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향수, 분꽃 - <넉점 반>
아련한 향수, 분꽃 - <넉점 반>
  • 승인 2017.06.19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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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경 하브루타 도서관 관장
우리 아파트 화단에 한때 분꽃이 어우러지게 피던 자리가 있었다.

바로 1층 현관문을 나서면 만나는 화단이다.

이렇게 쓰는 순간 그 분꽃의 모습과 깜깜한 밤 맡았던 짙은 분꽃향내가 첫사랑의 그리움처럼 확 다가온다.

몇 년 동안 그 자리 분꽃이 피고 지었는데 아쉽게도 어느 해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분꽃이 한해살이여서 다시 누군가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분꽃을 대체할 그 무언가가 있겠지 했는데 몇 해째 토끼풀만, 때로는 수선화 몇 포기가 어설프게 자라고 있다. ‘아니야, 아니야 비교도 안 돼. 시간을 내어 분꽃 씨를 뿌려야지’ 했는데 아직도 실행에 못 옮기고 있다.

생체시계라고 있다. 다양한 생리, 대사에 맞춰 생체리듬의 주기성을 나타내는 생물학적 시계를 말하는데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꽃들을 보면 사계절은 물론 하루의 때를 알 수가 있다.

대표적으로 나팔꽃은 아침에, 달맞이꽃은 저녁에, 분꽃은 늦은 오후에 피기 시작하여 아침이 되면 오므린다. 분꽃이 예쁘게 시간을 알려주는 그림책이 있다. 바로 윤석중 동시, 이영경 그림의 <넉점 반>이라는 그림책이다.

아기가 아기가 / 가겟집에 가서 /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시냐구요?” / “넉 점 반이다.” / “넉점 반 넉점 반.” /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 한참 서서 구경하고, / “넉점 반 넉점 반.” / 아기는 오다가 개미거둥 /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 /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 한참 돌아다니고 / “넉점 반 넉점 반.” / 아기는 오다가 /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 “엄마, 시방 넉점 반이래.” -넉점 반 전문이다.

윤석중 시인은 1932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집을 발간하였는데 거기에 수록된 동요들은 모두 35편, 원래 40편이었는데 총독부의 검열에 의해 삭제 되었다고 한다. <낮에 나온 반달> · <산바람 강바람> · <달 따러 가자> · <퐁당퐁당> · <우산 셋이 나란히> 등 우리들이 아직도 사랑하는 동요들이 바로 윤석중 시인의 작품이다. 그 당시 동시에는 율의 형태가 있었기에 무조건 동요로 불리던 시대였다.

시인의 짧막한 동시에 이영경 작가의 그 옛날 어디쯤의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이 기가 막히게 그림책의 심미감을 더해주고 있다. 지금은 흔해빠진 물건이 그 당시는 부의 상징쯤 되지는 않았을까 싶은데 시계가 그런 물건이었나 보다.

글보다 그림에서 더 많은 정보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지금이면 ‘마트’에 해당 할 ‘상회’에서 파는 신기한 옛 물건들, 주인공의 귀여운 단발머리와 한복의상, 심부름 나온 아이의 심리, 분꽃이 알려주는 시간의 흐름, 주변 등장인물들, 형제가 많은 식구들의 해거름 저녁 풍경, 식구들의 저녁상을 차려주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당신의 배도 무척 고팠을 그리운 엄마. 분꽃의 뒤를 잡아당기면 기다란 수술이 달려 나와 귀걸이가 된다.

그걸 양쪽 귀에 걸고 좌우로 흔들며 놀던 시절이 있었다. 한참 몰입해 놀다보면 어머니가 ‘저녁 먹어라’ 하고 부르시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과 함께 분꽃을 만나거든 생태시계도 알려주고 꽃 귀걸이를 만들어 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윤석중 시인의 <꽃울타리>라는 예쁜 동시 한 편을 소개한다. 먼저 시인의 동요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고 이 동시를 함께 읽어보면 더욱 시를 잘 감상할 수 있다. 노래도 한 번 만들어 보면 좋겠다.

‘앞집과 뒷집 새에 꽃 울타리 / 앞 집 얘가 노래 하네 / 꽃들아, 꽃들아 이쪽 보고 피거라 / 뒷집 얘가 노래 하네 / 꽃들아 꽃들아 이쪽보고 피거라 / 양쪽 집에서 다 잘 보이라고 하늘을 보고 피었다네 / 앞집과 뒷집새에 꽃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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