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 의미는…지각·경험 관계는… 작품 통해 철학적 질문 던지는 작가 2인
미술·작가 의미는…지각·경험 관계는… 작품 통해 철학적 질문 던지는 작가 2인
  • 대구신문
  • 승인 2017.08.1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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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서·왕웅치의 작품세계

대구예술발전소 ‘아시아, 예술이 묻는다’展에 함께 참여

박창서, 텍스트에 오브제 조합…미술의 확장가능성 제시

왕웅치, 다양한 의미 내포 오브제 변용…인식 전환 계기로
최근 대구예술발전소가 시작한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 19명을 초대한 전시 ‘아시아, 예술이 묻는다’전에 한국출신 박창서와 대만출신 왕웅치도 참여하고 있다. 이 전시는 아시아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탐색하기 위해 기획됐다.

박창서와 왕웅치는 아시아 출신으로 같은 시기 프랑스 학생들을 따돌리고 파리 제1대학 팡데옹 소르본에서 조형예술학으로 예술학 박사 과정에 입학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학위를 취득한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올해 초 왕웅치가 대만에서 박창서 국립대만예술대학 개인전과 특강을 기획했으며, 이번에는 대구에서 함께 전시를 하며 특별한 인연을 쌓아가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활동하며 미술을 바라보는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우정을 쌓아가고 있는 이들 두 젊은 작가의 작품세계를 만나 보았다.

박창서
미술과 작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풀어내는 대구작가 박창서. 박창서 제공

◇ 미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박창서

박창서는 ‘무엇이 미술을 가능하게 하는지’, ‘작가의 조건은 무엇인지’ 등의 창작의 근원이 되는 질문, 즉 ‘본질’에 초점을 맞춘다. ‘본질’이라는 속성은 흡사 블랙홀과도 같아서, 어떤 것이든 시각적 구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관념이든 물질이든, 그 무엇이든...이 때문에 그의 예술을 시각적으로 단순화해 정의 내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본질’이 근원을 녹여내는데 수용 못할 것이 없듯이 그의 시각적 구현 역시 방대하기 때문이다.

“‘진짜 미술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완성된 작품이 진짜인지, 그 속에 담겨진 정신이 진짜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나는 시각적인 것이 나오게 된 바탕, 그 정신이 진짜 미술이 아닐까 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시각적인 완결성보다 작품 제작 과정이나 아이디어를 미술의 핵심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를 개념미술가로 분류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미술사를 매체로 쓰거나 차용한다는 측면에서 후기개념미술 쪽에 가깝다. 한 시대를 지배한 중심사조에 대한 반발의 역사를 미술사로 본다면 단순한 시각적 형상의 변화 이전에 잉태되었던 ‘반발’이라는 정신성이야말로 진정한 미술이라고 보는 태도다.

“미술사는 그 시대의 중심적인 미술사조에 대한 반발로 이어진 역사다.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수많은 미술사조가 출현했다. 미술사에 진짜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이 있다고 봤다.”

박창서는 텍스트를 주로 차용해 미술의 ‘본질’에 접근해왔다. 그는 과거나 현재에 존재했던 텍스트를 다양한 장소나 오브제, 또는 자연환경과 조합하며 재해석한다. 이를 통해 미술의 확장가능성을 제시해왔다. 이때 차용과 재해석, 그리고 재생산의 3단계를 거친다.

“무엇이든 현대미술이 될 수 있다. 작가는 현대미술이 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변화한 미술사조의 무덤인 미술사라는 미술과 가장 직접적인 지점에서 현대미술의 확장가능성을 포착한다.”

이번 전시작도 텍스트를 모티브로 했다. 실제인물인 고 정점식(한국)과 이중생(대만) 화백, 박창서(한국)와 왕웅치(대만) 작가를 주인공으로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텍스트로 차용, 재해석해 놓았다.

고 정점식 화백과 이중생 화백은 한국과 대만에서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동일한 시대를 살았으며,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서양미술을 공부했다. 둘은 유학 후 각자 본국으로 돌아가 화가와 교육자라는 같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각자 속한 나라의 전통과 만나면서 서로 다른 예술세계를 보여주었다. 당시 이 두 예술가가 교류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창서는 작품 속에서 이 둘을 친분관계로 엮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오고갔음직한 서신을 각각의 구조물에 새겨 넣었다. 물론 이는 가상이며, 글을 새기는데는 굳지 않는 윤활유(grease)를 사용했다.

