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에서 느껴지는 현대감각…장용주展, 31일까지 DGB갤러리
산수화에서 느껴지는 현대감각…장용주展, 31일까지 DGB갤러리
  • 황인옥
  • 승인 2017.08.1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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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 복사하는 일본 임모에 매료
민화·고구려 고분벽화·초충도…
옛그림 모사 후 스크래치 하는 등
전통미술과 현대미술 만남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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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차용과 다양한 기법의 변주로 전통산수화와 현대인과의 소통을 추구하는 장용주 개인전이 DGB갤러리에서 31일까지 열리고 있다.

원본을 그대로 옮겨 그리는 모사(模寫), 다른 말로 임모(臨慕)는 화가지망생이 그림의 기초를 배우기 위해 고전이나 유명 작가의 작품을 따라 그리는, 급이 낮은 그리기 방식이다.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이 원본 대신 모사한 그림을 전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누구도 모사한 그림에 원본의 권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화가 장용주(57) 작품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는 임모(臨慕)다. 임모 전문가가 아니라면 꺼리는 임모를 과감하게 작품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이 무슨 자신감? 그녀는 “전통산수화의 정신을 가져오면서 현대적 미감으로 녹여내는 방식으로 ‘임모’를 활용했다”고 간명하게 설명했다.

장용주와 임모는 인연이 깊다.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대학원 동앙화과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예술대학 미술교육과 연구생 과정에 들어가면서 임모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일본어가 원활하지 못해 이론 강좌는 듣지 않겠다고 학교 측에 통보하고, 그 대응책으로 일본식 임모에 몰입했다.

“그림을 보고 그대로 재현하는 우리나라의 임모와 달리 일본의 임모는 바닥에 실재 사이즈로 프린트한 사본을 밑에 깔고 그대로 베껴 그리는 완벽한 복사의 개념이었다. 일본식 임모는 너무 기술적이고 우리나라 임모는 그래도 임모하는 이의 정신이 스며들 여지가 있다는 차이를 알게 됐다.”

고전 작품을 차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두 번째 개인전 때인 96년부터다. 그녀는 두번째 개인전 일정을 잡아놓고 고민에 빠졌다. 전통회화에 집중해오다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작품 활동에 뜸한 시기를 지난 직후 다시 붓을 잡으니 경력단절과 비슷한 위기가 찾아온 것.

그 즈음 서울 용산 국립박물관 역사관에 전시할 고전 작품 모사 의뢰가 들어왔고, 같은 해 춘천박물관에서도 모사 의뢰가 들어왔다.

“그 시기에 공교롭게도 국내에서 개인전과 미국에서의 첫 전시가 잡혔다. 그때 ‘과연 내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임모가 떠올랐다. 일본에서 임모에 몰입했고, 귀국해서도 상업적인 임모를 하지 않았던가? ‘임모’는 이미 내 일부가 돼 있었다.”

고전 차용은 타인의 창작물이라는 제한적 요소를 태생적으로 담고 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그녀의 대한은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실험성’이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 정선의 산수도, 민화, 고구려 벽화 등의 고전을 차용하되, 하나의 방식을 고집하기보다 도전에 가까울 만큼 새로운 기법에 탐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 대표 기법들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민화의 일부를 차용하면서 바탕을 커피와 아교를 섞어 빛바랜 느낌을 살리거나 그림 위에 에폭시를 바르고 그 위에 스크래치를 가하고 다시 에폭시를 바르고 스크래치를 가하는 과정을 반복한 에폭시 패널 스크래치, 압축알루미늄판에 스크래치로 산수화를 그리거나 고전을 재해석한 산수화에 오브제를 덧붙이는 방식 등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변하지 않는 전통의 정신이 담겨 있었다.

“장지에 밑그림을 그린 후 아크릴로 액자를 하고 그 아크릴판 표면을 전동드릴로 흠집을 내는 스크래치 기법으로 그린 작품에 빛을 쏘이면 그림자가 투영된다. 동양사상 중 하나인 ‘허’와 ‘실’이 기법 속에 녹아 있다.”

현대는 수묵화나 산수화를 옛 방식 그대로 그리지 않는다. 이 방식이 진부하다는 편견의 시간들을 거쳐온 탓이다. 하지만 장용주는 80년대 수묵화운동이 한창인 시대와 90년대 서예대전시대 등 비교적 분위기가 호위적일 때 이미 전통산수화와 현대미술과의 조우 가능성을 모색했다. 지금이야 수묵산수화의 현대적 재해석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지만 당시에는 한참 앞서나간 시도였다.

“일찍부터 서양의 재료로 동양의 정신을 담아내는 것을 나의 길로 삼아왔다. 그러한 시도가 오래 됐지만 여전히 다양한 실험성으로 그 가치를 구현해 가고 있다.” 전시는 31일까지 DGB갤러리(대구 북구 옥산로). 010-3555-3081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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