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번짐 불완전한 삶, 우리의 초상
찰나의 번짐 불완전한 삶, 우리의 초상
  • 대구신문
  • 승인 2017.07.1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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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까지 우손갤러리 ‘마루야마 나오후미’展

무명천에 희석한 물감 올려

자연스레 번지는 방식으로

두려움과 자유 형상화해

경계없는 몽환적 분위기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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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불안을 형상화하는 일본작가 마루야마 나오후미 초대전이 우손갤러리에서 9월8일까지 열린다.
이런 형태의 작품을 일찍이 본 적이 있는지 돌아봤다. 작품이 몹시 묘했다. 심하게 흔들린 사진 마냥 흐릿했다. 호수인지 바다인지, 숲인지 나무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저 풍경이라는 정도로만 가늠이 됐다. 그마저 지나치게 흔들려서 집중해서 보면 어지러웠다. 마루야마 나오후미의 독특한 회화세계다.

“현대미술이 서양으로부터 왔지만 나만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를 듣고 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그래도 낯설었다. 하지만 그는 단호했다. “물감을 사용했으니 서양적이고, 물감이 퍼지는 현상은 한지에 물을 사용하는 동양적인 감각과 흡사하다. 나만의 상황에 딱 들어맞았다.”

우연이 모여서 필연이 될까? 필연이 우연을 가장해서 찾아오는 것일까? 전후맥락이야 어찌됐든 결과가 좋으면 해피엔딩이다. 마루야마도 우연으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으로 좋은 경우다. 돌발 사고로 캔버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무명천에다 그림을 그렸는데 느낌이 좋았다. 궁여지책으로 택한 재료였지만 해방감을 안겼다. 경계가 모호한 작품은 1992년부터 발표했다.

“옷을 만드는 무명에다 그림을 그렸다. 캔버스처럼 가공처리가 되지 않아 물감이 그대로 천에 번졌다. 우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번짐이 내 감성과 딱 맞았다.”

일찍부터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에 위압감을 느꼈다. 경계를 확실하게 정하는 것이 불안했다. 하지만 무명 위에 퍼져나간 물감의 흔적은 달랐다. 책임감을 벗고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다. 두려운 감정의 시작점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당시 어머니가 편찮으셨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천에서 번지는 불확실한 형상과 당시의 내 마음이 닮아 있었다. 이것은 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불완전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최근 시작한 우손갤러리 전시에 소개한 작품들은 호수 풍경이 주를 이룬다. 근작들이다. 경계가 모호한 인물시리즈로 시작해 보다 다양한 화풍에 도전해 오다 몇 년 전부터 다시 번지는 작업으로 돌아왔다. 물을 소재로 하는 호수 풍경은 초기의 인물 연작보다 모호함과 불안함이 더 강해졌다. 그 배경에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의 대지진과 최악의 쓰나미가 있다.

“자연은 인간이 접하는 대상 중에서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접하는 존재다.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쉽게 이해하는 대상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연을 소재로 선택했다. 강이나 호수는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경험에서 왔다. 쓰나미를 보면서 물이 불안함의 표상으로 굳어진것 같다.”

그의 평면에는 선(線)이 없다. 배경과 사물을 구분하는 경계선 대신 흐물거리는 모호함을 선택했다. 마칠 꿈결처럼. 사실 여기에는 두려움의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람객과의 소통에 관한 나름의 철학도 개입됐다.

“형태가 불분명한 풍경은 관람객에게 제시하는 기초 자료일 뿐이다. 그 모호함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관람객은 모호한 풍경을 모티브로 자신의 기억이나 경험을 끄집어내 자신만의 풍경으로 완성한다.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양해질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시작은 패션 디자인으로 했다. 디자인이라는 분야가 누군가의 선호를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순수미술로 돌아섰다. 목면 캔버스에 묽게 희석한 아크릴 물감을 흘려 번지게 하는 스테이닝 (staining) 방식으로 유기적 형태의 추상 작업을 발표하면서 일본화단에서 압도적 평가를 받았다. 쿠사마 야요이를 이를 일본의 현대미술작가로 주목 받은 것.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에서 첫 전시를 여는 그는 이번 우손갤러리 전시에서 90년대 드로잉 작품을 비롯 최근에 제작한 천에 아크릴 작품 등 약 40여점 걸었다. 전시는 9월 8일까지. 053-427-773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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