“스펀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색되지만 윤활유로 쓴 글씨는 변하지 않는다. 물질은 변해도 두 분의 예술에 대한 태도나 정신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미술의 역사가 지역별, 시대별, 장르별로 변해왔지만 그 정신은 영원하듯이 말이다. ”

벽면에 설치된 음각된 평면 텍스트의 주인공은 박창서와 왕웅치다. 이들은 한국과 대만에서 태어난 고 정점식, 이중생 화백 이후 세대다. 둘은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 유학했다. 고 정점식, 이중생 화백이 뿌린 씨앗의 결과물이지만 젊은 그들도 두 선배 화백의 궤적을 따라 가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이나 철학이 같은 시대의 예술인들과 조우하면서 서로 성장하고, 그들의 후손이 또 그들의 영향을 받아 계속해서 성장해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압축하면 세대를 이어서 예술이 확장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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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식으로 구성하는 사회의 단면에 드러내며 질문을 던지는 대만 작가 왕웅치. 황인옥기자

◇ 질문 던지며 지성을 일깨우는 왕웅치

바닥에서 천장까지 쌓아올려 기둥처럼 보이는 4개의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맞은편 벽면에는 무지개색에서 무채색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이 담긴, 색채에 집중한 평면 작품이 걸렸다. 대만작가 왕웅치가 작품 설명을 시작했다. “소비재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로부터 시작된 작품”이라고.

작품에 사용된 오브제는 상품을 담는 종이박스다. 박스의 외부 면에는 상품에 대한 정보가 새겨져 있다. 작가는 이 정보를 모두 찢어내는 방식으로 제거했다. 이 때문에 박스 오브제는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보가 사라지고 찢긴 상흔만이 남은 표면에는 회화적인 느낌이 배어있다.

“외부면에 새겨진 정보를 찢어내 쌓아올린 박스기둥은 단순한 오브제일뿐 이전에 어떤 용도로 사용된 박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박스의 정체성, 즉 어떤 상품의 포장지였던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 속에서 세상을 인식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벽면에 설치된 무지개 깃발에서 의도가 보다 명확해진다. 프랑스 유학 이전에 그는 무지개 깃발을 보고 그것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깃발인줄 알지 못했다. 그저 색채가 아름다운 깃발 정도로만 인식했다. 하지만 프랑스 유학 중에 깃발이 가지는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달라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저 무지개라는 미의식적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던 깃발에 정치·사회적 개념을 덧입히고 있었던 것.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는 많지 않다. 우리는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세상을 인식하고 구성한다. 나는 역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덧씌워놓은 정보를 걷어냄으로써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해왔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그의 작품에서 박스는 개별적이면서도 전체로 기능한다. 기둥으로 쌓기 전의 박스는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개체였다. 하지만 기둥의 일부인 오브제로 사용 목적이 변화하면서 전체의 일부로 권위가 하락한다. 하나의 기둥에 사용된 개체로서의 박스 오브제도 쌓여지는 위치에 따라 권력서열이 달라진다. “전체와 개체, 구성방식, 위치 등에 따라서 정체성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한적인 시선의 확장이다.”

예술발전소 전시에 사용된 박스는 예술발전소가 위치한 북성로 공구거리에서 구한 오브제들이다. 산업용 공구나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북성로 공구거리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박스다. 여기에는 ‘현상’과 ‘현상 이전’의 역학관계가 숨어있다.

“처음 내가 수집한 박스에는 북성로라는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정보들을 걷어내고 오브제로 활용하는 순간 북성로과 관계없는 새로운 생산물의 재료로 위치가 달라진다.”

왕웅치는 스스로를 ‘질문자’라고 했다. 세상을 향해 질문을 토해내며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끈다. 정치·사회·도덕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오브제를 활용해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제한적이며 권위적인지를 넌지시 흘리듯 보여준다. 이를 통해 잠자고 있는 지성을 일깨운다.

“예술가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자라고 생각한다. 해석은 보는 이의 몫이다.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싶다.” 전시는 10월 22일까지. 053-430-1227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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