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밀어넣은 붓질, 추상화로 거듭나다
자아를 밀어넣은 붓질, 추상화로 거듭나다
  • 황인옥
  • 승인 2018.04.2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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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29일까지 박옥이展
설계도 없이 작가 내면의 힘 쏟아
박옥이작-무제
박옥이 작 무제

작품 앞에 서면 미세한 떨림 하나 감지된다. 바람이 훑고 간 자리에 생기는 동심원 파장의 떨림과 흡사하다. 자연의 파동이자 초자연의 신비에 비견할 만하다. 자연을 추상으로 표현한 박옥이의 작품세계다.

작품은 색면추상이다. 수많은 색을 중첩해 추상으로 완결 짓는다. 캔버스를 탐구의 공간으로 삼아 색과 면 그리고 시간을 환원한다. 아크릴과 유화물감을 번갈아 올리며 아래층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탈색되고 변화된 색의 층위로 무한광대대자연의 신비와 우주의 질서를 탐닉한다.

“색면추상은 2013년부터 씨앗을 잉태하다 2016년 개인전을 통해 세상과 본격적으로 만났다.”

설계도는 따로 없다. 중심색만 정하고, 그 색을 바탕에 초벌처럼 깐다. 중간 단계에서 수많은 붓질로 색을 중첩해 올리고, 결말 부분에서 다시 중심 색으로 갈무리한다. 중첩된 붓질은 많은 경우 60회 이상을 넘길 때도 있다. 이때 형태는 완벽한 추상이다. 그녀가 “중간이라고는 없다”고 잘랐다.

“하늘의 별 일 수도 있고, 숲일 수 있고, 회오리 바람일수 있다. 이때 전체보다 한 부분을 클로즈업하고, 클로즈업한 형태는 전체 덩어리 정도로 개괄한다.”

설계도가 없듯 작업의 방향성도 작품 시작 초기에는 위용을 갖추지 못한다. 색을 올리면서 형태적인 방향성이 윤곽을 드러낸다. 작품도 자식과 같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때가 있다. 속썩이는 자식에게 애정이 더 가듯 더 몰입해야 한다. 결국 완성해 놓고 시간을 묵혀 바라보면 애먹인 자식이 더 살갑다.

“잘 안 풀려서 찢어 버리고 싶은 작품이 더러 있다. 그럴 경우 포기하지 않고 관심을 더 많이 기울여야 한다. 관심을 기울이면 배신하지 않는다.”

추상은 내면의 발현이다. 내적 토대가 시각적으로 현현한다. 예술가의 천재성의 발현에 추상은 더욱 제격이다. 이때 작가의 직관이 붓을 영매로 화폭에서 우연성과 협공전략을 펼친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추상은 답이 없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극사실주의는 답이 하나로 나와 있다. 그러나 추상은 보는 이에 따라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추상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작업 초기에는 그녀도 극사실주의 풍경이나 꽃을 그렸다. 2011년에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색면추상 Zip에 끌려 색면작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창작이라기보다 모방이었다. 작업이 깊어갈수록 대상과의 감응도 깊어갔고, 그녀만의 화풍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장이었다. 그녀는 이를 “나이테와 같은 현상”이라고 했다. 당시 그녀는 색과 공간의 무한성에 대한 조형적인 암시를 추구했다.

작가는 2014년에 경북 경산의 시골마을로 터전을 옮겼다. 작업실 겸 살림집 마당에는 꽃과 식물들이 눈을 싱그러움으로 이끌고 집 주변의 실개천과 대추밭에는 꽃이 흐드러지고 이름모를 곤충들이 살아있음으로 이끈다. 사실 그녀는 시골 출신이다. 자연을 무시로 보고 살았다. 어린 시절 자연만 보면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했다. 자연앞에서 그녀는 천상 화가였다.

“단일한 색이 지닌 힘을 존중한다. 그 힘은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추상적 숭고함으로 발현된다. 색과 공간의 무한성을 암시하는 조형들은 나의 언어가 되고 몰입으로의 향유가 된다. 그 추상의 매력에 나는 계속해서 빠져 살고 싶다.” 전시는 봉산문화회관 제3전실에서 24일부터 29일까지. 010-8102-4407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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