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휘영의 야생화 편지>평생 만날 수 없는 꽃과 잎…사무치는 그리움이여
<송휘영의 야생화 편지>평생 만날 수 없는 꽃과 잎…사무치는 그리움이여
  • 황인옥
  • 승인 2017.10.11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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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꽃무릇과 상사화
꽃 핀 모습 꼭 닮았지만 다른 꽃
꽃무릇, 꽃 진 후 잎 돋아나고
상사화는 잎 진 자리에 꽃 펴
같은 수선화과지만 생태 차이 분명
두 꽃 다 사찰 인근 자생 이유는
꽃무릇 뿌리 방부효과…탱화에 사용
상사화엔 전분…서화류 배접에 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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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무릇은 외떡잎식물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9월 중순경에서 9월 말경까지 피는 진한 붉은 꽃이다. 사진은 선운사 입구에 핀 꽃무릇.

#꽃무릇

해마다 9월이면 고창 선운사의 도솔천을 따라 붉은 꽃무리가 융단처럼 수놓는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순결한 사랑’, ‘아픈 사랑’ 등의 꽃말을 지닌 꽃무릇이다. 외떡잎식물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9월 중순경에서 9월 말경까지 진한 붉은 색의 꽃대가 불쑥 올라와 산사의 길섶을 온통 빨갛게 물들인다. 그 색채가 너무나 강렬하고 지나치는 길손들의 눈길을 빼앗을 만큼 매혹적인 꽃이다. 특히 선운사 입구부터 도솔천을 따라 붉게 물들이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그 이상이라 할 만큼 환상적이다.

학명은 Lycoris radiata이며 석산(石蒜)이라는 이칭을 갖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절기의 피안(彼岸) 무렵에 피는 꽃이라 하여 피안화(彼岸花), 중국에서는 만주사화(曼珠沙華)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red spider lily라 한다. 원산지는 일본 혹은 중국이라고 일컫는데 중국이 원산지라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언제쯤 전해졌는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중국에서 전래되었거나,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것이 일본을 경유하여 한국에 왔을 가능성도 있다.

9월 중순이 되면 어느 날 갑자기 꽃대가 불쑥 올라와서 꽃을 피우지만 잎은 꽃이 지고 난 다음에 돋아나 이듬해 늦은 봄까지 무성하다가 지고 만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하여 일부에서는 ‘상사화’라고도 부른다. 상사화란 ‘화엽불상견 상사화(花葉不相見 相思花)’에서 나온 말로 ‘꽃과 잎은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그러나 꽃무릇은 8월 중순에서 하순에 걸쳐 피는 상사화와는 같은 수선화과의 꽃이기는 하나 다른 꽃이다. 꽃무릇은 꽃이 먼저 피고 꽃 지고 난 자리에 잎이 돋아나는 반면, 상사화는 봄에 잎이 먼저 돋아나고 늦여름이면 잎이 진 자리에 꽃대가 올라와 핑크빛 꽃이 피어난다. 아무튼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같은 상사화류의 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가을의 계절에 가련하고 아주 강렬한 정렬처럼 피는 꽃무릇은 일본에서는 ‘열정’, ‘재회’, ‘슬픈 추억’, ‘생각은 당신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림’ 등의 꽃말이 붙어 있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하여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이 꽃무릇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어느 깊은 산속 한 암자에서 스님 한 분이 수행에 정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스님이 수행하고 있는 옆방에는 불치의 병을 고치러 온 아리따운 여인이 머물고 있었다. 스님은 가련한 그 여인을 위해 정성껏 기도했다. 그 기도 덕분인지 그 여인의 병은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그러나 가부좌를 틀고 수행에 정진하고 있는 스님은 도무지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불현듯 바랑을 짊어지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스님이 절을 떠나버리자 여인의 병은 다시 깊어져 위중해졌다. 스님은 그 소식을 듣고 그 여인을 가엽게 여겨 암자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내달았다. 그러나 먼 길을 돌아오는 사이에 여러 날이 지난지라 그 여인은 그만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후에 여인이 숨을 거둔 방의 앞뜰에 처음 보는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사람들은 이 꽃이 바로 여인의 죽은 넋이라고 입을 모았다. 스님은 때늦은 걸음을 한탄하며 속절 없는 그리움에 애를 태우다가 죽어갔다고 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꽃무릇 혹은 상사화에 비유하여 읊은 시도 많이 볼 수 있다.

