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극재 정점식...자연주의가 주름잡던 1940년대, 색·대상 단순화 주력
[서영옥이 만난 작가] 극재 정점식...자연주의가 주름잡던 1940년대, 색·대상 단순화 주력
  • 황인옥
  • 승인 2018.05.09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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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두 여인’ 52년 ‘토루소’
전통적 기법 원근·명암법 생략
70년대는 저채도·모호한 형태
20세기 표현주의·초현실주의
동시다발적 다양한 유파 발생
서적 통해 서양미술 흐름 탐독
천경자와 ‘모던아트협회’ 활동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집단 피해
상형전·창작미술가협회 몸 담아
1976_두-여인
정점식 작 ‘두 여인’

모름지기 추억은 회기본능을 자극한다. 첫 인상의 잔상이 종종 현실과 맞닿는 이유이다. 조형예술가들에게 추억은 시각적인 것에서 연유하곤 한다. 필자에게는 꽃잔디가 그렇다. 올해도 어김없이 꽃잔디가 피었다. 5월이면 융단처럼 화단을 뒤덮는 꽃잔디가 10여 년 전만해도 흔치 않았다. 그날 극재 정점식 선생님(이하 극재)의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도 햇볕을 받은 꽃잔디가 소복했다. 드문 꽃빛이 유난히 곱던 집에서 선생은 여느 때처럼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고, 필자를 반겨준 여사님은 도우미분과 함께 달그락 거리며 부엌에서 따끈한 차를 내어왔다. 탁자위에는 신문이 놓여 있었고 원고지와 펜도 준비되어 있었다. 노화백은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클레의 시를 떠올려 읊다가 원고지에 적어주었다. 지난날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때도 극재는 손녀 뻘 되는 어린 제자에게 들려줄 얘기가 많은 할아버지 스승이었다.

극재는 1941년에 전쟁을 피해 중국 하얼빈으로 피난을 떠나 1946년까지 그곳에 체류했다. 해방 이후에는 귀국하여 대구에 정착하고 작업에 매진하였다. 1940~50년대는 한국작가들 대다수가 자연주의적인 화풍을 지탱하고 있었다. 당시엔 19세기 인상파(Impressionism) 화풍이 한국의 1세대 서양화가들의 작품에도 스며들던 때이다. 극재의 1940~50년대 작품은 자연주의에서 신사실주의로 넘어가는 시기로, 자연 대상을 충실하게 묘사하기보다 축약하고 추상화시키는데 주력했다. 1946년 작 <바다풍경>만 보아도 그림의 형식이 현실재현과는 거리가 멀다. 1947년 <두 여인>과 1952년 <토루소>와 같은 작품은 형체가 극도로 단순화되었고 색채 또한 절제되어 단색에 가깝다. 전통적인 원근법과 명암법이 생략되었고 현실재현적인 묘사는 지양했다. 1957년 작인 <실루엣>처럼 당시 극재의 그림은 화면 전체의 톤에 중점을 두거나 기하학적인 면과 공간 분할의 조화로운 표현이 주를 이룬다. 점점 대상을 요약하고 기호화 해 자연을 재현하는데 몰두해 있던 기존의 회화들과는 맥락을 달리하는 추상회화로 화법을 구축해 나아갔다. 극재는 이러한 화법을 고수하면서 외부세계와 내면의 정서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균형을 형상화 했다.

극재의 활동 초기인 20세기 서구 화단에서는 다양한 유파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해나가고 있었다. 마티스, 루오, 블라맹크가 중심이 된 야수파(Fauvism, 1905년~1908년경)는 극도로 단순화 된 원색의 강렬한 색조와 대담한 변형(Deformation)으로 화단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1908~1920년에 걸쳐 혁신적인 미술 운동을 펼친 입체파(Cubism)는 대상을 분해하고 재정비 하는 새로운 기법으로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뭉크, 클레를 주축으로 하는 표현주의(Expressionism)는 극단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했고 에른스트, 샤갈, 달리 등이 가담한 초현실주의(Surrealism)는 꿈과 무의식, 그리고 공상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1908년은 근대 회화에서 순수 추상이 막 태동하기 시작했던 시점이며 형태를 거부한 앵포르멜(Informel)을 비롯해 1960년대 후반에는 미니멀 아트가 등장했다.

