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화가 김성석…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풍경, 詩처럼 압축
[서영옥이 만난 작가]화가 김성석…눈을 감아야만 보이는 풍경, 詩처럼 압축
  • 황인옥
  • 승인 2018.03.0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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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경 보며 느낀 작가의 심상
명암 빼고 색상·형태 단순화
입체 풍경서 평면 풍경으로…
앞으로 ‘인간의 삶’ 담을 것
2014년작-적상산
김성석 작 ‘적상산 [赤裳山] 풍경’
 
김성석
김성석
“작품은 손바닥과 같아서 앞면만 주시하면 뒷면은 가려진 채로 사장될 것입니다.” 예술의 표면과 이면을 고루 탐색할 것을 강조하던 화가 김성석의 예술관에서 열린 시각과 실험정신을 엿보인다.

한발 물러나서 실눈을 뜨고 사물을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세밀하지 않다. 형태는 단순하고 중량감도 줄어든다. 대기원근법과는 구별되는 공간감이다. 산정상이나 상공에서도 비슷한 경험은 할 수 있다. 비행기가 지면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시야에서 멀어진 경관은 점차 그 부피가 줄고 색은 희미해지다가 차츰 색면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명확한 정보 전달을 기대하기 어렵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산천이기에 붓으로 표현할 땐 부감법(심원법)이 불가피하다. 작가 김성석의 화법이 그렇다. 몇 차례의 변천 과정을 거친 그의 최근(2011년~2018년)작은 시처럼 함축적이다. 간명하게 그림 그의 그림을 ‘압축된 풍경’이라 하기로 한다.

70년생인 김성석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1997년)하였다. 그 후 줄곧 리얼한 현실표현에 몰입해온 화가이다. 러시아 레핀 미술대학에서 단기교육과정을 수료(2003년)할 만큼 자연주의(또는 사실주의)식 그림에 매진하던 작가였다. 같은 양식을 추구하던 그룹의 멤버들과 행보를 나란히 하며 200여 차례의 단체전과 15회의 개인전도 하였다. 꾸준히 지향해온 화법을 버리고 새로운 작업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11회 개인전) 전후이다. 그의 변화된 예술궤도에는 시대와 사상을 관통하는 신념이 동반됐다. 신념의 축은 자기직시이다. 변화에 대한 열망도 전제됐다. 결국 두려움과 외로움을 감수하며 ‘압축된 풍경’을 전개한 것이다. 이런 그의 ‘압축된 풍경’은 실경이 바탕이다. 산점투시에 방해되는 요소를 제거한 의도된 풍경이다.

김성석의 ‘압축된 풍경’은 쇠(철가루)나 아크릴 유화물감이 주된 채색재료이다. 간간이 사용된 형광색 물감이 암실감상을 허용한다. 르네상스시대에 발명된 서양화법은 주로 명암법과 원근법 투시도법으로 특징 지워진다. 당대인들이 경탄을 금치 못한 혁신적인 표현법이었다. 일련의 기법들은 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도 실감나는 현실표현의 지침서가 되곤 한다. 개념과 자기철학에 주목하며 특정재료나 표현기법만을 찬양하지 않는 현대에도 꾸준히 답습된다. 김성석 작가도 현재진행중인 작업의 지평을 열기 전까지는 줄곧 이 기법에 기대어왔다. 방식을 바꾼 그의 차별화된 작업은 예술적 열망에 더한 열린 시각이 단초이다.?

작가 김성석은 “조형이 변형되거나 파괴되어도 알면 보인다”고 했다. 이해의 단서는 그의 삶 속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내 그림엔 메뚜기가 뛰어다닌다. 개구리 노래 소리, 개울물 흐르는 소리, 솔가지 노래 소리, 아기염소 울음소리, 농부의 소몰이 소리, 개구쟁이의 물고기 모는 소리가 들어있다.”(2011년 작업일기) 그 속에는 작가와 평생 벗한 산천이 살아 숨 쉰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살고 있는 고향의 자연이 작가 김성석에게는 친밀한 예술 자원이다. 하여 그가 ‘알면 보인다’고 한 것은 자연과 하나 된 삶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작품 <광활한 터>(2010년), <강변 이야기>(2011년), <대지의 선율>(2012년), <시가 흐르는 강>(2013년) 등이 그렇듯이 작가에게는 자연이 현실이며 평범함이자 특별함이다. 사유의 근간기도 하다. 결국 김성석의 ‘압축된 풍경’은 개체와 전체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삶의 본원지가 아닐까 한다.

서양화를 전공한 김성석은 간간히 동양화법을 겸하곤 했다. 그의 ‘압축된 풍경’이 삼차원이 아닌 이차원의 공간구성을 유지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선(謙齋 1676~1759)의 진경산수화는 실경이 모델이지만 원형 그 자체는 아니다. 장승업(1843~1897)은 다양한 화제를 능란하게 다루는 기량에 비해 문자향(文字香)이나 서권기(書卷氣)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희(秋史,1786~1856 )의 세한도(歲寒圖)는 장승업의 작품과는 다른 품격의 그림으로 평가된다. 이들 화법의 공통점은 형사(形似)보다 사의(寫意)를 중요하게 여긴 동양미술의 특징을 상기시킨다. 김성석의 ‘압축된 풍경’도 일면은 동양화법을 차용하였으나 작업 전반을 그 틀에 견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형사(形似)와 사의(寫意)의 관계뿐만 아니라 문자향 서권기마저 의식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소요할 때 가장 자기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신념이 ‘압축된 풍경’으로 드러난 것이라 여겨진다.
 

김성석작-시가흐르는강
김성석 작 ‘시가 흐르는 강’

확대경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 있는가 하면 눈을 감아도 보이는 세상이 있다. 김성석의 ‘압축된 풍경’이 그렇다. 그의 그림은 영감의 원천인 자연(실경)에 심상을 덧댄 것이다. 하여 심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있다. “줄 끊어진 연이 산 능선 너머로 날아가고 수풀 사이로 누렁이에게 놀란 꿩이 날아오르는 모습(작업일기)”도 볼 수 있다. 대지의 생명과 공존하는 인간의 삶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시각적이지는 않지만 모두 느껴지는 것들이다. 이런 김성석의 ‘압축된 풍경’ 일면은 심상경(心想景)인 셈이다. 심상은 종종 예술의 표현재료이자 기초가 된다. 예술을 갖추어주는 요소는 창의성과 가치관도 한몫을 한다. 치밀한 분석능력도 간과할 수는 없다. 어떤 경험이든 예술로 치환할 때 그것은 예술의 범주에 들게 된다. 작업의 동기와 과정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이다.

때론 침묵이 답이다. 침묵처럼 고요한 풍경은 표면과 이면, 씨실과 날실로 짜인 작가의 삶 다름 아니다. 그의 풍경은 곧 그의 삶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바로 김성석의 풍경을 압축풀기를 해서 읽어야할 이유이다. 예술은 삶이고 삶은 과정이다. 지금까지는 자연경관이 압축된 풍경의 주 모티브였다면 이어질 다음 행보는 인간이 핵심 대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대지 위에 다양한 무늬를 새기며 사는 인간이 펼칠 삶의 진면목이 기대된다. 화업은 오롯이 작가의 몫이고 평가는 관람자들의 몫이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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