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展…30일까지 갤러리 분도
김지원展…30일까지 갤러리 분도
  • 대구신문
  • 승인 2017.12.0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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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그렸더니 자화상이 되었다

“대상을 계속 관찰하다보면

내 생각이 대상에 투영된다”

총 대신 붓 든 군인 통해

작가로서의 정체성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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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서양화가 김지원이 지난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막스 베커만 (Max Beckmann)의 도록을 보게 됐다. 순간 툭하고 감정선 하나가 미세하게 떨렸다. 도록 마지막 장에 실린 베커만의 뒷모습을 찍은 흑백 사진이 짧지만 강렬하게 마음을 잡아끈 것.

막스 베커만은 1, 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표현주의, 입체주의, 신즉물주의 등 다양한 양식을 넘나들며 독일 미술계를 이끈 인물이다. 1933년 히틀러의 집권과 함께 ‘퇴폐미술가’로 낙인 찍혀 작품을 몰수당하고, 독일을 떠나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김지원이 국내에 입국한 이후에도 독일에서 본 도록 속 베커만의 뒷모습이 잔상으로 맴돌았고, 어느 순간  베커만의 뒷모습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 베커만의 이니셜을 딴 ‘M.B’라는 제목의 연작 9작품은 그렇게 탄생됐다. 이 연작들에는 흑백 대신 칼라로, 표현법이나 수평선·높낮이· 캔버스의 규모 등을 달리해 변화를 주었다. 그 중 8개의 작품이 최근 시작한 갤러리 분도 초대전에 걸렸다.

“수평선, 뒷짐, 등, 포말, 바람, 냄새, 생각 등의 느낌이 실린 그의 뒷모습에서 진중하면서도 묵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한 화가가 보였다. 그것은 화가인 내게 매우 계몽적으로 다가왔다.”

김지원이 동의하든, 하지않든 그를 떠올릴 때 가장 선두에 두는 작품은 ‘맨드라미’ 연작이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대중적인 인기도에서 단연 최고다. 그러나 ‘맨드라미’ 연작의 프레임으로 김지원을 가두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이 연작은 그가 그리는 다양한 ‘풍경’들 중 하나의 지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지원 회화의 본류는 ‘풍경’. 특히 그는 2종류의 서로 다른 풍경을 그린다.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풍경과 바다와 산 등 자연에서 만나는 보다 원초적인 풍경이 대상이다.

“일상 속 풍경은 내가 주체가 되고, 자연풍경은 자연이 주체가 된다. 특히 일상 속 풍경은 내가 속한 사회현상과 맞물리고, 이 경우 부조리함이 주제가 된다. 세상의 대한 부조리함을 작가의 시선에서 농담처럼 발언하는 것이다.”

그가 풍경화를 설명하면서 대뜸 풍경화(風景畵)에 대한 한자부터 풀었다. 그가 지향하는 회화의 방향성이 풍경화라는 단어 속에 숨어 있어 한자풀이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풍경화(風景畵)를 한자 의미는 ‘바람이 있는 경치를 그린 그림’이다. 움직임이 없는 평면회화에 바람을 옮겨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풍경화가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애쓰고 있다. ‘바람을 그리는 것’은 화가 김지원의 평생 화두다.”

그는 연작을 선호한다. 하나의 대상을 정하면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분석해 다양한 크기의 화폭에 담아낸다. 연작이 반복될수록 대상과 주제의 밀도는 깊어진다. 이때 사유와 통찰은 작업을 지탱하는 근간이다. 그는 관찰과 사유 그리고 반복된 그리기를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계몽해간다.

“계속해서 하나의 대상을 관찰하다보면 내 생각이 그 대상에 투영된다. 맨드라미든, 강아지든, 군인이든 내가 오롯이 투영된 대상은 종국에는 나와 동일시 된다. 이런 측면에서 내 그림은 자화상이다. 자화상을 그리면서 끊임없이 화가로써의 나를 계몽해간다.”

김지원작-그림보초
김지원 작 ‘그림보초’.
갤러리 분도 전시제목이 ‘그림보초’다. 군복을 입은 군인이 총 대신 붓을 들고 있는 작품과 팜플렛에 실린 미군부대에서 사격연습용으로 사용한 표적을 주조한 입체 작품의 제목인 ‘그림보초’로부터 차용했다. 이 작품들에는 군인이 나라를 지키듯 그 역시 회화 장르를 묵직하게 지켜가는 가겠다는 작가적 태도가 담겨있다. 풍경 등의 간접적인 대상에서 화가 자신을 직접 형상화하며 보다 능동적인 방식으로 자화상을 담았다.   

“붓을 든 군인이나 수많은 총알이 박힌 사격연습용 표적은 일종의 자화상이다.어떤 날은 그림에 흡족해 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절망이 찾아온다. 고통과 쾌락이 뒤범벅되는 과정이 반복된다. 수많은 총알이 박힌 표적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계속해서 작업해가며 성장해 가고 싶다.”

군 복무 시절 근무했던 전방 포병부대의 벙커를 화폭에 담은 ‘위장’ 연작과 일상에서 만난 ‘풍경’ 연작과 ‘맨드라미’·‘하염없는 물줄기’·‘M.B’ 연작 등을 만나는 전시는 30일까지. 053-426-5615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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