다독을 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극재는 이들 다양한 유파들의 동태를 이미 책으로 파악하고 섭렵했다. 그의 첫 번째 수필집에 기록된 잡지는 이런 추측을 뒷받침 한다. 극재의 유품 중에는 수필집에 기록된 책들 이외의 다수의 자료들이 남아있다. “이 잡지의 등속은 미국의 [Art in America], [Art News], 프랑스의 [Rralite], 일본의 [藝術新潮(예술신조)], [Atelier], [美術手岾(미술수점)]따위에 불과하다. 이밖에 내 딴에는 힘을 들여서 입수한 [Skira]를 비롯해서 [講談社(감단사)], [美術出版社(미술출판사)] 등에서 간행한 30여권의 화집(畵集)이 있고,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의 미술에 관한 에세이집이 7.8권, 예술론(藝術論)이 10여권 있을 뿐이다. 이런 책들을 구입할 당초는 나만이 가졌다는 흥분의 승리감을 느껴보기도 했지만 어느 시효를 넘으면 서고는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해방 전 피카소와 동서생활을 회고한 페르낭드 올리비에(Fernande Olivier)의 [피카소와 그의 친구들]이라는 책과 화상(畵商) 칸와일러(Kahnweire)가 쓴 [피카소]는 새 시대의 예술태동과 거장의 생활 일면을 소개한 글로서 내 예술토양 형성에 어떤 영향을 받았다고 하겠다.” (정점식,「아트로포스의 가위」(나의 藏書), 흐름사, 1981년, p.26.) 이미 잡지나 서적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서양미술의 흐름을 탐독한 극재는 다양한 유파의 작품형식과 이념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이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차별화된 자기방식을 모색해나갔다.

지방 작가로는 드물게 ‘모던아트협회’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한 극재는 1958년부터 1963년까지 6년간 한국모던아트협 회원으로 활동했다. 1957년에 한묵, 이규상 등이 창립한 모던아트협회에는 김경, 천경자 등이 멤버였으며 극재는 58년에 가담했다. 당시 극재의 나이 41세였다. 극재는 모던아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당시를 회고하는 인터뷰에서 “중견층이 주축이 된 모던아트협회는 자연을 토대로 한 화풍이었지만 작품에는 6.25동란 이후 맞닥뜨린 혼란기에 바라는 염원이 투영됐다”고 했다. 이때 염원은 작가를 비롯한 동시대인들이 겪는 혼란한 시국의 재정립과 질서 같은 것이다. 당시 극재의 작품이 시도한 비구상회화에는 자연을 질서 있게 재단하려는 의도가 전재되었던 것이다. 극재는 자신이 가담한 모던아트협회 활동이 현대미술을 이끌어오는데 토양이 되었다고 회상했다.

극재는 1963년부터 1970년까지는 ‘신상회’의 일원이었다. 작품 활동 초기에는 국전(國展)-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유는 관전(官前)이 폐쇄적 성향이 강하고 보수주의 집단을 고수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신 재야(在野)에서 극재만의 차별화된 예술적 신념을 피력해 왔다. 극재가 한 때 몸담았던 ‘상형전(相形展)’이나 ‘창작미술가협회’에서의 활동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국전이 개방적 태도를 취하던 70년대 중반에 와서야 비로소 국전추천작가로 위촉된다. 국전 추천작가로 활동하던 70년대 극재의 작품은 대개 갈색과 황토색, 회색이 주조를 이룬다. 이러한 색감은 극재의 작품 전반에 걸쳐 고루 분포되지만 80년대부터 나타나는 강렬한 빨강색은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1970년 작 <무제>와 1971년 작 <모자(母子)>의 배경색인 선홍색은 70년대 이후에 나타는 진빨강에 비하면 저 채도에 가깝다. 또한 1970년~1979년까지의 작품에서도 여전히 형체가 모호한 추상형식이 핵심표현법이다. 토기의 표면에 그려진 듯한 투박한 질감과 졸박한 기교는 고대미술에서와 같은 미적감동보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을 떠올리게 한다. 위대한 기교는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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