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욱 ‘풍경표현’展…대구미술관 31일까지
차현욱 ‘풍경표현’展…대구미술관 31일까지
  • 대구신문
  • 승인 2017.12.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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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처럼 쓴 먹…동양적 물성·서양식 표현력 결합

풍경에 상상 가미…각기 다른 붓터치로 이야기 표현

“같은 풍경 봐도 감정 모두 달라, 객관도 주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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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욱 전시 작품.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에 한복을 입고 말을 타는 서양 배우들이 등장한다면? 대구미술관 ‘풍경표현’전과 서울 자하미술관에 출품한 차현욱의 신작이 그런 느낌이었다. 지극히 서양적인 전개 방식과 표현법에 충실하면서 한지와 먹을 캔버스와 물감대신 사용했다. 물성에서 동양성을 확보한 것. 이러한 동서양의 극적 대비는 몽환적인 초현실성을 만나면서 한껏 물오른 상상력으로 연결되고 있다. “표현법과 기법에서 좀 더 자유로워 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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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욱
차현욱은 산 풍경을 한지와 먹으로 표현해왔다. 초기에는 국내 산을 작가적 재해석을 가미해 추상성으로 드러냈다.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선과 면으로 압축한 것. 2014년 히말라야 트래킹 이후에는 히말라야의 산맥들로 대상을 바꾸고, 선과 붓 터치도 강렬하게 변했다.

산풍경에서 일상풍경으로 변화한 이번 신작은 단순한 시각적 변화 이상이다. 인식 체계를 통째로 바꾸는 일종의 패러다임의 변화다. ‘풍경’을 작가적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주제적 연속성은 동일하게 적용하지만, 대상에서 일대 변화를 모색한 것.

“‘산’ 풍경에서 제 주변의 ‘일상 풍경’으로 소재를 바꿨어요. 작가가 개입되지 않는 객관적인 풍경에서 작가의 개입이 일상으로 일어나는 주관적인 풍경으로의 변화죠. 현재의 내 상황이 작업으로 옮겨왔으니 큰 변화겠죠.”

주변 환경을 그린 첫 작품은 ‘집으로 가는 길’이다. 지난해 늦은 밤, 작업실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빌라에 딸린 아주 작은 정원풍경이 계기가 됐다. 어두움과 조명 사이에서 드러나고 숨겨지는, 낮과 전혀 다른 풍경에 무한한 상상력이 발동했다. “낮에는 건조했던 정원이 밤에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었죠. 마치 꿈속 풍경 같았죠.”

상상은 시각적이든 관념적이든 스토리다. 차현욱의 밤 풍경에도 상상과 이야기는 중심 줄기다. 그는 작은 풍경들을 하나로 엮어 큰 풍경을 완성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때 작은 풍경들의 붓 터치를 달리하고 사람과 꽃 등의 대상도 더러 등장시킨다. 상상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것. 이로써 기존의 작품보다 스토리적 요소가 획기적으로 강화된다. 작품에 마치 도깨비들이 한 바탕 놀다갔을 것만 같은 이야기가 넘실댄다.

“주위의 흥미로웠던 장소에 내 이야기를 덧씌워 새로운 풍경으로 표현하고 보니 작업이 훨씬 재미있어졌어요. 내 이야기를 하는 재미는 생각보다 쏠쏠하네요.”

밤 풍경은 낮과 다른 드러남과 숨겨짐이 있다. 바로 ‘몽환성’이다. 그는 이를 작업방식에 적극 끌어들인다. 먼저 한지 여백에 물을 바르고, 붓에 먹을 묻힌 다음 물기를 짠다. 그리고 물기 없는 붓으로 한지의 여백을 칠한다. 한지에 스며있는 물과 붓에 남아있는 먹이 만나 보다 따뜻한 봄볕 아지랑이 같은 몽환성이 완성된다.

“‘산풍경’을 할 때는 선이 중요했죠. 그러나 지금은 면의 표현법이 중요해졌고, 그것을 붓과 한지 그리고 물의 관계성으로 풀어냈어요.”

일상에서 만나는 풍경이다. 비슷한 장소에 거주하는 그와 행동반경이 비슷한 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대면했을 풍경이다. 여기까지는 객관적 풍경에 해당된다. 그러나 풍경을 바라본 대상에 따라 느껴지는 감성은 제각각이다. 객관에 주관이 개입되는 것. 이는 이번 작품에서 차현욱이 던지는 질문이다.

“내 주변의 풍경을 대하면서 우리가 객관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게 됐죠. 누구에게나 시각적으로는 똑같은 풍경으로 보여지지만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이잖아요? 그것처럼 ‘우리가 객관이라는 하는 것도 결국 주관이 개입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품었어요.”

동양화를 전공했다고 한지와 먹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채색기법이나 표현법에서 이견없는 서양화다. 단지 한지와 먹의 물성이 철학적 사유를 시각화하기에 안성맞춤이어서 선택했을 뿐이다.

이번 작품은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면서 초월하는 지점에 살짝 발을 얹은 느낌이다. 먹의 우연성을 붓의 물기를 짜내는 방식으로 조금은 먹을 서양물감처럼 조절 가능해졌기 때문.

“저는 동양화의 전통을 계승하지 않아요. 동서양에 구애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죠.” 전시는 대구미술관에서 31일까지, 서울 자하미술관 ‘신몽유도-Drawing after Dreaming’전은 내년 1월 2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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