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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미술

희망·고뇌·그리움·인연…인생을 조각하다

기사전송 2017-11-14, 21: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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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28일까지 서울 통인 갤러리 초대전
꼭두인형 만들며 조각 입문
작업하며 불우한 시절 버텨
삶 굴곡 따라 인형 표정 변화
인물조각·꼭두인형 200여점
기억 속 인물·감정·염원 담아
“나무 조각은 자연과의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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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를 근간으로 꼭두를 재해석하며 인간을 탐구하는 조각가 김성수의 전시가 열린다.


조각가 김성수의 작업실인 목유정은 대구와 경북 성주의 경계지점에 있다. 국도변에서 조금 떨어진 인적이 드문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어 한적하다. 오래된 시골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에는 그를 빼닮은 소박하고 정겨운 인물 인형들이 햇살처럼 반짝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꼭두인형을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인형들은 하나같이 작업실 주변의 소박한 풍경들과도 빼다 박았다. 그 중에서 한손에 잡히는 작은 인형 200여점은 갓 구워낸 요리처럼 온기가 따스했다. 15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서울 통인 갤러리 초대전에 출품할 신작들이라고 했다.

“시인 고은 선생이 세계 최초로 사람을 노래한 시로 ‘만인보’라는 시집을 낸 적이 있다. 이번 전시는 ‘만인보’의 조각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만인보’가 고은 시인이 개인적으로 만난 인물들과 사회 운동을 하며 만난 사회적·역사적 인물들을 시로 섰다면, 나 역시 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인형으로 조각해 냈다.”

김성수 조각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꼭두가 있다. 외할머니가 꽃상여를 타고 저 세상으로 떠나던 기억으로부터 꼭두조각가 김성수가 잉태됐다. 꼭두는 망자를 저승으로 평안하게 이끄는 역할을 하는, 상여에 달린 인형이다.

김성수에게 꼭두가 희망의 아이콘이 된 데는 외할머니의 죽음 외에도 어린시절의 병약함도 한몫했다.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술대에 올랐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몇 차례 수술을 반복했고, 병상에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의 학창시절은 암울함으로 점철됐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 해인 11살 때는 상태가 가장 심각해 수술 후 6개월을 각목처럼 누워 지냈다. 그의 꼭두인형들이 하나같이 정면을 응시하며 서 있는 것은 각목처럼 누워 지내야만 했던 어린시절 김성수에 대한 은유와도 같다.

이 시기 꿈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최고조였고, 당시 꼭두인형에 투영한 희망에 대한 기대감은 불우한 시절을 버티는 한 줄기 빛이었다.

“외할머니의 죽음과 아픈 다리로 인한 수술, 그로인한 고통을 겪으며 인간의 한계를 어렴풋하게 느끼게 됐고,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인간이 태어나서 소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왔고 할까? 꼭두는 소멸하는 존재를 붙잡아 두고픈 염원이 응접된 결정체다.”

나무로 인물을 조각한 것은 2000년부터다. 그 이전에는 조소를 주로 했다.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흙 작업보다 몇 번의 톱질과 끌 작업으로 완성되는 나무작업의 간결한 작업과정과 나무 특유의 물성에 끌려 나무조각으로 전환했다.

초기 인물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30대 중반의 작품들이다. 이 시기 그는 세상의 고뇌는 모두 짊어지고 살았다. 김성수만의 예술세계에 대한 고민이 깊었고, 한창 아이들을 양육할 시기여서 가정에 대한 의무감도 부채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 당시 내 고뇌가 인물조각에 그대로 투영됐다. ”

꼭두의 표정이 행복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년 후부터다. 당시 전시요청이 쇄도했고, 작품도 적잖이 팔렸다. 언론에도 집중 조명되었고, 해외에서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조각가 김성수가 꼭두인형으로 김성수만의 작품세계를 형성하자 세상도 그의 예술세계에 찬사를 보내온 것.

세상이 조각가 김성수에 주목하기 시작하자, 고뇌에 찼던 김성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행복감이 그를 감쌌다. 그러면서 꼭두인형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표정과 색채가 밝아지고, 아름다운 꽃과 자유의 상징인 새가 등장했다.

“고령에서 작업하던 시기였는데 대중교통으로 작업실과 집을 오갔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 새벽에 나와서 하루 종일 나무와 씨름했지만 언제 밤이 됐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작업했다. 내 작업이 혼자만의 사투로 끝나지 않고 세상이 반응해 주니 행복했다. 나도 작품도 행복해졌다.”

김성수의 꼭두는 단순한 조각 이상이다. 회화를 그렸던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경험과 조소를 전공하고 철과 비구상을 섭렵했던 대학시기의 경험들이 나무 조각에 응축된다. 인물과 꽃을 조소처럼 붙이기도 하고, 조각을 캔버스 삼아 화려하게 채색도 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나무조각과 좀 다르다. 다양한 장르의 작업방식이 나무조각에 결집된다.”

특히 나무가 주는 물성은 창작열을 건드렸다. 종류에 결과 성질이 달라지는 나무의 특성은 자연의 위대함 앞에 머리를 숙이게 했다. 작가로써 물성에 겸손해지는 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업태도를 겸손하게 가르친 나무의 불확실성은 도전의식에 불을 지피는 또 하나의 기제가 됐다.

나무조각은 자연과 인간의 합작을 요구한다. 자연이 빚은 물성에 작가의 영혼을 싣는 과정이 더해진다. 김성수 역시 나무의 결과 표정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해왔다.

작업은 최소한의 톱질로 형태를 잡고, 간결한 선과 면의 터치로 표정을 완성하는 단계로 진행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작은 크기의 인물조각 170여점과 큰 규모의 꼭두인형 30여점이 소개되는데 인형마다 표정이 살아있다. 그와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이어서 기억 속 잔상이 표정에 담겼고, 그들의 평안에 대한 염원도 유독 깊이 실렸다.

“내 기억속의 그리운 사람들을 끄집어냈다. 어린시절 내 아이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도 있고, 나를 힘들게 한 사람도 있다. 그 모든 사람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그들을 통해 여전히 살아 숨쉬는 꼭두를 보여주고 싶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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