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스페이스 펄, 고려명 ‘초·충·도’展
아트스페이스 펄, 고려명 ‘초·충·도’展
  • 대구신문
  • 승인 2017.07.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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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으로 포착한 피사체 덩어리

식물·곤충의 생생한 디테일 추구

대형 필름카메라로 촬영·확대

배경·색깔 등 장식적 요소 배제

“본질 잡아내는 대상 자체 주목”
고려명_blue
고려명 작 ‘blue’


카메라가 호기심을 먼저 자극했다. 족히 50년은 넘어 보이는 구형 필름 카메라, 그것도 대형이었다. 독일제라고 했다. 사진가 고려명은 아날로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필름 카메라가 유물 취급 받기 십상인 디지털 카메라 천국 시대,  ‘카메라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걱정스레 물었더니, 의외로 그는 느긋했다.

“수집 목적의 필름 카메라는 상태가 좋아야 하니 비싸다. 내가 사용하는 카메라는 사진만 찍으면 된다. 외형보다 사진만 잘 찍히면 된다. 그런 카메라는 비싸지 않다. 필름도 생산이 중단되자마다 대량으로 사 놓아서 당분간은 걱정이 없다.”

현재 나이 만33세. 국내 학력은 중학교 중퇴가 전부다. 중학교 재학 중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도미해 정규교욱정에 편입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공부를 자유롭게 하는 방식으로 지적 호기심을 채웠다. 당시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악에도 관심을 보였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접었다.

음악을 하면서 연주보다 악기 만드는 일에 더 구미가 당겨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천성적으로 예술이나 문학보다 과학 쪽에 끌렸던 것이 사실이다. 사진에 빠져든 것도 천성과 무관치 않다. 암실에서 화학약품에 필름을 현상하고 빛을 쏘아 인화하는 과정이 과학을 다루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인식했다.

사진 입문의 또 다른 동기는 그의 아버지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취미로 사진을 찍던 모습이 달달한 기억으로 남았다. 사진이 아버지처럼 친근하게 다가온 것.

천성에 끌렸든 정서에 끌렸든, 기왕 사진을 하기로 했으니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사립 사진 학교를 1년 동안 다녔다. “약품에 필름을 넣고 사진을 인화하는 광경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설레임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아트스페이스 펄의 청년작가 기획전에 초대되어 ‘초(草)·충(蟲)·도(圖)’라는 주제로 첫 대구 나들이를 하고 있는 고려명. 전시에는 트레이드마크인 식물과 곤충을 촬영한 흑백사진을 걸었다.

사진은 장식이나 색, 배경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피망, 브로콜리, 아보카도, 포도, 잠자리와 애벌레 등 식물과 곤충 피사체를 간명하게 잡아냈다. 카메라와 과학을 언급하던 그가 ‘본질’이라는 철학으로 주제를 급전환했다.

“대상의 본질을 잡아낸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오직 존재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본질적인 형상을 통해 ‘나는 이런 사진을 추구하는데, 당신은 어떤 것을 추구합니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해외에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정규교육 과정과 동떨어져 혼자서 역사나 신화와 관련된 책을 독파하고, 박물관을 찾아 유물을 섭렵했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해외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자율적으로 하며 세상을 보고 읽는 눈을 키웠다. 

오랫동안 서양에서 살아온 이력에 비추어 서양지향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그를 만났다. 하지만 그가 쏟아내는 이야기는 백자토기와 공(空) 등의 동양예술과 동양철학 일색이었다. 대화가 무르익을수록 그의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흡사 동양화와 닮아 있었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기록하려는 목적이 있다. 기록을 위해서는 근원적인 사유가 있어야 한다. 책과 박물관에서 읽고 본 것들에 살을 붙인 것이 내 사진이다. 본질이라는 개념을 사진에서 읽을 수 있는데 이는 동양의 사유와 연결된다.”

본질에 집중하는 ‘초·충·도’ 작품 이전에는 실재에 충실한 사진도 찍었다. 다분히 상업성을 염두에 두고 장미를 대상으로 ‘아름다움’이라는 현상 자체에만 주목했다. 그 이전에는 도자기의 굴곡을 담은 여체의 뒷모습을 찍으며 도자기 형상의 본질을 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진에서 중요한 것으로 ‘디테일’을 꼽았다. “기술은 중요치 않다. 어떤 이미지를 무엇으로 찍느냐의 문제다. 나는 디테일이 살아있는 사진을 추구한다. 이런 사진은 사이즈가 큰 필름으로 찍어야 한다.”

이번 전시는 ‘초·충·도’라는 주제에 ‘익(翼-날개), 허(虛-비다), 궁(宮-집)’이라는 의미를 부가했다. 더 개념적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다. ‘익(翼)’은 꿈, 목표에 관한 이야기이며 잠자리 날개에 비유했다. ‘허(虛)’는 본질이 빠져 나온 그 자체의 존재, 즉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허물을 벗은 곤충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궁’은 곡옥 모양의 애벌레로 태아를 형상화했다.

“실재와 개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그것에 부합하는 사진을 얻기 위해 제목부터 짓고 그 제목에 맞게 대상을 정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래야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고화질로 된 좋은 이미지를 수집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전시는 30일까지. 053-651-6958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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