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익힌 자연, 氣로 그린 풍경화
몸으로 익힌 자연, 氣로 그린 풍경화
  • 황인옥
  • 승인 2018.03.0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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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데갤러리 17일까지 우종택展
사실보다 추상에 가까운 자연
묵직한 선과 몸으로 본질 담아
숯 섞은 먹·지푸라기 붓 제작
서양화 같은 생생한 질감 표현
한국재료·현대미술 접점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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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대상으로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우종택 전시가 보데갤러리에서 17일까지 열린다.

서양의 표현주의가 꿈틀댔다. 두꺼운 재질감으로 역동적으로 지나간 붓자욱과 내면 세계를 표현한 자유분방한 선의 변주가 그랬다. 그러나 주재료는 분명 한지와 먹이다. 그는 한국화에 서양적인 기법을 더해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동서양의 접점 찾기’, 우종택 작업의 방향성이다.

“서양의 자본주의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동양적인 것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어요. 이제는 동양이 나설 때죠. 서양과 동양의 접점 찾기는 시대적인 요구죠.”

그는 풍경화를 그린다. 산과 나무와 동물이 소재다. 영감의 원천 또한 자연이다. 그런데 작품은 추상이다. 자유분방한 선의 변주가 사실적인 풍경화를 대신한다. 그의 ‘선’은 자연에 내재된 근원적인 기운의 시각적 표현이다. 그가 이것 또한 ‘풍경’이라고 했다.

“산을 멀리서 보면 원경의 풍경이 되지만 산 속으로 들어가면 중경, 더 깊숙이 들어가면 근경으로 변하죠. 우리는 이 모두를 풍경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접근하면 자연의 기운 또한 보이지 않지만 분명 풍경이 아닐까요?.”

초기에는 인간을 탐구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맸다. 시장이나 서울역을 다니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만나고 크로키로 남겼다. 인간을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탐구하던 시기였다.

탐구의 대상이 자연으로 변한 것은 작업실을 산 속으로 옮기면서 부터다. 산 속에 작업실을 짓고 농사와 작업을 병행하며 자연에 대한 깨달음이 축적되자 자연의 본질, 나아가 존재의 본질 탐구로까지 확장됐다.

“구속된 삶을 사는 현대인이 겪는 정신적인 고통은 커져가고 있어요.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야 해요. 농사를 지어보면 자연이야말로 우리의 상처난 영혼을 복원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죠.”

그는 스스로 영매자가 된다. 이른 새벽에 산을 산책하며 자연이 뿜어내는 기운을 무당의 접신행위처럼 온 몸으로 받아들인 후 작품으로 표현해낸다. “손이나 눈보다 몸으로 자연의 기운을 익히지요. 제 작품이 몸그림인 이유죠.”

그가 이번에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언급했다. 수천년전에 이미 노자는 도의 바탕으로 무위자연을 지목했다는 것. 노자 시기에 무위자연이 도 닦는 사람들의 철학 정도로 인식됐다면 인위(人爲)로 인한 폐해가 확대되고 있는 현대에 오히려 무위자연이 피부로 와닿는다는 것이다.

그는 자본주의의 본산인 서양조차 노자의 무위자연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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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택 작 ‘memory of origin’. 보데갤러리 제공

우종택은 무위자연의 순수를 그린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본질적인 기운을 그리며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 그리고 균형을 이야기한다. “서양은 사물과 사물 사이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고, 동양은 기운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고 인식했어요. 이제 서양도 동양의 인식체계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 시각으로 할 때가 됐다고 봐요.”

동양과 서양의 소통이 대세다. 우종택은 한국화를 현대미술로 연결지으며 동서양의 소통력을 높인다.

특히 먹과 붓의 재해석을 통해 서양과의 접점을 찾아간다. 전통 먹 대신 숯가루와 백토와 감자전분을 섞은 그만의 먹을 사용하고, 붓도 푸라기나 동물의 털 등으로 새롭게 제작한다. 이를 통해 한지에 강하게 흡수되던 먹의 느낌을 최소화하고 두꺼운 질감 구사도 가능해졌다.

“흙이 가진 두께감과 다양한 재질의 붓으로 표현하면 한국화와 다른 현대성을 확보할 수 있죠. 재료는 변화했지만 한국미술의 특징인 즉흥성은 그대로에요. 동서양의 접점이죠.”

현대성으로 전통미술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그러나 이 현대성의 원류를 찾아가면 전통미술과 만난다고 했다. 절이나 누각의 처마 끝에 달았던 풍경이 서양의 설치작업과 같으며, 책가도는 정물화, 상여놀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퍼포먼스였다는 것. 그는 과거 생활 속에 숨어있던 전통미술의 원류를 찾아내고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현대성을 확보한다.

“제가 어떤 포지션을 가지고 무엇을 이야기할까를 고민해보면 전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할 자신은 없습니다. 오래전 동양의 정신을 재해석하고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움을 발견해 나갈 겁니다.” 전시는 17일까지 보데갤러리. 010-6723-3011 황인옥기자

※ 우종택은 중앙대 예술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보데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독일 뉘른베르크에 있는 보데갤러리 본점에서 개인전을 가지고 큰 호응을 얻았다. 현재 인천대 조형예술학부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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