세 방한기간 중 한국 측 수행사진 기자 1명에 선발되고, 85년에는 한국기자로는 최초로 갈라파고스제도를 취재하기도 했다. 87년에는 남극 킹조지섬 한국 세종기지건설현장을 취재했고, 88년에는 서울올림픽 MPC대한민국공동기자단에 선발되기도 하며 사진기자로서 의미 있는 기록도 남겼다.상복도 많았다. 71 한국신문회관 주최 제9회 보도사진전 동상, 73년 한국신문회관 주최 제11회 보도사진전 가작, 81년에 한국신문회관 주최 제18회 보도사진전 금상을 수상했다.

99년 월간 ‘말’지가 20세기를 대표하는 20장면 중 12번째로 선정한 사진인 71년 수상작 ‘나도 한잔’이다. 어린아이가 어른들 사이에서 막걸리 사발을 들이키는 장면의 사진이다. 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경북 청도 중앙극장 앞 목판을 깔고 막걸리 술판을 벌여 찍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가난한 시절, 당시 선거는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내려놓고 딴 세상을 즐겨보는 투전판과도 같았다. 비록 민주주의는 요원했지만, 유일하게 이 투전판에서 ‘갑’이 되어보는 서민들에게 어쩌면 대선은 축제처럼 기다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유당 시절에는 고무신 선거였고, 5공 때는 막걸리 선거였어요. 막걸리 한 잔에 표를 사고 팔았어요. 그때 막걸리는 무한대로 마실 수 있었어요. 배고픈 시절의 막걸리라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금상의 영예를 안겨준 사진 ’엄마야‘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사진이다. 81년5월14일 경산 열차사고 현장에서 쓰러진 엄마를 부르며 울부짓는 아이의 사진이다. 이 사진 속 아이와는 지금까지도 연락이 닿고 있다.

“다행히 아이 엄마가 살아서 사진을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었어요. 어른이 되어 큰아이 돌잔치에 저를 초대하기까지 했어요. 반가운 인연으로 남아있죠.”

사진기자 권정호는 승부사 기질이 강했다. 신문사 근처에 집을 마련하고 신문사 당직실과 집 사이에 핫라인을 연결해 밤중에도 사건이 터지면 제일 먼저 현장으로 달려갔다. 전화가 흔치 않던 시절이고, 신문사간 1면 사진 경쟁이 치열할 때라 부담감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내가 근성이 좀 남달랐어요. 어떻게든 먼저 가서 좋은 사진을 찍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죠. 마감 시간도 칼같이 지켜서 전국의 큰 사건은 내 차지가 많이 됐어요.”

보도사진가 40년을 정리하고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는 권정호. 그는 현재 ‘낭만 시니어 사진클럽’에서 세상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 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화한 지금에도 여전히 아날로그를 고집하며 시니어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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