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적이고 화려한 도안 입문 4년만 입소문 인기
독창적이고 화려한 도안 입문 4년만 입소문 인기
  • 대구신문
  • 승인 2017.08.02 08:3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문시장 자수연구소 사장 권 미 순

10년 그림 이력 도안 제작 영향

화폭같은 작품세계로 관심 집중

30년 경력 전문가도 제자 자처

자수 활용 옷·가방 제작 도전

프랑스 자수 저변 확대 나서

수백 개의 점포가 질서 정연하게 늘어선 서문시장 2지구 3층. 그 중에서도 가장 외진 곳인 655호에 프랑스 자수 전문가 권미순의 자수연구소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는 수많은 점포들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 중에서 그녀의 자수샵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살피는 이들이 더러 있다. 구석에 꽁꽁 숨어 있어도 예리한 촉으로 명품을 단박에 낚아채는 일명 자수 고수들이다.

이들 고수들은 연구소에 진열된 자수를 활용해 만든 옷이나 가방, 장신구 등을 꼼꼼히 살피며 말을 아끼다가도, 교본으로 쓰는 스티치북 도안 앞에 이르면 참았던 감탄사를 쏟아내기 바쁘다. “이처럼 아름다운 도안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며 도안 하나 하나를 눈 속에 오롯이 담아가려는 듯 좀처럼 자리를 떠날 줄을 모른다. 전직 한국무용가였다는 수강생 중 한명이 “ 전국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도안”이라고 말을 거들었다.
서문시장 프랑스자수서문시장 프랑스자수5
권미순씨의 프랑스자수 스티치. 전영호기자

일반인에게 생소할 수 있는 프랑스 자수는 중세시대부터 프랑스에서 발달한 서양자수의 하나다. 장식품은 물론 손수건이나 가방, 의복, 침구류 등 실용적인 물품을 꾸미는 용도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색을 다채롭게 사용하고 재료도 다양하게 활용한다는 점이 한국전통자수와 차별화 지점이다. 화려하다는 특징이 현대인의 기호와 맞아떨어져 현재 국내에서 프랑스 자수를 취미로 하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권미순, 그녀는 프랑스 자수 전문가다. 색감과 도안에서 권미순만의 풍을 형성해가고 있고, 자수 꽤나 했다는 30년 경력의 전문가도 그녀 앞에서는 꼬리를 내릴 만큼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프랑스 자수에 입문한 것은 겨우 4년 남짓.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고 경지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평생의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 정설인데, 4년 남짓의 짧은 시간으로 독보적인 경지를 넘본다는 것은 정설을 깨도 한참을 깬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안 구성과 색의 조화가 프랑스 자수의 꽃이다. 권미순의 자수세계가 하나의 화폭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아마 그림을 그린 영향이 아닌가 싶다. 그림을 그릴 때부터 색을 쓰는데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자수에서도 그런 재능이 도움이 많이 된다.”

권미순은 경북 봉화의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여 화가가 되라는 소리를 곧잘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산골에서 그림 스승을 만날 수도, 미술대학 진학을 꿈 꿀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애당초에 화가의 꿈은 접었다. 하지만 결국 그림과 인연을 맺었다. 결혼을 하고 여유가 생기자 김광배 선생에게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 한참이나 늦은 도전이었지만 그림 배우기는 일종의 한풀이였다.

김광배 선생의 문하에서 2년 정도 그림을 배우다 대구시전에 작품을 출품해 당선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10년은 족히 해도 당선 한번 될까 말까 하는 사정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였다. 10여년을 그렸지만 결국 붓을 놓았다.

“문화센터에서 김광배 선생님을 만났지만 선생님 밑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어 화실로 옮겨 그림을 배웠고, 그렇게 시작해 10년을 그렸다.”

붓을 꺾은 것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혼자서 가정살림을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닥쳤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림으로 먹고 살 환경은 허락되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다.

어느날 교회에서 간절하게 기도를 하던 중 계시 같은 것을 받았다. 섬광처럼 무엇인가가 머리를 스쳤는데, 프랑스 자수였다.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고, 의식에 두어 본 적도 없는 자수가 왜 떠올랐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다. “아마도 신께서 제게 주신 선물이 아닌가 싶다.”

자수의 기초만 배웠다. 그것도 독학으로…사실 자수라는 것이 바느질 아닌가. 바느질 기법은 기본만 익히면 나머지는 응용하면 된다. 타고난 손재주 덕에 바느질 기초는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지만, 문제는 도안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특유의 자신감이 발휘됐고, 거침없이 그녀만의 도안을 미술 작품을 그리듯 하나씩 토해내기 시작했다.

