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과 상처…그 위에 피워낸 희망의 꽃
아픔과 상처…그 위에 피워낸 희망의 꽃
  • 대구신문
  • 승인 2017.11.2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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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옥순 ‘이미지와 질료’ 개인전

내달 8일까지 아트스페이스펄

엄마·여성으로서의 恨 등

살아오며 겪었던 고통들

바느질 기법으로 형상화

얼굴·나비·새 등 모티브

상처 딛고 정화·치유 기원

천·물감으로 입체감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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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바느질 기법으로 형상화하며 치유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서옥순의 전시가 12월 8일까지 아트스페이스 펄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 브라운슈바익 미술학교의 몽키비취(Lienhard von Monkiewitsch) 교수가 한국에서 유학 온 서옥순에게 “너의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속내는 자랑스러운 5천년 역사와 문화를 가진 한민족의 후예로써 ‘너만의 정체성을 표현해 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적잖이 당황했다. 지금까지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 몽키비취는 말레비치의 작품을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유학 초기에 고렐라(arwed gorella) 교수를 지도 교수로 3년 동안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그분이 갑자기 별세하셔서 새 지도교수를 찾아야 했다. 원하던 분이 몽키비취 교수였는데, 제자 선발에 굉장히 까다로우셨다.”

이 시기 정체성 찾기가 본격화됐다. 어린시절부터 기억을 더듬었다. ‘나만의 것’이 필요했다. 영감이 번뜩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각인된 어린 시절 호롱불 밑에서 복주머니를 만들어 주었던 할머니와의 추억이 피와 살 속에서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바느질’이었다.

주저 없이 6미터, 3미터짜리 대형저고리를 만들고, 자신의 얼굴을 드로잉했다. 그리고는 바느질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흰 저고리 대신 캔버스에 동일한 작업을 해 봤다. 캔버스는 보관의 문제까지 고려한 선택이었다.

“남편과 함께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세 아이를 낳고 공부도 계속했다. 하루는 세 아이를 재워놓고 캔버스에 밤이 새는 줄 모르고 바늘로 얼굴을 그렸다. 흰 바탕에 까만 색 실로 드로잉을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숨어있던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이 시기 고무신 작업도 병행했다. 할머니의 하얀 고무신을 석고로 떴다. 2년간 자그마치 천 켤레를 제작해 설치작업으로 선보였다. 관람객들로부터 ‘말표’라는 상표의 무늬도 아름답고, 형상도 흡사 배 같기도 하다는 격려를 받았다.

서옥순이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 현재의 언어로 재조합하는 방식은 현재 진행형이다. 할머니와의 기억과 아버지,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겪었던 기억들이 작업의 동력이 된다. 특히 ‘상처’가 포인트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할머니의 기억 못지 않게 중요했다. 할머니가 아름다움으로 회상된다면, 아버지와의 추억은 결이 좀 달랐다. 그녀의 아버지는 첫 딸인 서옥순을 살림밑천으로 생각하셨다. 동생들 뒷바라지 하기를 바랐고, 대학진학도 탐탁지 않아 했다. 세 아이를 양육하며 유학생으로 살았던 시기도 돌아보면 고행이었다.

아버지의 딸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며 가부장적 사회로부터 받은 상처는 내면에 켜켜이 쌓여갔고, 이 ‘상처’가 작업의 관념적 재료로 사용됐다.

“내 작업은 서사적이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작업을 푼다. 기쁨과 희열도 없지 않지만 주로 상처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최근 시작한 아트스페이스 펄전은 서옥순의 변화된 작품세계를 망라한다. 이전까지 평면에 집중했고, 부분적으로 입체적 요소를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입체가 중심이 된다. 작품은 천과 솜을 이용해 형태를 만들고 색을 칠한 후 바느질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평면과 설치 공히 생채기 난 상처를 꿰맨 자욱이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는 ‘상처’라는 주제를 강화하는 핵심 요소다.

“봉합된 상처에 검은 나비나 새가 앉아있다. 이 존재들은 꿈과 희망을 의미한다. 상처는 언젠가 아물고 아픔에도 기쁨의 새살이 돋을 것이다. 존재는 상처를 전재하고 있고, 아픔을 극복함으로써 단단해진다는 메시지가 그 안에 있다.”

전시 제목이 ‘이미지와 질료’다. 여성과 남성의 얼굴과 나비, 새 등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꿈과 희망,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을 표현한다. 여기에 바느질로 들여놓은 입체와 천과 물감이 만나 만드는 질감이 ‘정화’와 ‘치유’라는 정신적 영역으로 확장된다.

“상처와 억압을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이미지로 차용되고, 그것이 희망적 영역으로 치환된다. 작업의 형태는 계속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환원하며 정화를 기원하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전시는 12월 8일까지. 053-651-6958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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