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현대적 변신 꿈꾸는 젊은 소리꾼 오 영 지
국악의 현대적 변신 꿈꾸는 젊은 소리꾼 오 영 지
  • 대구신문
  • 승인 2017.07.1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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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만 제자리일 수 있나요? 앞으로 나아가야죠”

시각예술과 협업·판소리 발레극 창작

다원예술연구교류회 ‘원네스’ 손 잡고

‘이중섭의 시’ 창작판소리 제작 등

다양한 시도로 음악 장벽 허물어

‘전통과 현대 조화’ 국악 발전 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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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판소리를 만들거나 다양한 예술분야와의 콜라보를 시도하며 현대인들과 전통소리의 접점을 찾아가는 소리꾼 오영지의 공연이 8월24일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다.


좁아진 전통예술의 입지와 그로인한 무대 부족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운 국악인이 있을까? 전통이 홀대받는 국내문화계 현실에서 국악인, 그것도 젊은 국악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36살의 오영지는 오뉴월 땡볕에 잘 달궈진 자갈밭을 맨발로 걷는 삶에 비유했다. 어깨 위에 멍에처럼 드리워진 외로움은 덤이라고 했다. 그만큼 치열하고, 투쟁 같은 삶이라는 것. 전통국악의 여건이 열악한 것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랴만은 소리꾼 오영지에게 상황은 유독 가혹했다.

“전통국악이 외면 받을수록 국악인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 주목하고 판소리에 다양한 현대예술분야를 접목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해왔다. 전통국악이 진부하다는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현대인과 좀 더 편안하게 소통하도록 하기위해서였다.”

일찍부터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을 자처했다. 국악에 다양한 현대예술을 접목하며 21세기와 소통하는 전통소리를 찾고 싶었다. 이 때문에 늘 관심 대상으로 주목을 받았다. 사실 연주자라면 주목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호의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우려로부터의 주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히려 무관심이 약이다. 그녀 역시 드러나지 않고 조용하게 예술세계를 펼쳐가기를 원했다.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전통을 기반으로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소리를 찾고 싶었다. 그것이 곧 동시대인들의 소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전통의 입장에서 보면 혁신에 가까워서 곱지만은 않을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주목받았다.”

이 시대의 젊은 소리꾼은 무거운 과제를 안고 산다. 국악이 외면받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찾지 않으니 스스로 무대를 만들거나, 전반적인 국악활성화를 위한 시도들을 병행해야 한다. 오영지는 국악활성화를 목표로 잡았다. 국악이 계속해서 세대를 이어가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국악활성화를 본 것이다. 그 방편이 현대인과 전통소리의 소통이었다. 물론 이러한 활동들은 국악인 개인 가치관의 문제여서 누구나 그런 과제에 동승하는 것은 아니다.

유독 오영지는 전통소리의 현대화를 시대가 부여한 과제로 느꼈다. 전통소리는 평생 배워 나가면서, 창작판소리를 만들거나 다양한 예술분야와의 콜라보를 시도하며 현대인들과 전통소리의 접점을 찾아나갔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믿음 하나가 있었다. 판소리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젊은 세대의 시각에서 보면 판소리는 조선시대의 랩이다. 판소리가 현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라면 얼마든지 그들과 유쾌하게 소통할 수 있다. 특히나 지배계급을 풍자하고 서민들의 애환을 다뤘다는 점에서 스토리를 현대인의 감성에 맞추면 그들의 마음을 뻥 뚫어줄 수 있다. 바로 이런 판소리를 찾아서 다양한 시도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영지의 국악 입문은 대학원에서 국악작곡을 전공한 이모의 영향이 컸다. 이모의 권유로 10살에 장구를 배우러 갔다가 판소리를 시작했다. 이후 국립국악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에서 판소리를 전공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판소리는 이명희, 주운숙, 송순섭, 정순임, 고 은희진 선생에게 사사했으며, 현재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 34호 판소리 흥보가 전수 장학생으로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전통소리의 현대화를 위한 활동들은 대학 졸업 후부터 시작됐다. 초기 활동은 서울이 주 무대가 됐다. 첫 도전은 ‘안숙선의 소리마당’ 작가였다. 설명을 잘하는 재능을 십분 활용해 전통음악을 다루는 소리마당의 작가를 자처하며 또 다른 방향에서 전통소리를 접했다. 남경주의 ‘해피뮤지컬스쿨’ 음악감독을 맡은 것도 맥락은 같았다. 뮤지컬이라는 또 다른 장르의 소리를 통해 역으로 전통소리의 실체에 접근하고 싶었다. 이후 창작판소리뮤지컬 ‘타루’에 객원으로 참여하며 전통보다 창작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과거와 달리 현대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혼재한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환경에서 요구되는 것은 우리 소리를 좀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할 필요성이다.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다양한 예술장르와 융,복합을 시도하며 우리 소리를 다양한 각도에서 알려고 시도했다.”

