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은 적응된다
쾌락은 적응된다
  • 승인 2017.09.0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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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사람향기 라이프디자인연구소장
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인 것 같다. 작은 차를 타고 다닐 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필요 이상으로 큰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다가, 큰 차를 타고 다니면서 부턴 작은 차는 위험해서 못 탄다고 한다.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또 눕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한 사람이 부럽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침과 저녁을 함께할 수 있고, 자신을 닮은 자녀가 있는 그가 그렇게 부럽다. 하지만 결혼한 후에는 결혼하지 않은 후배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자유롭게 자신의 취미 생활도 할 수 있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미혼이 누리는 자유가 부러워지는 우리는 참 간사한 존재다.

군인 시절 휴가를 나와 친구와 영화를 보러갔던 적이 있었다. 영화 시작 시간이 어중간 하여 점심을 먹지 못하고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니 점심시간을 훨씬 지나버린 오후 2시쯤이었다. 단체생활로 정확한 시간에 식사를 하던 나의 배에서는 이미 난리가 났다. 그야말로 위기상황이었다. 그 어떤 것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급히 근처 만두집으로 들어갔고 만두를 주문했다.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 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든지. 옆 테이블 사람들이 먹는 오동통한 만두가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할 정도였다. 그때 홀 서빙 하는 내 나이또래 남자를 보며 나는 부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저 친구는 정말 좋겠다. 만두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면 만두는 정말 실컷 먹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제대하면 만두집에서 꼭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의 직업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잠시 후 그렇게 간절히 기다리던 만두가 나오고 바람에 게눈 감 추 듯 한 접시, 두 접시, 세 접시, 빈 접시가 쌓여가고, 배가 빵빵하게 불렀을 쯤 서빙하는 그 청년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때 느꼈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화장실 나올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걸. 불과 몇 십분 만에 아르바이트생의 직업이 ‘부러움’에서 ‘그저 그럼’으로 바뀌는 걸 보며나도 참 간사하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이 간사함을 논리로 설명 해보면 ‘쾌락적응’이론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적응되기 마련이다. 좋은 차도, 좋은 집도 계속해서 즐거움을 주지는 못한다. 중고차를 타고 다닐 때는 ‘작은 차라도 괜찮으니 새 차였으면 좋겠다’한다. 그리고 작은 경차를 새 차로 구입하면 너무 기분이 좋아서 차에서 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좀 더 큰 소형차를 타고 싶고, 중형차를 타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월세에서 전세로 옮겨가고, 전세에서 자기 소유의 집으로 옮겨 가면서 즐거움을 경험하지만 그것도 잠시라는 것.

사랑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만 알아도 즐겁지만, 시간이 지나면 직접 만나서 데이트를 해야 즐겁다.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만으로는 더 이상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손만 잡아도 행복하던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안아도 보고 싶고 뽀뽀도 하고 싶다. 이전에 즐거움을 주었던 자극은 이내 적응을 하고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구다. 인간의 욕구는 끝이 없어 빠른 싫증과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법이다. 특히 쾌락은 더 그렇다.

어느 유명 연예인이 쇼프로에서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은 모든 걸 얻게 된 지금 이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던 무명시절 이었다”라고 고백하는 걸 보았다.

우리 인간은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을 경험하기 보다는 더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결핍을 경험하며 산다. 그래서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을 가져다주기보다는 더 가지지 못한 것을 알게 하여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을 느끼게 한다. 자족(自足)하며 살자. 배부르고 등 따시면 걱정 없던 시절이 불과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감사하며, 만족하며 그렇게 세상을 살아보자. 수천억을 가진 사람이 또 더 많은 재산을 가지려다가 사고를 내는 법이다.

가진 것 1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100을 가져도 감사하지 못하는 법이다. 쾌락을 쫓는 삶이 되지 말고 감사를 쫓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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