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膳物)의 이해와 오해
선물(膳物)의 이해와 오해
  • 승인 2017.02.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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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지속하는데 가장 큰 동력이 되어 주는 것이 이해라고 볼 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면 이해되어지지 않을 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객관적인 잣대를 대고 관대해지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심상치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주변국들의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현지시간)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장관이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회원국들에 방위비 증액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그럴 수 있다. 이해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미국 납세자가 더 이상은 서방 주변국들의 재산적 가치의 방어를 위해 부담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데 이해 못할 일이 무엇인가. 단, 거기에 그쳤으면 나았을 텐데, 그는 “여러분 자녀들의 안전은 당신들(회원국)보다 미국인이 더 잘 지킬 수는 없다.”고 덧붙이며 연말까지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는 냉혹함을 보였다. 어찌 보면 이것도 맞는 말이다.

우리들의 자녀는 우리만큼 잘 지킬 수는 없으니 스스로 방위 체계를 잘 구축해서 부국강병에 힘을 쓰자는 데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단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여태 주변국들의 자녀들을 제 자녀처럼 잘 보살펴온 것으로 해마다 공치사를 일삼던 미국이 왜 이제 와서 ‘스스로 지키던지 미국에게 계속 의지할 거면 그만한 비용을 더 내라’고 요구한 부분이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때론 마블 영화의 히어로처럼 정의로움을 내세워 맹활약을 하는가 하면, 한때는 동서 냉전의 한 축으로 당시 소련과 함께 세계의 질서 혹은 혼란의 중심역할을 해오던 국가가 아닌가. 그런 나라가 오죽하면 약소국의 위기를 지켜주는 ‘몸값’을 올려 달라고 직접 요구하고 비싼 인건비를 들여서라도 미국 내에 공장설립을 요구하는 무리한 강요를 하게 되었을까 싶다. 이에 발 빠르게 일본의 아베수상은 트럼프와 얼싸안기도 하고 골프회동 등을 하며 친밀도를 과시하는가 하면, 은밀하게 귓속말을 주고받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마치 협조하지 않으면 국제적으로 ‘왕따’를 시킬 것처럼 말이다.

한편 근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43년 12월의 카이로선언과 1945년 7월의 포츠담선언을 통한 ‘조선’의 독립은 ‘적당한 시기’를 담보로 한 조건부 독립이었다. 일본의 항복 후 군사적인 편의에 의해 38선을 경계로 미. 소 양군으로 분할 점령된 후 미·영·소 3국 외상은 그 해 12월에 모스크바에서 회동하고 한반도에 5년 간 신탁통치를 실시할 것을 합의하였다.

이 얼마나 이해되어질 수도 없고 슬픈 역사인가. 항일 운동을 전개하고 광복군으로 활동해 왔던 수많은 우국열사들이 김구를 중심으로 반탁운동을 벌여 왔지만, 당시 미국과 소련의 절대적 무장 권력에는 불가항력이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의 아바타가 되어 한국전쟁을 치러야 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장이자 조선 독립 운동에서 정신적 지주였던 김구를 비롯한 지식인들을 이념의 희생양으로 잃어야만 했다.

과거를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되풀이하지 않을 수는 있다. 국가 간의 현안들을 지켜보면서 뜬금없이 선물(膳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주 쉽고도 익숙해서 순우리말로 여길 수도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선물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물은 대가를 바라지 않아야 본래의 의미가 변질되지 않는다. 미래 가치의 대가를 바라고 선물(膳物)을 주는 건 선물(先物) 형태의 투자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미국의 주한 미군이나 신탁통치에 대한 선물(膳物)을 요구하거나 기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시 주둔하던 미군들이 자국 내에서도 사회 부적응자들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들이 저지른 부도덕한 사건들이 잦았으며, 낯선 타국에서 그들의 적적함을 달래줄 소위 양공주와 유흥주점들이 범람한 기지촌들이 형성되는 등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오히려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강력히 주장해오던 시기는 있었다.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한 국권이 신장되면서 그들의 치외법권(治外法權)의 성지나 다름없었던 미군부대의 역할이 그만큼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방위비 증액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다만 트럼프 정부는 자국민들로부터의 지지도 상승을 위해 필요한 카드 중 하나를 예사롭지 않게 꺼내 들었을 뿐이니 탓할 이유도 없다. 앞으로 방위비에 대한 압박은 우리나라와 일본 등 아시아 동맹국가에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없지 않은데, 이에 대한 협상을 얼마나 잘 하는가 하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자위대보다 자존감 없는 국방정책은 피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나라가 이젠 선물(膳物)을 받아야할 만큼 나약하지도 선물(先物)을 받아 들일만큼 어리석지도 않음을 보여 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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