너무도 당신을 사랑하기에/ 울컥 나 혼자 터지고 말았네// 당신은 그저/ 귀를 막으라/ 입을 다물라 하지만// 꽃잎 떨어져/ 가고 없으면/ 그제야 내 맘 아실까// 비켜서면/ 만날 수 없는/ 그대와 나/ 슬픈 사랑이여 (꽃무릇 / 이해랑)

우리나라의 꽃무릇은 유독 사찰에 많다. 독성이 강한 꽃무릇의 뿌리에 방부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탱화를 그릴 때 말린 구근을 찧어 바르면 좀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전라도의 사찰에 유달리 많다. 우리나라 꽃무릇의 3대 서식지로 꼽히는 것이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로 모두 전라도 지방이다. 그 외에도 이쪽 지방의 사찰 부근에서는 초가을이면 쉽게 꽃무릇을 볼 수 있다. 세 곳 모두 9월말경이면 꽃무릇축제를 열고 있다. 그런데 영광 불갑사의 경우 ‘상사화 축제’라고 부르고 있는데 일부 식물학자나 야생화꾼이 지적을 한 모양이다. 그곳의 홍보리플릿이나 안내 표지판 등을 보면 같은 상사화계열의 꽃이니 꽃무릇도 상사화의 일종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불갑사 경내를 붉은 양탄자처럼 수놓고 있는 것은 상사화가 아닌 꽃무릇이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상사화류(백합목 수선화과 Lycoris속)의 꽃으로는 꽃무릇과 상사화 이외에도 백양꽃, 노랑상사화, 개상사화, 흰상사화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백양꽃은 꽃모양이 상사화와 비슷하나 꽃의 크기는 상사화와 꽃무릇의 중간 정도이고 꽃대의 키는 꽃무릇과 비슷하거나 조금 크다. 이는 우리나라 고유종으로 알려진 꽃으로 전남 장성군 백양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백양꽃이라 한다. 노랑상사화는 꽃무릇과 꽃모양 및 크기가 흡사하지만 꽃의 색깔이 다르고 호남지방의 사찰에 주로 서식한다. 같은 형태의 흰색 계열의 흰상사화는 전라남도와 제주도 등지에 분포한다. 그에 비해 상사화와 개상사화는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사찰이나 서원 등의 뜰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백양꽃, 노랑상사화, 개상사화는 상사화와 같은 8월 하순 무렵에 개화하고 꽃무릇과 흰상사화는 9월 중순~하순 경에 개화하는 것이 다르다.

필자가 일본에서 유학할 때, 가끔 교토 오하라(大原)의 전원으로 나서면 가을걷이가 한창인 논두렁에 선홍색의 붉은 꽃무릇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가을 수확이 끝난 논두렁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만들어온 도시락을 먹으며 가을 공기를 마시고 있노라면 논두렁마다 피어난 꽃무릇이 정취를 더해주었다. 그때는 일본의 여느 농촌에서도 가을날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꽃무릇의 구근에는 독성이 강하여 쥐나 두더지, 해충의 구제를 위해 언제부턴가 논두렁이나 밭두렁에다가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독이 있는 작물이었기 때문에 농산물이 아니라서 세금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구황작물로 논두렁, 묘지 근처 등에 재배하였다. 그렇지만 요염하리만치 붉은 색을 싫어하여 민가의 가정에서 키우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최근 들어 서양에서는 이 꽃무릇을 관상용으로 개량하여 보급하고 있다고 한다.
#상사화

