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기
마주보기
  • 승인 2017.01.16 12: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병락 前 공무원
한창 국정감사가 펼쳐지고 있다. 난데없이 한 연예인을 증인으로 참석시켜야 하느니 마니, 하며 시끄러웠다. 그때 본인은 불이익 처분을 받았다고 했으나 관에서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 누구 한쪽은 거짓인 셈이다. 한 발 더 나가 불러서 감당할 수 있으면 부르라며 큰 소리다. 대단한 강심장이다. 결국, 그런 사소한 일로 국감일정을 허비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판단으로 흐지부지되었다. 마주 놓고 보면 무언가 해답이 나온다는 발상이다. 그래서 종종 대면 질의를 고도의 수사기법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했다. 그런데 마주 보며 산다는 게 다 쉬운 일만도 아니다. 길을 가며 슬쩍 스치고 지나가는 일이 다반사지만, 무슨 인연도 아닌 필시 운명 같은 만남을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전철 안이 그렇다. 승차 후에는 당장 생사고락을 같이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비록 한 정거장에서 만나고 헤어지고를 별 의미 없이 행하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평생을 두어도 똑같은 바둑판이 없듯, 그런 상황 또한 평생에 두 번 오지 않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이삼십 여분을 마주한다는 건 궁금함과 설렘을 선사한다. 그런데 참 머쓱하다. 때론 고역이기도 하고 피하지는 못한다. 함부로 눈을 돌렸다가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당할 수 있고 좌석 행동반경이 좁아 선택의 여지도 많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보면서야 무슨 문제가 있고 어색함이 있으랴만 첫 대면 아니던가. 피할 수 없는 만남은 마치 터널 속 철길마냥 길고 지루하다.

아예 앉자마자 눈을 감는 저 중년 남자, 무엇을 생각하는지 지그시 눈 뜰 기미가 없다. 역을 내리면 곧 만날 사람과 무슨 사업이야기를 할 것인지 깊이 골몰하고 있는지 모른다. 옆 학생은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 조작에 열중이다. 혼자 키득 키득 웃기도 하고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가만있지를 못한다. 머리 하얀 할머니는 보자기를 꼭 거머쥐고 눈만 껌벅이며 혹여 목적지 정거장이라도 놓칠세라 연신 주위를 살피고 있다.

어쩌다 서로 눈을 마주치면 얼른 피하고 만다. 먼저 마주치는 사람이 겸연쩍다. 뭔가 나쁜 일이라도 하다가 들킨 모양으로 움찔하기도 한다. 그러다 다음 정거장에서는 그런 고요함이 깨어지고 말았다. 한 엄마와 아이가 탔는데 아이는 앉고 엄마는 서서 계속 말을 한다. 집에서 그건 가져왔나, 학원에 가서 뭐를 어째야 한다는 둥 끊어지지를 않는다. 목소리도 그리 정겹지 못하고 짜증스럽다. 평소에도 저리 자녀와 세심하게 대화를 할까 궁금해진다.

환승을 위해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간다. 밑에서 쳐다보니 끝이 가물가물하다. 오르내리는 승강기엔 북극 펭귄이 늘어선 것처럼 빈틈이 없다. 연신 역내방송에서 “걷거나 뛰지 말라”는 안내가 나온다. 난 옆 가드레일을 꽉 잡는다. 모두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묵묵하다. 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만나면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한다.

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싸움하면 벌서기로 선생님은 아이들을 무릎을 꿇리고 마주 보게 했다. 서로 반성하라는 가르침이다. 손을 들고 한참 있으면 다리가 저리고 몸이 뒤틀린다. 담임선생님은 간데없고 무정히 지나가는 사람 보기에 부끄럽다. 처음엔 킥킥 웃다가 나중엔 오기가 생겨난다. 마주 보고 있는 저 아이는 방금 내가 지독히 미워하며 눈을 부라렸던 녀석이다. 잘못했다기보다는 화가 치민다. 얼마 못 가서 결국 두 아이는 눈물을 터트리고 만다. 선생님은 그제야 둘 다 불러 서로 껴안게 하고 화해를 시킨다.

마주하기 싫어서 때론 자살까지 서슴지 않는 비보를 접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보고 싶고 그리워하면서도 마주하지 못해 애태운다. 그도 저도 아닌 잠시의 인연으로 만나 얼굴 대한다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 할 판이다. 오히려 외로움을 더는 계기로 삼아 좋게 봐야 하리라. 걱정을 잔뜩 걸머진 사람,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는 사람, 고목 같은 사람 등 갖가지 표정을 보는 것도 삶의 또 다른 재미이지 않은가. 오늘 저녁 모임엔 좀 산뜻한 옷을 입고 또 처음 보는 사람과 마주할까 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