도안이 하나씩 세상에 나오자 반응은 실시간으로, 그것도 드라마틱하게 왔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유명 디자이너가 그녀의 도안을 인터넷에서 보고 색감이 너무나 뛰어나다며 배우기를 자청했고, 30년 자수 전문가도 기꺼이 제자가 되고자 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반응은 권미순 마저 당황스럽게 했다.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데 의외였고, ‘이게 뭐지?’ 하는 의문까지 들게 했다.”

사실 프랑스 자수는 기법이 다양하고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나 권미순의 자수는 변화가 다욱 무궁무진하다. 색감과 오브제 활용도가 뛰어나다. 색감은 그림을 그려서 그렇다 치더라도 오브제를 자수에 차용해 풍성함을 더하는 것은 그녀 특유의 도전정신과 용기의 결과다. 권미순의 자수에 찬사를 보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자수를 시작할 때 우리나라 최고의 프랑스자수 전문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자수가 다 비슷비슷해서 어떻게 해야 남다른 자수를 선보이고 최고가 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다. 그때 도안이 떠올랐다. 얼른 스케치북을 펼쳐 떠오르는 도안을 그려냈다.”

권미순의 도안은 동화적이면서도 순수하다. 크리스마스트리 도안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동경해 마지않았던 상상의 트리를 작품으로 구현해 내고, 시골에서 보아왔던 이름 모를 야생화와 식물들도 재현해 낸다. 특히 다양한 오브제와 두드러지는 입체기법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녀만의 독보성이다. 그 중에서도 방점은 ‘풍경 속 소녀’. 거의 모든 풍경에는 소녀가 등장하는데, 이는 어린 시절 그녀 자신이다.

“어린 시절 가난해서 예쁜 옷을 입지 못했다. 그게 한이어서 도안 속 소녀는 공주처럼 표현한다. 일종의 한풀이다. 내 도안은 내 꿈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비록 녹록치 않지만 꽃길만을 걷고 싶은 내 마음이 그대로 반영됐다. 그래서 동화적이고 순수하다.”

프랑스 자수 역시 돈은 되지 않았다. 고퀄러티를 가지고도 백화점이나 부촌 대신 서문시장에 연구소를 차린 것은 경제적인 여건 때문이다. 비록 현실과 이상이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다고 했다. 돈이 필요할 때가 되면 신기하게도 어디선가 입금이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프랑스 자수는 단 한 번도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을 만큼 강렬하게 그녀를 사로잡고 있고, 천직이 되고 있다.

“유화를 할 때는 그림만 예술인줄 알았는데, 프랑스 자수를 해보니 표현방법만 다를 뿐이지 이것 또한 예술이었다. 비록 돈도 없고, 힘도 없지만 상업성보다 예술성을 추구하고 있다.”

권미순이 뜬금없이 돈키호테를 언급했다. 자신을 돈키호테형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림도 정식으로 전공하지 않았고, 프랑스 자수 역시 독학하다시피 해서 여기까지 왔듯이 살아오는 동안 대책 없이 도전한 일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첫 도전은 조폐공사에 다니던 20대 때였다. 당시 직장 내 중창단 모임이 있었는데 모임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연극은 문외한이었던 그녀가 연출을 맡아 교도소나 고아원 등을 다니며 나눔 공연을 했다. 또 다른 사건은 몇 년 후에 찾아왔다. 조폐공사 근무시절 만든 연극을 본 교회 목사가 성가대 지휘를 맡긴 것이다. 악보도 볼 줄 모르는 그녀에게 성가대 지휘를 맡긴 것. 하지만 이 역시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했고, 그녀는 지금도 성가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제가 어떻게 성가대 지휘를 하고 연극 연출을 맡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제 열정을 본 것 같아요. 열정과 뚝심, 그리고 추진력만 있으면 저 사람이라면 해 낼 것 같다고 판단하신 것 같아요. 저 역시 아무것도 몰랐지만 기도의 힘으로 하나하나 배우며 해 나갔고, 멋지게 해 낼 수 있었어요.”

그녀는 프랑스 자수에서 한 걸음 더 나가 패션 디자인에도 길을 열어두고 있다. 지난해 전주 한옥마을에서 가진 첫 전시의 성원에 힘입어 내년에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데 그 전시회에서 패션쇼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실 그녀는 자수에 머물지 않고 직접 옷과 가방 등을 만들며 종합예술을 실현해오고 있다. 옷감에 맞는 자수 도안을 만들면 그 자수 도안과 매치되는 옷을 디자인한다. 그렇게 디자인한 옷들도 꽤 된다. 전시품으로 걸어놓은 옷을 보고 팔라는 제안도 많이 받는다.

“세계적으로 자수 옷으로 패션쇼를 한 예는 없다. 내가 최초로 그런 쇼를 해보고 싶다. 그런 행사를 통해 프랑스 자수도 알리고 대구에 독특한 프랑스 자수를 하는 권미순이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