어쨌든 이런 상사화류는 잎과 꽃이 한평생 만나질 못한다는 애절함이 있다. 언제나 그리워하면서 홀로 지낸다 하여 상사화라 하지 않았던가. 잎이 말라 죽은 뒤에야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우고, 꽃이 피기는 하지만 열매는 맺지 못한다. 그래서 상사화(Lycoris squamigera)는 이별초(離別草), 석산(石蒜), 환금화(換錦花)라 하기도 하고 홀로 살아야 하는 스님들의 신세라 해 중무릇, 또는 중꽃, 개난초라고도 부른다. 이른 봄 가장 일찍 언 땅을 녹이며 노란 싹이 돋아난다. 그 싹이 무성히 자라다 6∼7월이면 갑자기 시들어 죽는다. 싹이 났던 자리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흔적도 없어졌다가 서늘한 바람이 부는 8∼9월이면 꽃대가 솟아오른다. 60cm가량 자라면 끝에 연보라색 꽃이 5∼8개씩 뭉쳐서 핀다. 우리나라 큰 사찰이나 서원의 군데군데 넓은 공터, 그늘진 곳에 무리지어 핀 상사화 군락을 보면 10년 묵은 체증이 가시는 듯 현란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애잔함을 떨치지 못한다.

핑크빛의 상사화는 전국의 사찰 곳곳에서 볼 수 있듯이 절에 많이 심는 것은 중꽃이기 때문도 아니고 정원을 가꾸기 위한 관상용도 아니었다. 실은 상사화 인경(구근)에서 전분을 뽑기 위해서이다. 인경을 갈아 전분을 만들고 이것으로 풀을 쑤어 귀중한 서화류를 배접하는데 썼다고 한다. 각종 탱화나 불경 고승들의 영정 등을 제작하는데 상사화는 빠져서는 안 되는 귀중한 재료였다. 상사화 전분 풀로 표구를 하면 좀이 슬지 않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경에서 뽑은 전분은 제조과정에서 물에 많이 우려내면 독성이 사라진다고 한다. 기근에 허덕이던 시절에 이 전분으로 국수나 수제비 혹은 전을 부쳐 먹었던 구황식물로 활용되기도 했다. 잎이 쓰러져 말라갈 때 쯤 인경을 캐서 잘게 썰어 약재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독성이 강한 편이어서 해열작용이 있다. 인경의 리코린 성분은 기관지 점막의 분비기능 활성화로 거담작용을 촉진시킨다. 말초혈관을 확장시켜 열을 내리게 하는 효능이 있다. 따라서 급성기관지염이나폐결핵, 심장병의 치료에도 쓰인다고 한다. 상사화 인경의 알칼로이드 성분은 항암 효과가 높아 최근 중국 의학원에서 암치료제를 개발해 냈고 또 다른 치료제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잎이나 인경을 짓찧어 젖앓이 부위에 붙이거나 근육통 부위에 마사지를 하면 곧 낫는다.

꽃무릇과는 달리 전국의 절간에서 볼 수 있는 상사화는 전분, 탱화, 약재, 구황식물 등 실용적 측면에서 도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이야기가 꽃무릇에도 적용되어 회자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꽃무릇의 전래는 유독 호남지방의 사찰에서 많이 서식하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 혹은 일제강점기에 다른 역사적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홀로 가슴가득 찬란한 정렬과 사랑과 그리움을 불태우는 여인의 정념보다 더 뜨거운 것 같아 보는 이의 마음마저 아리게 한다.

한 몸 속에서 피어도/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무덤가에 군락을 이룬다// 당신이 죽고 난 뒤/ 핏줄이 푸른 이유를 알 것 같다/ 초가을/ 당신의 무덤가에 석산꽃이 가득 피어 있다/ -나는 핏줄처럼/ 당신의 몸에서 나온 잎사귀// 죽어서도 당신은 붉디붉은 잇몸으로 나를 먹여 살린다/ 석산꽃 하염없이 꺾는다/ 꽃다발 만들어주려고/ 꽃이 된 당신을 만나려고 (석산꽃 / 박형준)

◇송휘영 프로필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농업경제학박사(日本 京都大) △동아시아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일본문화학회 부회장 △동북아역사재단, 국립중앙과학관, 독도재단 등 자문위원 △환경법률신문 논설위원 △전)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연구위원 △전) 일본 교토대학 객원연구원 △저서 :일본 향토사료 속의 독도(2014, 선인) 외 20여권
①·②꽃무릇이 핀 모습. ③상사화가 피기 전 꽃봉오리. ④활짝 핀 상사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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