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수가는 왜 필요한가?
적정수가는 왜 필요한가?
  • 승인 2017.05.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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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마크원외과 원장
삭감률 60%. 몇 년 전 신경외과의사회가 밝힌 신경외과 척추수술에 대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삭감률이다. 전체 척추수술 시행 건수 중에서 무려 60%가 건강보험 적용이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정부로부터 척추 전문병원으로 지정 받은 곳의 삭감률도 약 20%에 달한다. 반면, 상급종합병원의 척추수술 삭감률은 1%미만이다. 척추전문병원의 1/20수준이다. 갖은 고생 끝에 척추전문병원이라는 인증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삭감률에 차이가 날까? 정말로 척추전문병원에서는 안해도 될 수술을 대학병원보다 20배나 더 많이 해서일까?

심평원에서 얘기하는 삭감의 주된 이유는 ‘보존적 치료 미비’이지만 그게 다라고 하기에는 삭감률에서 너무 차이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선 전문병원들은 ‘병원급 치고는 상대적으로 많은 수술과 청구건수’가 실제 삭감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병원보다 특정분야에 대해서 더 많은 전문의들이 진료하면서 ‘큰 병원’의 여러 불편한 부분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척추관련 수술이 더 많을 수 밖에 없고, 더군다나 정부 차원에서 척추수술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해 전문병원으로 지정한 것이라면, 단지 수술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이유로 삭감률이 높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전문병원 지정은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리는 진료를 적정하게 분산하기 위한 의료전달체계 정상화의 일환으로 시행한 정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절감을 목적으로 삭감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진료가 위축되면서 전문병원의 운영은 힘들어지고, 결과적으로 3차 의료기관으로 환자 쏠림이 다시 가속화 되면서 종국에는 국민의료비가 상승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다.

위의 경우가 의료행위에 대한 부적절한 예산절감 사례라고 본다면, 처치재료에 대한 저수가 정책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얼마 전 발생했다. 선천성 복합심장기형 소아환자 수술에 필요한 치료재료가 정부의 저수가 정책으로 공급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국내에 인조혈관을 공급하던 “W.L. 고어” 회사는 오는 9월부터 국내에서 인조혈관사업 철수를 결정했는데 그 이유가 너무 황당하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보험 상한가 인하 조정으로 인조혈관에 대한 건강보험수가를 2012년 최대 22%, 2016년 재차 18.8~19% 인하했다. 이에 따라 고어가 국내에 판매하는 인조혈관 제품 중 하나인 ‘STRETCH TYPE’의 경우 2016년 보험상한가가 46만4,890원이 됐다. 낮은 보험 가격으로 인한 국내사업 수익 저하가 우려되고 이같은 가격이 타 국에 알려질 경우,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낮은 판매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고어는 인조혈관사업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고어가 우리나라에서 철수하면 선천성 복합심장기형 소아환자 수술에 꼭 필요한 3.5~5㎜ 인조혈관이 국내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데 있다.

의료행위 뿐만 아니라 치료 재료에까지 비현실적인 낮은 수가를 강요한 정부당국의 비전문적인 탁상행정이 선천적인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어린 환아들을 수술도 받지 못하고 속수무책 죽음으로 내모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저수가 정책은 첨단의료기술의 국산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의 개발의지 마저도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

어떠한 보험이든 그 지속가능성은 결국 보장성에 있다. 60%에 불과한 보장성을 가진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일반적인 민간 보험 시장이라면 가입자들의 외면으로 타 회사와의 경쟁에서 자연 도태되어 퇴출되었겠지만, 국가 정책으로 강제하는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저수가 정책을 통해 지출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여태 버티고 있다.

작금의 국민건강보험은 점점 커지고 있는 폭탄이다. 본인의 집권 시기에 그 폭탄이 터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그 점을 얼마나 절실히 인지하고 대처하는지에 따라 차기 정권 보건의료 정책의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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