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까지 봉산문화회관 홍명섭展
9월 10일까지 봉산문화회관 홍명섭展
  • 대구신문
  • 승인 2017.07.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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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슬리퍼 신고 벽면의 선을 만질 때

일상 속 사물, 흑백·수평선으로 단순화

철길은 선, 슬리퍼는 무쇠 슬리퍼 변신

관람객은 익숙한 대상이 낯설어질수도

“편안함에 불편 더해 감각·사유 확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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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섭


폭 5㎝의 2가닥 검정색 선이 4가닥으로 분열하는 지점에서 홍명섭이 작품설명을 시작하자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사진 한 두 장 찍으려던 것이다. 하지만 그 짧은 2~3분 동안 일이 커졌다. 흥분지수가 급상승하면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 것. 지켜보던 누군가가 “스토커 같다”고 한마디 했다. 거슬렸던 모양이다.

순간 “뭔가 있다”는 감이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는 바로 이전 시점으로 기억을 되돌렸다. 처음 피사체로 잡으려고 한 대상은 홍명섭. 하지만 카메라 렌즈에는 보다 복합적인 풍경이 잡혔다. 홍명섭이 2가닥에서 4가닥으로 분열하는 수평선 앞에서 수직으로 서 있었던 것. 홍명섭의 몸이 작품에 개입하면서 작품에 심어놓은 분열이라는 장치에 수직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추가됐고, 이 두 개념이 ‘불안정함’ 또는 ‘불편함’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선을 툭 친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홍명섭이 작품에서 기대하는 바다.

“불편해야 ‘왜 불편한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해소하기 위해 저항한다. 새로운 것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나온다. 그것은 곧 지평의 확장이다. 예술도 다르지 않다.”

최근 시작한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 홍명섭전에는 대륙횡단 열차같은 4개의 벽면에 이어진 선 외에도 ‘무쇠 슬리퍼’ 수십 켤레가 바닥에 놓여져 있다. 관람자는 벽면의 드로잉 선을 만져보고 선을 따라 걸어 볼 수 있고, ‘무쇠 슬리퍼’를 신고 중력의 저항을 감지하며 시간과 몸이 결합된 걷기라는 신체행위를 수행할 수 있다. 이 행위는 걸음걸이의 감각, 호흡과 속도, 중력에의 저항 등의 외부적 요소들을 작품에 부가한다. 작가는 이 지점에 작품이 의도하는 바가 있다고 했다. ‘사유’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몸으로 만지고 포옹하면서 서로를 느끼듯이, 예술도 몸으로 체험하며 누려야 한다. 그러면서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사유하게 된다. 신체적 행위는 사유와 연결될 여지가 크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머리는 이성, 몸은 본능이다. 본능은 단순명료하고, 이성은 복잡다단하다. 홍명섭 작품의 시각적 외형도 단순하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사물들을 흑백의 명암이나 수평선의 분열과 통합 등의 대비를 통해 담백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가 단순명료와 신체행위의 상관관계를 언급했다.

“철길 이미지는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던 어린시절에서 왔다. 일상 가까이 있는 대상을 활용하는 것은 편함과 관계있다. 편함에 약간의 불편한 장치를 가미해 의식을 건드리면 의외로 효과는 커진다. 복잡한것은 단순한 것만큼 의식을 확 잡아끌지 않는다.”

홍명섭 예술의 종착지에는 ‘불화’가 있다. 시각적 형상에 신체적 체험과 시간과 공간이 개입함으로써 사물과 세계에 대한 인식이 총체적으로 해체되고, 사물의 질서정연한 의미들이 교란돼 종국에는 ‘불화(不和)’하는 것. 그가 “예술 확장의 충만감”을 언급했다.

“예술은 고정돼 있고, 인간의 감수성은 변화무쌍하다. 이 둘은 서로 불화(不和)다. 하지만 불화는 예술 확장의 모티브다. 우리는 ‘저항’과 ‘불편함’으로 대변되는 ‘불화’를 자양분으로 자기동일성를 깨고 감각과 사유의 틀을 확장한다. 그 발화지점이 불화고 그 도달점이 ‘확장’이다.”

홍명섭은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서울·오사카·독일 등에서 30여 차례 개인전을 가졌다. 한성대 미대 교수를 역임했다. 9월10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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