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안개 머금은 세죽, 허와 실의 물아일체
새벽안개 머금은 세죽, 허와 실의 물아일체
  • 이혁
  • 승인 2018.05.1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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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서 20일까지 이원동展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 표현
보이지 않는 실상까지 담아내
“진화하지 않는 예술은 소멸
내 시대에 맞는 그림 그려야”
이원동작1
석경 이원동 전시작.

이원동1
서화가 이원동
풍경은 동양과 서양에서 그림의 단골 소재로 선택됐다. 동양에선 산수(山水), 서양에선 풍경(風景)이라 했다. 물론 많은 부분 달랐다. 서양은 보이는 대로, 동양은 관념을 덧씌웠다. 그러나 동서양의 문화가 급속하게 융·복합 되면서 이제는 이분법적 경계가 모호해졌다.

서화가 석경 이원동이 봉산문화회관 전시에서 선보이게 될 세죽(細竹)이 그랬다. 문인화의 사군자 중에서도 기개가 높은 대나무를 그렸지만 문인화와 서양회화의 경계가 모호했다. 그도 동의했다. “보다 회화적”이라고. “선비가 그리던 문인화에서 화가인 나의 그림이 됐다고 할까?”

석경은 해마다 거르지 않고 전시를 한다. 그의 작업 밀도는 농부의 그것과 맞먹는다. 해마다 농부가 농사를 짓듯이 새로운 화풍을 선보인다. 매년 여는 전시는 1년 농사의 결실을 나누는 추수감사절 같은 의식과 다름없다.

말이 그렇지 전통계승이라는 명제를 뿌리에 두어야 하는 문인화로 해마다 작업의 결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가 “예술가는 생산활동이 아닌 예술활동을 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특허출원 같은 똑같은 그림만 그리면 그것이 생산활동과 뭐가 다른가? 그것은 노쇠며, 연명이다. 진화하지 않으면 소멸한다. 예술가는 끊임없는 진화과정을 거치며 자기완성으로 나아간다. 나 역시 늘 고민하고 작품을 연구하며 계속해서 성장해 가고 싶다.”

석경은 글씨와 문인화를 두루 섭렵했다. 서화가로 45년이다. 사군자를 두루 그렸지만 특히 대나무에 강하다. 그러나 뻔한 대나무는 사양한다. 매번 다른 죽(竹)을 선보인다. 최근에는 댓잎과 가지를 대범하게 생략하고도 대나무의 꼿꼿함을 오롯이 드러냈다.

이번 대나무는 또 다르다. 세죽과 새벽안개의 조우로 탄생한 대나무다. 이른 새벽 산에 오르며 마주친 안개 속 대숲이 그의 예술혼을 잡아끌었고, 적당히 비냄새가 묻어나는 바람과 옷이 젖는지도 모를 정도의 안개비가 섞인 상황의 이야기를 그렸다.

“모든 시끄러운 존재가 안개비와 바람에 흩어지고, 오직 나와 대숲과만 만났다. 그 상황이 너무 좋았다. 대나무를 통해 나를 봤다.”

세죽은 자칫 힘이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석경의 세죽에는 절개와 강직함이 오히려 유난하다. 세죽의 푸른 칼칼함에 실린 혼에 서슬이 퍼렇다. 그가 “안개바람에 흔들리는 대숲의 움직임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세죽을 그렸다”고 했다. 안개속에서 흐릿하게 드러나는 대숲의 실루엣을 강하거나 은은한 흐름으로 잡아낸 것.

“안개에 가려졌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도 실상이다. 허와 실이 하나가 돼야 완전한 존재가 된다. 바로 물아일체(物我一體)다. 물(物)과 아(我)가 대등한 관계, 수평적 관계가 되는 상태다. 이번 작품에 그 이야기도 담겼다.”

석경의 문인화에는 그 흔한 화재가 없다. 그림에 관념적인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관념적 문인화보다 석경만의 화풍을 정립하고픈 의지의 포석이다. 그가 “문인화의 획을 그은 석재와 죽농, 천석 선생은 자신의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의 그림을 표현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나는 21세기를 산다. 내 시대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20년, 100년 앞을 내다보는 이원동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상들의 소중한 자산을 바탕으로 하지만 21세기의 문인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대작과 소품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대나무는 소품 그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구석구석 자잘하면서도 힘찬 기운을 대가 정도는 돼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전시는 봉산문화회관에서 15일부터 20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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