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속 느림의 지혜 가르치는 ‘인간 중심 고장’
바쁜 일상 속 느림의 지혜 가르치는 ‘인간 중심 고장’
  • 황인옥
  • 승인 2017.07.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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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청송군
소헌왕후 기른 가문의 교육법 아직도 그대로
조선조 영의정 9명, 왕비 3명 배출한 명문家
어린시절 장터 경험 그린 김주영, 대작가로
보부상들의 치열했던 삶·여정 고스란히…
원시 풍광 자아내는 주산지, 영화 촬영지로 유명
임란때 일본에 끌려가 도공 예술혼 전한 심수관
◇ 청송 명소 구석구석 둘러보기

김영태_항일의병공원일출
항일의병기념공원에서 바라본 일출.
소헌공원(찬경루)
소헌공원의 찬경루

요즘처럼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느리게 간다는 것은 결코 칭찬받을 일이 못 된다. 하지만 남들보다 더 빨리 가야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변화무쌍한 시대에 오히려 필요한 건 느림인지도 모른다. 빠르게 가다 보면 놓치는 게 너무 많고 사물의 본질과 현상을 음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북 내륙의 오지에 있어 대대로 전해져오는 전통문화와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느림의 고장 청송은 바쁜 일상을 접고 천천히 느리게 여행하기 딱 알맞다. 최근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청송군 전 지역이 느림의 도시로 확대 인정받으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청송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자.

◇여성상의 롤 모델 소헌왕후의 본향 청송

우리나라 성씨는 대부분 지역을 근원으로 한다. 청송은 심씨의 본향이다. 청송에는 심씨를 기리는 고택과 시조묘 등 관련 유적이 많다. 청송 심씨는 조선 500년을 통해 쟁쟁한 권세를 누린 지배층을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조선조를 통해 영의정만 아홉 명이나 되었고, 왕비도 3명에 이른다. 청송 심씨 출신으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르고 존경 받는 인물은 바로 소헌왕후다.

소헌왕후는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성군인 세종대왕의 부인으로 남편을 잘 보필함은 물론 궁중 내명부를 가장 안정적으로 다스렸다고 정평이 나 있다. 아내로서의 자질과 지혜로운 내조는 말할 것도 없고 자녀를 잘 가르치고 성장시켜 국모로서의 면모를 한껏 발휘해 귀감이 되었다.

소헌왕후는 실록에서 “자애로우면서도 기강이 엄정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때때로 강단 있는 여장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것을 증명하는 한 가지 일화가 전해온다. 세종 8년, 한양에 큰 불이 났을 때 당시 지방에 나가 있던 세종대왕을 대신해서 화재 진압을 직접 진두지휘 했는데, 이때 왕비는 후일의 금성대군을 가진 만삭의 몸이었다고 한다.

성군이 나라를 잘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려면 반드시 집안을 가지런히 잘 다독이고 챙기는 지혜로운 아내가 있어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하지 않는가. 소헌왕후의 후덕하고 모범적인 왕비의 모습은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청송에는 소헌왕후 심씨의 시호를 딴 소헌공원이 있다. 2011년 사적공원으로 지정된 공원 안에는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 사신이 머물던 객사인 운봉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252호)과 청송 심씨 시조묘를 우러러 찬탄한다는 의미에서 세운 누각인 찬경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3호)가 늠름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찬경루의 현판은 세종의 아들로 당대 최고의 명필 안평대군이 쓴 ‘송백강릉(松柏岡陵)’이란 글씨가 눈에 띈다. 그밖에도 청송 심씨 사적비와 역대 부사들의 송덕비가 일렬로 늘어서 찬란했던 옛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현재 소헌공원은 지역민들의 휴식과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길 위의 작가,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김주영의 객주문학관

김주영은 1980년대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그은 소설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청송이다. 청송 첩첩산골 주왕산 자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너무 가난하고 외로워 다니던 직장을 접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설가는 어쩌면 너무나 절박했기에 역사에 남을 대작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고향 청송에서 겪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경험과 느낌을 고스란히 담아낸 김주영의 소설은 그래서 더욱 감동이 진하다.

어릴 적 그가 살았던 집은 장터와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에 장이 서는 날이면 유기전이 벌어지기도 하였고, 어물전이 열리기도 하며 시끌벅적 장터가 벌어졌다. 장터는 그의 학교이자 교사였다. 어릴 때부터 땀 냄새가 푹푹 배어 치열한 삶을 살아온 상인들의 강렬했던 인생들을 풀어내고자 마음먹고 그들 삶의 궤적을 쫓아 완성한 작품이 바로 대하소설 <객주>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보부상들의 삶과 여정은 우리네 인생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작가는 청송에서 보낸 어린 시절 장터 기억을 바탕으로 울진과 봉화를 잇는 보부상 길을 수차례 답사하고 5년간의 자료 수집과 장터 순례를 거쳐 적확한 단어 하나를 찾는데 밤을 꼬박 세워 가며 작품을 완성했다. 그렇게 뚝심과 인고의 세월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온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생생한 울림으로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 것임에 틀림없다.

