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아픔 감싸안고 희망·위안 전달”
“시대적 아픔 감싸안고 희망·위안 전달”
  • 승인 2017.12.19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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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장준환 감독 인터뷰
기자·경찰·대학생 등 다양한 시선서
박종철 열사·민주항쟁 이야기 풀어내
“현장 있었던 모두가 역사의 한 부분”
김윤석·하정우 등 ‘환상 캐스팅’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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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 CJ E&M 제공

“제가 현실에서 운 적이 거의 없는데, 이 영화를 하면서 자꾸 울어서 민망하네요.”

영화 ‘1987’의 장준환(47) 감독은 최근 본의 아니게 ‘울보 감독’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지난 13일 언론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폭풍 눈물을 흘린 탓이다.

18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장 감독에게 눈물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1987’은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시작으로 6·10 민주항쟁까지 기자, 경찰, 대학생, 교도관 등 각자의 자리에서 양심의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그린다.

2003년 ‘지구를 지켜라’, 2013년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등을 연출한 장 감독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족적인데도 그동안 영화나 다른 문화 매체, 학계에서도 1987년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장 감독이 이 시나리오를 받은 것은 2년 전 겨울. 그때는 지금과 정치·사회적 상황이 달랐다.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 만들어져도 개봉될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였다.

장 감독은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면서 “외부에 알려지면, 창작에 쏟아부어야 할 에너지가 분산되는 걸림돌이 생길까 걱정했다”고 떠올렸다. 당시로써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영화에 기꺼이 뛰어든 이유는 뭘까.

“시나리오 자체가 극적 긴장감이 있었고, 특히 대공수사처 박 처장(김윤석)이라는 안타고니스트(악당)를 등뼈로 놓고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가 재미가 있었죠. 또 제가 아버지가 돼 보니까 아이들한테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됐습니다.”

장 감독은 “이 영화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으면 좋겠다”며 “우리를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보통사람들’이었다. 보통사람들의 양심과 용기, 올바른 선택이 모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이야기이어서다. 그러나 ‘보통사람’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먼저 나오면서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 장 감독은 “그 시대의 시간과 공간이 주인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1987’로 정했다”고 들려줬다.

‘1987’은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박희순, 김태리, 강동원, 여진구 등 ‘환상의 캐스팅’으로도 화제가 됐다. 장 감독은 “저도 어떻게 이런 배우들이 한 작품에 모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상적이었다”면서 “각자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시나리오를 보고, 동참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각 캐릭터에 골고루 애정을 쏟으며 분량을 할애했다. 특히 이 작품의 중심축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악역인 박 처장도 무작정 악인으로 그리지만은 않는다. 평안남도 지주 집안 출신으로 6·25 때 월남한 박 처장은 자신이 겪은 고초 때문에 ‘빨갱이’라면 치를 떠는 인물로 나온다.

“그분들 역시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고, 전쟁을 겪은 세대죠. 그리고 이념 갈등의 피해를 본 분들이어서 이런 인물의 히스토리까지 보듬어 안으면 영화가 더 단단해질 거로 생각했죠.”

강동원은 ‘잘생긴 남학생’으로 등장해 87학번 신입생 김태리와 인연을 맺는다. 다큐멘터리 같은 이 작품에 영화적 상상력을 불어넣은 부분이다. 장 감독은 “관객들에게 일종의 선물과 같은 장치로 마련했다”고 귀띔했다.

영화를 찍는 동안 시국이 바뀌었다. 광화문 촛불시위가 일었고, 정권이 교체됐다. “우리나라 국민이 진짜 무섭다는 생각을 했죠. 1987년을 몰랐던 젊은 세대들이 현실로 광장을 목도했으니, 이 영화에 힘을 줄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장 감독의 아내이자 배우 겸 감독인 문소리도 힘을 보탰다. 문소리는 대학생 집회 장면을 조율했다. 또 ‘호헌철폐’를 외치는 확성기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잠깐 등장했다. “(아내가) 촬영현장에 와서 시위 장면을 직접 지도해줬습니다. 스크럼을 짜는 방법, 리듬을 타는 방법 등등요. 워낙 설명을 잘해주니까 (지도를 받고) 학생들의 움직임도 달라지더라고요.”

‘1987’은 실화 자체가 주는 감동이 크지만, 이런 부분은 영화 흥행에 약이자, 걸림돌이기도 하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세대들은 아직 심리적 부담이 남아있어서다.

장 감독은 “너무 슬프고 힘든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순수하고 뜨거운 사람이었지.’ 하며 되새김질하고 희망과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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