2010년 즈음에 대구로 활동무대를 옮기면서 실험성은 더 짙어졌다. 현대음악과 다원예술, 미디어아트, 시각예술 등과 콜라보를 시도하고, 판소리 발레극 ‘황금사과’ 창작하며 실험적인 소리꾼으로 입지를 다져갔다.

‘실험성’ 못지않게 전통음악의 저변확대에도 열정을 쏟았다. 지금까지 여덟 번의 독창회를 가지면서 지역 예술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져오고 있고, 대구콘서트 하우스 ‘코리안 클래식’ 시리즈 초청공연, 대구문화예술회관 3days 콘서트 초청공연, 대구야행, 전통연희극 ‘큰장별곡’ 등의 공연을 통해 전통판소리를 알려왔다.

해외에 판소리의 우수성을 알리는 문화전령사 역할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난해 현대음악 앙상블 Emptynote의 단원으로 일본 교토대학 초청공연을 가졌고, 올해 12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다. 또 지난 3월과 4월에는 베를린과 베니스에서 전통판소리 및 창작판소리를 선보였다.

특히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미래예술의 초석을 놓고 있는 다원예술연구교류회 원네스(ONENESS)와의 협업작품들은 전통의 현대화와 장르의 교섭을 지향하는 그녀의 가치에 부합하는 결실이다. 오영지는 원네스와 함께 ‘꿈이로다’와 ‘운수 좋은 날’이라는 곡을 받아 노래했다. 오영지는 원네스와 함께 다음 작업으로 ‘이중섭’의 시를 창작판소리로 제작 중에 있다.

“창작판소리는 젊은 소리꾼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시도되고 있다. 요즘 세대들에게 춘향전과 심청전으로 다가가기에는 괴리가 있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운 시대의 역사를 판소리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더 나가 현대음악 등의 콜라보로 정서적인 면까지 다가가려 시도한다.”

오영지는 자신의 위치를 매개자라고 했다. 전통소리와 현대인 사이에서 교감을 위한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대구지역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소리수업을 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미래세대에게 전통소리를 알리는 것이다. 그녀는 이 강의로 인해 정부지원이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에서 배제되고 있다. 하지만 기껍게 감수하고 있다.

“전통국악의 저변확대는 다양한 방향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미래세대에게 판소리를 접하게 하는 것이다. 미래관객 발굴이다. 이것은 일종의 미래에 대한 보험과도 같다.”

오영지는 스스로를 ‘소리받이’라고 했다. ‘소리받이’는 죽은 자의 넋이 하는 이야기라는 뜻의 ‘공수받이’에서 빌려왔다. 전통소리에서부터 서양현대음악, 창작판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을 받아 자신의 몸으로 연주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오영지가 오는 8월 24일 오후 7시30분 수성아트피아 무학홀에서 공연하는 수성아트피아 기획 지역아티스트 지원 프로그램인 ‘아티스트 인 무학’ 의 주제 역시 ‘소리받이’다. 그녀의 아홉 번째 독창회에서 전통소리와 그동안 걸어왔던 다양한 실험적인 소리들을 총망라해 들려주면서 오영지의 소리인생이 압축된 ‘소리받이’의 여정을 펼쳐놓는다.

“이번 공연에서 적벽가와 심청가 등의 전통판소리에 현대작곡가인 권은실 선생님의 곡 ‘새’와 창작판소리 ‘운수좋은날(김유리작곡)’과 ‘꿈이로다(김중희작곡)’ 등의 창작곡들을 들려드리며 그동안 소리꾼 오영지가 해왔던 작업들을 한 무대에서 보실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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