청송군 진보면에는 한국 역사소설의 새 지평을 연 <객주>를 테마로 한 ‘객주문학관’이 있다. 이곳에는 객주를 중심으로 작가의 문학세계를 담은 전시관과 소설도서관, 스페이스객주, 영상교육실, 창작스튜디오를 비롯해 김주영 소설가의 집필실인 ‘여송헌(與松軒)’ 등이 있어 작가의 향취를 만날 수 있다.

청송은 예로부터 불로장생의 고장이라 불려졌다. 2011년 국제슬로시티로 지어 받은데 이어 최근 유네스코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되면서 자연, 지질, 전통,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명품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수려한 자연이 그대로 살아 있고, 전통을 이어가려는 인간 중심의 고장 청송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으로 추억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자유기고가 bubryun@hanmail.net

△주산지

청송을 대표하는 주왕산은 당나라 주왕이 숨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노손의 운치가 사시사철 빼어난 경치를 연출한다. 주왕산 인근에 자리한 주산지는 조선 경종 원년(1721년)에 인위적으로 만든 농업용 저수지로 마치 산중호수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300여 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유유히 자생하고 있는 30여 그루의 왕버들은 계절 따라 새 옷을 갈아입는 자연과 만나 신비로운 태고적 원시의 풍광을 자아낸다. 주산지는 내(內)와 외(外)가 공존하는 듯한 공간감을 느끼게 해 한때 영화 촬영지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주산지에는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솔부엉이, 박새, 호반새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명승 105호호 지정된 주산지를 끼고 주왕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노라면 무릉도원이 바로 여긴가 여겨진다.

△심부자 99칸 송소고택

민가로서 최대의 부를 누렸던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이 1880년 경에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리에 지은 한옥으로 수차례 중수를 거쳤다. 경내에는 대문채, 큰사랑채, 안채, 작은사랑채, 별채 등 10여 채의 건물이 그 옛날 부귀영화를 말해 주는 듯 고색창연하게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ㅁ자형 구조로 지어졌는데 안채에는 안방과 사랑방이 보통 살림집과는 달리 그 규모가 장대하여 부잣집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는 안채와 구분되게 담장을 쳐 놓아 사랑공간과 생활공간, 적업공간이 구분되는 조선 상류 계층 주택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또 바깥마당 담장으로 구획한 별묘에는 4대 이상의 제사를 모실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여러 가지로 민속학적 가치가 높다. 송소고택은 99칸으로 ‘덕천동 심부자댁’이라 불릴 만큼 전통적인 양반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숙박하면서 고택체험도 가능하다.

△백자전시관 & 심수관도예전시관

청송에는 5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백자 도자기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백자전시관이 있다.

이곳에는 다른 지역에서 흔히 사용하는 흙으로 만든 도자가 아닌 도석(陶石)이라는 돌을 빻아서 만든 백자 도자기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향토사적 가치가 높다. 청송 백자의 특징은 백설의 빛깔을 띠며 그릇 두께가 얇고 가벼워 생활도자의 품격을 지닌다. 백자전시관에는 약솥, 주병, 대접, 사발, 접시, 단지, 떡살, 제기 등 빼어난 솜씨로 빚어낸 백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밖에도 전시관 남쪽에 백자도예촌을 따로 만들어 일반인들도 백자 체험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청송에는 임진왜란 때 강제로 끌려가 일본 사쓰마에 조선 도공의 예술혼을 꽃피운 도예가 심수관을 기리는 심수관도예전시관이 있다. 이곳에는 유명한 하바라끼 다완 작품과 심수관가 도자기변천사, 심수관가의 작품 세계와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항일의병기념공원

충의의 고장답게 전국에서 가장 많은 42명의 의병 유공 선열을 배출한 청송에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모태가 된 의병정신을 기리기 위한 항일의병기념공원이 있다.

2011년 개관한 항일의병기념공원은 전국 1,897명의 의병 위패를 배양하고 애국충절에 대한 경외심과 전통문화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는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항일의병기념공원에는 기념관을 비롯해 의병 위패가 모셔진 충의사와 효제충신재, 인의예지재, 창의루 등 한옥으로 지어진 전각과 의병 유공 선열의 이름을 새긴 명각대 등이 있다. 기념관에는 의병 활동상과 관련 유물들이 자세히 전시되어 있어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매년 6월 1일 의병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해 이곳에서 기념식을 거행한다.

△달기약수탕

달기약수탕은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 선생이 낙향하여 살면서 동네 사람들과 수로공사를 하던 중 바위틈에서 새어나오는 약물을 발견하여 약수터로 개발했다고 전해진다.

달기약수탕은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사계절 물의 양이 일정하며 겨울에도 얼지 않고 냄새와 색깔이 없는 게 특징이다. 탄산과 철 성분 등이 함유되어 있어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전해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근 음식점에서 약수로 만든 별미 음식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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